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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 <2> 교구장이 된 ‘막둥이’…옥현진 대주교 삶과 신앙

재생 시간 : 02:54|2022-11-21|VIEW : 206

[앵커] 옥현진 대주교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늘 한결같은 목자입니다.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앞장선 사제이기도 합니다.옥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장현민 기자가 보도합니다.[기자] 옥현진 대주교는 1968년 전남 무안에서 2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옥 대주교는 가정과 본당에서 사랑받는 ‘...
[앵커] 옥현진 대주교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늘 한결같은 목자입니다.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앞장선 사제이기도 합니다.

옥 대주교의 삶과 신앙을 장현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옥현진 대주교는 1968년 전남 무안에서 2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옥 대주교는 가정과 본당에서 사랑받는 ‘막둥이’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옥 대주교를 보아온 사람들은 다정다감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임동균 울프란노 / 광주대교구 신동본당, 옥현진 대주교 초·중학교 동창>
“지금의 성품이나 그 당시의 성품이나 보면 똑같습니다. 청년회 활동이라든지 아니면 신학생 때 모습을 보면 항시 그 모습이셨습니다.”

성가정에서 나고 자란 옥 대주교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성소를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독실한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복사를 서는 등 신앙을 가까이한 덕분이었습니다.

<모매실 루치아 / 옥현진 대주교 어머니>
“(어렸을 때) 신부가 되고 싶어 애기가 그래요. 그래서 애기가 별소리를 다 한다, 그런데 그것을 잊지 않았어요.”

사제의 길을 걷는 중에도 어머니는 옥 대주교에게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교구장 임명 발표 소식을 들은 직후 옥 대주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옥현진 대주교 / 신임 광주대교구장>
“저희 어머님이 떠오릅니다. 최근에도 교구청으로 귀청하려고 하는데 대문 앞에서 어머님이 묵주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서 기도하시다가 불쑥 일어나셔서 깜짝 놀랐어요.”

1994년 사제품을 받은 옥 대주교는 1996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교회사를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4년 귀국한 이후에는 운남동본당 주임을 거쳐 2006년부터 신학교에서 사제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옥 대주교는 광주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됩니다.

이후 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로 활동하면서 약자와 함께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는 사목에 앞장섭니다.

또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장·사회홍보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사목을 펼쳐왔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교회 시노드 대표를 맡아 교회의 쇄신과 변화에도 역할을 해왔습니다.

옥 대주교의 사목표어는 ‘내 안에 머물러라(Manete in me)’입니다.

그 안에는 항상 예수님 안에서 살길 바라는 옥 대주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옥현진 대주교 / 신임 광주대교구장>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 도우심만 믿자, 그리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 (교구민들의) 도움을 믿고 한번 걸어가 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기도했습니다.

CPBC 장현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