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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 <4> 제주 정난주 마리아 묘비 옆 비석의 정체는?…신축교안 심포지엄

재생 시간 : 05:41|2021-06-01|VIEW : 439

6/1(화) - 제주 정난주 마리아 묘비 옆 비석의 정체는?…신축교안 심포지엄같은 역사라도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완전히 달라집니다.120년 전 제주도에서 천주교 신자 수 백 명이 숨진 사건도 그렇습니다.신축교안과 이재수의 난.같은 사건이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요.아물지 않은 상처는 곪기 마련이죠.두 번째로 돌아온 신축년.제주교구와한국교회사...
6/1(화) - <4> 제주 정난주 마리아 묘비 옆 비석의 정체는?…신축교안 심포지엄

같은 역사라도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120년 전 제주도에서
천주교 신자 수 백 명이
숨진 사건도 그렇습니다.

신축교안과 이재수의 난.

같은 사건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아물지 않은 상처는 곪기 마련이죠.
두 번째로 돌아온 신축년.

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아픈 역사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맹현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제주 서귀포 정난주 마리아의 묘비입니다.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 정난주 마리아는 이곳에서 선종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관비로 신분이 떨어졌는데도 온화한 성품과 풍부한 학식으로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많은 천주교 신자가 모진 시련을 신앙의 힘으로 견뎌낸 정난주 마리아의 삶을 묵상하기 위해 이곳을 순례합니다.

그런데 정난주 마리아 묘지 인근에는 과거의 천주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비석이 있습니다.

<맹현균 기자>
"삼의사비라고 불리는 비석입니다. 비석 뒷편에 보면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식이 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1901년 신축년에 발생해 신축교안, 신축항쟁, 이재수의 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

교회는 당시 희생된 3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도민사회는 치외법권을 등에 업은 프랑스 선교사 그리고 부패한 관리와 결탁한 일부 천주교 신자를 심판한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양측은 100여 년 동안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심포지엄을 개최한 이유입니다.

주목할 점은 교회의 입장 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반성과 성찰을 통해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라는 것입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이번 신축교안 120주년 심포지엄에서는 과거의 성찰을 통해서 어느 한 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고 또 반성하면서 그 아픔의 역사를 보듬어 안고 그 기억을 치유하며 새롭게 하나되는 길을 찾았으면 합니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개회사에서 교회와 도민사회 양측의 입장을 공정하게 살폈습니다.

<문창우 주교 / 제주교구장>
"무엇보다도 향토사학자 입장에서 직접적인 원인이 프랑스 선교사 신부님들의 치외법권적인 특수 권력과 편승한 천주교인의 횡포 쪽에서 보고 있고요. (중략) 천주교 입장에서도 제국주의와 천주교의 관련성, 제주의 특수 환경 및 사회 구조가 진지하게 고찰되는 것이 없이 그냥 피해자라는 결과 만으로 성격이 규정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첫 발제자로 나선 한국교회사연구소 양인성 책임연구원은 당시 천주교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분석했습니다.

<양인성 대건 안드레아 /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천주교의 잘못이 있었음에도 이를 부인하고 선교사의 자료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쳐왔던 것입니다. 제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 사회는 이재수를 비롯한 민군을 영웅시 해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수많은 인명 살상에 대해서는 반성이 부족했죠. 당시 희생됐던 사람들도 바로 다름 아닌 제주도민이었습니다."

신축교안 이후 가톨릭 교회는 다시 도민 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제주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노력한 에밀 타케 신부, 이시돌 프로젝트로 유명한 푸른 눈의 성자 임피제 신부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울러 강정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제주 4·3의 전국화를 위해 헌신한 교회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03년 교회와 도민사회는 신축교안에 대해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문」을 채택했습니다.

제주교구 사무처장 현요안 신부는 신축교안을 통해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회와 사회의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현요안 신부 / 제주교구 사무처장>
"(제주교구는) 신축교안, 제주 4·3을 주제로 한 진실과 화해 운동, 일제 군사기지와 강정 해군기지가 이어지는 평화기행, 올레길, 순례길 등 생태환경교육 기행 등으로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중략)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신념에 관한 의무를 다하여 제주다움의 신학적 성찰을 통한 제주 공동체 비전 제시와 인권과 생태 환경의 회복을 위한 연대적인 협력을 요청합니다. "

이어진 토론에서도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를 위한 모색이 동시에 논의됐습니다.

<조성윤 /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clip0062 00:45~01:03
"(신축교안에) 별 관심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점이 섭섭하게 생각이 됐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가톨릭 쪽에서도 그렇고 이재수의 난 다루는 사람들도 그렇고 이야기를 안 하려고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찬식 / 전 제주학연구센터장>
"저는 이 죽음에 대해서 서로를 다름으로 인정하지만 또 같이 이것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가."

민란을 일으켰던 당시 제주도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당시 죽어간 천주교인을 ''거룩한 순교와 희생''으로 서로 인정하는 것.

120년이 지나 두 번째로 찾아온 신축년의 제주가 함께 걸어갈 미래입니다.

CPBC 맹현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