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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금) - <3> 김대건 신부, 단 한 번의 성탄 어디서 보냈을까?

재생 시간 : 04:35|2020-12-28|VIEW : 105

[앵커] 성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스물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했습니다.1845년 8월 사제품을 받았으니 사실상 사제로서 보낸 성탄은 단 한 번 뿐입니다.그렇다면 김대건 신부는 어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성탄을 맞이했을까요.맹현균 기자가 살펴봤습니다.[기자] 김대건 신부 일행은 1845년 10월 충청도 강경 황산포 인근에 도착했습니다.도착하...


[앵커] 성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스물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했습니다.

1845년 8월 사제품을 받았으니 사실상 사제로서 보낸 성탄은 단 한 번 뿐입니다.

그렇다면 김대건 신부는 어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성탄을 맞이했을까요.

맹현균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기자] 김대건 신부 일행은 1845년 10월 충청도 강경 황산포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사목 활동을 펼치기에는 당시 조선은 너무 위험했습니다.

특히 외국인인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더욱 조심해야 했습니다.

페레올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바랑 신부에게 보낸 1845년 10월 29일자 서한에서 "사람들이 이 나라의 수도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단언하므로 돌아오는 한겨울에 그곳으로 갈까 한다"고 계획을 설명합니다.

이어 페레올 주교의 12월 27일자 서한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저는 조선의 수도에 도착한 지가 얼마 안 됩니다."

페레올 주교가 주님 성탄 대축일에 임박해 한양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한양이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까요. 한양이 때때로 양반집 안에 보호막 안에 들어가 있다면 그곳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판단돼서 거기에 주교님을 모시고 선교사를 모시려고 했던 거죠. 지금 소공동이라고 불리우는 조선호텔이 있는 그 자리에 아마 집을 구해놨던 것 같습니다."

집이 있던 곳은 한양 돌우물골이라고 불리던 지역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 페레올 주교의 거처를 마련했고, 김 신부도 함께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석문 가롤로, 남경문 세바스티아노, 김임이 데레사 등 평신도들이 이곳에 상주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즉, 교구청이자 주교관이며, 사제관이었던 셈입니다.

게다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된 선주 임성룡은 "김 신부가 불러 내실에 들어가니 벽면에 4~5개 인물 족자가 걸려 있었고, 기묘한 모양의 돌이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인화, 성상 등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례 공간이 집 안에 꾸며져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그런 공간 안에서 극소수의 신자들이 비밀리에 모여서 성탄 미사를 봉헌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추정됩니다."

다만 페레올 주교가 성탄 이틀 뒤에 작성한 서한에는 성탄 미사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페레올 주교님이 한양에서 12월 27일에 편지를 보내는 걸 봐서는 분명히 돌우물골 석정동 주교관 안에서 성탄 미사를 봉헌했을 텐데,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했다면 다 같이 미사했습니다 이런 얘기가 나왔을텐데 그런 얘기는 나타나진 않고요."

서울·경기 일대로 사목 방문을 떠났던 김대건 신부가 그곳의 교우촌에서 성탄을 보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듬해 부활 대축일 미사는 용인 인근에서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함께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의 옥중 서한을 보면, 페레올 주교에게 어머니 고 우르술라를 위로해 달라고 청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김 신부는 "10년 만에 며칠 동안 아들을 볼 수 있었으나 곧 다시 아들과 헤어져야 했다"고 적었습니다.

부활 대축일 즈음 10년 만에 잠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종합해보면 김대건 신부는 사제로서 처음 맞이한 성탄을 석정동 돌우물골, 지금의 소공동 조선호텔 인근에서 보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어김 없이 찾아온 예수님을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코로나 라고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지내잖아요.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박해 시대 때는 사제도 없이 보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영성체 하면서 성탄을 보냈거든요. 이 어려운 성탄 때 주님이 그래도 오신다는 생각으로 성탄을 맞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CPBC 맹현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