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8/2-<3> 수제화 장인 김택규 대표의 신앙고백

재생 시간 : 02:51|2022-08-02|VIEW : 124

정직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며자신의 세례명을 딴 수제화 회사를 운영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단골 고객 중엔 추기경과 정치인도 있는데요.알퐁소 수제화 대표 김택규 씨를 이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기자] 소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이 능숙합니다. 아흔을 앞둔 김택규 대표는 지금도 가죽 선별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김 대표는 어...

정직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며
자신의 세례명을 딴
수제화 회사를 운영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단골 고객 중엔
추기경과 정치인도 있는데요.

알퐁소 수제화 대표 김택규 씨를
이힘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소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 장인의 손길이 능숙합니다.

아흔을 앞둔 김택규 대표는 지금도 가죽 선별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김 대표는 어린 시절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난 뒤인 27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하꼬방이라고 불리던 판자촌엔 전국 팔도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온 가난한 이들로 북적였습니다.

<김택규 알폰소 / 알퐁소 수제화 대표>
"그래도(가난했지만) 빗나가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어요. 그때부터 제 모토가 정직이에요. 정직이라고 하면 청빈이고 다 들어가지 않습니까."

미군의 음식 찌꺼기를 끓인 꿀꿀이죽을 먹으며 연탄공장에서 일하던 김 대표.

그러다 눈에 띈 이들이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당시 구두 수선공들은 전국의 공장을 돌아다니며 구두를 수선해주고 적잖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뛰어든 김 대표.

2년간 구두수선공으로 지내며 돈을 모아 서울에 양화점을 차리게 됩니다.

양화점이 세 군데로 늘었지만, 무리한 투자로 사업을 접게 됩니다.

다시 일어섰던 김 대표는 또다시 많은 빚을 떠안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을 마감하려 찾은 북한산에서 우연히 박귀훈 신부와 인연이 닿으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난 겁니다.

<김택규 알폰소 / 알퐁소 수제화 대표>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반드시 먹고 살게,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께서 굶어 죽게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믿어요. 늦게서 그것을 깨달았지요."

고 박귀훈 신부는 김 대표에게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박 신부의 권고로 수제 등산화 제작에 뛰어들게 된 겁니다.

이렇게 시작된 알퐁소 수제화는 현재 전국 최고의 수제화로 꼽힙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염수정, 유흥식 추기경, 이용훈 주교, 정치인들도 알폰소의 단골 고객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에 손을 내민 하느님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해줬습니다.

알퐁소 수제화를 둘째 아들에게 물려준 김택규 대표.

김 대표가 물려준 가장 소중한 것은 수제화 제작 기술이 아니라 ''신앙''일 것입니다.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