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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목) - <4> [뉴스분석] 신축교안 120주년 의미와 과제

재생 시간 : 06:27|2021-06-03|VIEW : 362

6/3(목) - [뉴스분석] 신축교안 120주년 의미와 과제[앵커] 맹현균 기자와 함께신축교안 120주년 행사의 의미와 과제 짚어보겠습니다.1. 아픈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가요?교회도, 도민사회도 둘 다 잘못이 있었습니다.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면 당시 프랑스 선교사에게는 ''여아대''라는 게 주어졌습...
6/3(목) - <4> [뉴스분석] 신축교안 120주년 의미와 과제

[앵커] 맹현균 기자와 함께
신축교안 120주년 행사의
의미와 과제 짚어보겠습니다.

1. 아픈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데 120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가요?

교회도, 도민사회도 둘 다 잘못이 있었습니다.

배경을 간략히 설명하면 당시 프랑스 선교사에게는 ''여아대''라는 게 주어졌습니다. 고종이 준 증표인데 "나를 대하듯 하라"라는 뜻입니다.

한 순간에 서양 오랑캐가 임금이 보호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만큼 위세가 높아졌겠죠.

자유롭게 선교를 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은 당시 민중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가혹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금을 거둬들이는 관리의 심부름꾼으로 천주교 신자를 취업시킵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되면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이런 소문이 나돌게 된 거죠.

실제로 이런 혜택을 받고자 입교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신자들입니다. 치외법권에 적용되는 프랑스 선교사가 보호해준다고 생각을 하고 만행을 저지르게 되죠.

노인을 구타하기도 했고, 제주 토속 신앙을 믿는다고 무시하면서 위해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프랑스 선교사는 이런 문제를 보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도민들의 분노가 커지게 된 것입니다.


2. 하지만 당시 무자비하게 학살된 사람 가운데 90% 이상이 천주교 신자였잖아요.

맞습니다. 민군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300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를 학살했죠.

또 일부 천주교 신자의 일탈인데 모든 신자를 색출하려고 했죠. 당시 희생된 신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규석 이란 사람은 배교를 강요하는 민군에게 끝까지 굴하지 않다가 두 아들과 함께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은 분명 민군이 잘못한 것이죠. 사실 희생된 사람도 다름 아닌 제주도민이었거든요.

그런데 교회와 도민사회 양측은 그동안 만나서 화해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길 꺼려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화해하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것이죠.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점이 지적됐는데요.

토론이나 대화의 노력 없이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100여 년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3. 2003년에 와서야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문이 채택됐죠.

2003년은 전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막 취임했을 때입니다. 강 주교는 재임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그래서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을 알리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죠.

제주에서 물어보면 거의 모든 집이 4·3 피해자입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이 도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던 것이죠.

그리고 천주교에 대한 도민들의 부정적 인식의 원인을 추적하다보니 신축교안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입니다.

게다가 다음 교구장인 문창우 주교는 첫 제주 출신 교구장이잖아요. 문 주교는 주교가 되기 전부터 신축교안에 대해 오랜 기간 직접 연구한 사제입니다.

관련 논문을 쓰기도 했고, 2001년에는 선교사들의 문화우월주의 교회의 전통신앙 배척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두 교구장의 노력이 화해의 초석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창우 주교의 이야기 들어보시죠.

<문창우 주교 / 제주교구장>
"신자들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기초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제주도민들 위해서 우리가 혹시나 문화우월적인 자세 안에서 지내왔던 선교사적 반성과 그런 모습들 통해서 무엇보다 교회가 거듭 제주를 위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 가지게 됐고요."


4. 4·3도 그렇고요. 유독 제주는 이런 아픈 역사를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신축교안이 발생했을 때는 ''교안의 시기''라고 불릴 만큼 전국 각지에서 교회와 사회의 충돌이 잦았습니다.

배경은 거의 똑같습니다. 위세가 높아진 프랑스 선교사와 교회에 기대 이익을 얻고자 했던 사람들의 만행.

그래서 당시 뮈텔 주교는 지방민을 대표하는 중앙 관료와 교민 조약을 맺기도 했는데요.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수습하러 오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됐고, 충돌에 따른 희생이 컸던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과제는 뭐가 있을까요?

저도 취재를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했거든요. 그만큼 사전 지식이 없었다는 뜻이겠죠.

저뿐 아니라 리포트 보면서 "신축교안이 뭐지?" 이런 생각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반면 ''이재수의 난''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단 말이죠. 많은 신자가 잘 모른다는 사실이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창우 주교에게 ''다른 지역 신자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취지로 질문을 했습니다.

문 주교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설명했고요.

그러면서 "신축교안의 사례는 선교사 교육에 활용될 수 있을 만큼 가치가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숙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2003년 미래선언문 채택하고, 이렇다 할 협력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각자 행사에 초대받아 참석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물론 이것도 큰 변화이긴 한데요.

하지만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모색한다면 앞으로는 만남과 접촉이 잦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6. 제주교구가 제시한 미래 비전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앞으로도 지속적인 취재가 필요해 보입니다.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