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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금) - <2> 부부의 날에 세상 떠난 아들…5·18 열사 전영진 시몬

재생 시간 : 05:35|2021-05-21|VIEW : 413

[앵커] 부부의 날이 아들의 기일인 부부가 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고등학생 전영진 시몬 열사의 부모입니다. 무려 41년이 지났지만, 집을 나서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전계량·김순희 부부를 맹현균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아버지의 품에 아들의 ...

[앵커] 부부의 날이 아들의 기일인 부부가 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고등학생 전영진 시몬 열사의 부모입니다.

무려 41년이 지났지만, 집을 나서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전계량·김순희 부부를 맹현균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아버지의 품에 아들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중사격이 있던 날 머리에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故전영진 시몬 열사입니다.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영진 군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집에 들어왔습니다.

학교에서 독서 모임에 참석한 뒤 귀가하다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한 겁니다.

<김순희 도로테아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집에 들어와서는 옷을 벗어 막 던지면서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모르겠다고 화 나서 그러더라고요.”

어머니는 거리로 나가겠다는 아들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영진 군은 "어머니, 조국이 저를 부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김순희 도로테아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그랬더니 "어머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 그게 무슨 소리다냐, (그게 마지막 말이었던?) 마지막. 아침 한 숟가락 먹이고 부엌에서 설거지 하고 나오니까 없어요 나가고. 시몬 어디갔다냐 그러니까 모른다고 해요. 그대로 나가 갖고 그날 그렇게 나가서는 얼굴도 못 보고.”

이후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아버지가 찾아 나섰습니다.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에 쓰러지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때 아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전계량 안셀모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병원이) 죽은 사람, 신음하는 사람들 아주 아수라장이 됐어요.”

관자놀이에 총을 맞아 얼굴을 알아보기도 어려운 시신 위에는 아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전계량 안셀모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영진이가 총탄 맞고 여기로 왔다고 하는데 보러 왔다고 하니까, (관리자가) 사진을 갖고 있었어요. 그 사진이 눈 뜨고는 못 볼 정도로, 완전히 한 쪽이(얼굴 한 쪽이) 이렇게 돼 있었어요. 한 쪽이."

민주화를 외치다 숨진 아들이 폭도로 불린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장 분통 터지고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전계량·김순희 부부는 유족들과 함께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습니다.

아버지 전 씨는 1981년부터 10년 동안 유족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족들을 온갖 방법을 통해 괴롭혔습니다.

사람을 붙여 감시하는 건 기본이고, 모임을 방해하거나 돈으로 일부 유족을 매수하기도 했습니다.

유족을 이간질해 분열시키려는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4주기 추모 행사를 준비할 때는 어머니 김 씨가 정권에 맞서다 교도소에 수감된 적도 있습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부부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나선 이유.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죽음의 가치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 만큼은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김순희 도로테아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자식들이 어린 것들이 폭도, 빨갱이 누명 쓰고 죽었는데 엄마가 살아서... 내가 목숨 걸고 싸워서 저것들을 결코 억울한 것들을 벗기고 정의로운 죽음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전계량·김순희 부부는 아직도 5월 성모성월이 되면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저려옵니다.

<김순희 도로테아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그래서 저 성모님 많이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님(성모님)이 그 아픔을 그 고통을 다 겪으면서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 숨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그 심정,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아드님을 바치시고, 그 가슴에 멍이 들게 아프고.”

진심이 담긴 참회와 반성이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계량·김순희 부부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면) 용서 안 할 사람이 어딨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자기가 반성하고 뉘우치면 용서 안 할 사람이 있겠어요 어디?"

아직도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전 씨는 외출할 때마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외투에 붙이고 나갑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 진상규명을 외치는 절규가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전계량 안셀모 / 광주대교구 유촌동본당>
“세월호 사건이나 5·18 항쟁이나 나는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에요. 왜 진상규명을 않느냐, 진상규명 빨리 해라. 세월호는 진상규명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인데 불구하고."

아들의 기일인 오늘, 부부는 아들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 이 세상의 화해와 용서를 위해 기도합니다.

cpbc 맹현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