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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33일 ‘미소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복자품에 오르다

재위 33일 ‘미소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복자품에 오르다

[부온 프란조(Buon pranzo)!] 15. 복자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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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발행 [1678호]
▲ ‘하느님의 미소’라는 말을 들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미소.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제263대, 1912.10.17~1978.9.28)


“알비노 루치아니(Albino Luciani), 누구일까 궁금하실 것입니다. 제 이름입니다. 아,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입니다. 1978년 8월 6일, 바오로 6세 교황님 선종 후 진행한 콘클라베(Conclave)에서 저는 존경하는 추기경님들의 거룩한 표로 8월 26일, 263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33일 뒤, 1978년 9월 28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33일밖에 교황직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아스라이 ‘일찍 돌아가신 교황’으로밖에 기억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잊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한시도 여러분과 교회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항상 겸손

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1살에 펠트레(Feltre) 소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가혹한 전쟁과 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의 불공정함 속에서 나날이 가난해지는 가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데 힘이 드셨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스위스 등지로 가셨습니다. 신학교 방학이 돼 집에 돌아오면 저는 오전엔 교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오후엔 가족을 위하여 들판에 나가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제 동생 에도아르도(Edoardo)가 “우리 마을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 세 명을 꼽는다면, 형이 그 안에 들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사제품을 1935년 7월 7일, 제 나이 23세에 받았습니다. “앗숨!(Ad sum, 예, 여기 있습니다)” 힘차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온전히 저를 하느님께 바치며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항상 겸손’을 제 사제직의 중심 모토로 삼았습니다. 아, 나중에 주교, 추기경, 교황이 되었을 때까지 저는 사목표어를 ‘겸손(Humilitas)’이란 한 단어만 선택했습니다. 벨루노(Belluno) 신학교 교수와 부학장 임기 전, 2년 동안은 제 고향 카날레 다고르도(Canale d’Agordo)에서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가난한 가정을 찾아다니며 한 푼도 없는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게 기도하며 저 또한 가난한 사제로서 그들과 함께한다는 기쁨이 무엇보다도 컸습니다. 그 뒤, 20년간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교리 신학과 교회법, 문학, 예술 등 여러 분야를 강의하였습니다.

1958년 요한 23세 교황님으로부터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제 목소리가 주교가 되기엔 너무 약하고 건강도 좋지 않다는 비판에 교황님께선 “요즘 세상에 마이크가 있잖습니까?” 하시며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갑작스레 받은 비토리오 베네토(Vittorio Veneto) 교구의 교구장 주교 임명 소식에 저는 주교 망토까지 빌려 입고 로마로 갔습니다. 제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Patriarca)로 있던 1972년에 바오로 6세 교황님의 사목방문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얼굴이 그렇게 빨개진 날은 없었습니다. 2만여 명이 운집한 성 마르코 대성당 앞에서 그분은 자신의 교황 영대를 저에게 걸쳐주신 것입니다. 그날은 제 동생 에도아르도도 무척 놀랐다고 하더군요. 1973년 3월 5일, 바오로 6세 교황님은 부족한 저를 추기경으로 서임하셨습니다.

1977년 7월 10일 베네치아 신자들과 파티마 성지로 순례하러 갔습니다. 파티마 성모님 발현 목격자인 루치아 수녀님은 저와의 대화를 원했고, 제게 “교황 성하!’라고 불렀습니다. 전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듯 혼란스러웠습니다. 얼굴도 창백해졌습니다.


▲ 1978년 8월 26일 교황으로 선출돼 9월 28일에 선종함으로써 역대 최단기간인 33일간 재위했던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장례 미사 고별 예식이 10월 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앞 광장에서 거행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1978년 제263대 교황으로 뽑혀 33일 재위

다음 해, 바오로 6세 교황님이 선종하시고 콘클라베에서 제가 263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요한 23세 교황님처럼 현명한 마음도, 바오로 6세 교황님처럼 준비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분들의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와 함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두 분 교황님의 이름을 제 교황명으로 선택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로요(qui sibi nomen imposuit Ioannis Pauli Primi)”라고 말했습니다. 아, 교황직 33일 동안, 저는 수요 일반 알현을 9월 매주 4번을 했습니다. 겸손(Umilt), 믿음(Fede), 희망(Speranza), 그리고 사랑(Carit)을 주제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하느님의 미소’ 혹은 ‘교회의 미소’, ‘9월의 교황’이라고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혼란 속에서도 교회는 의연하게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미소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미소를 잃지 마세요.

2022년 9월 4일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주례로 저의 시복이 있었습니다. 약속드립니다. 부족했지만, 저는 평생 제 가슴에 그리스도를 품고 살았습니다. 그 힘으로 여러분을 위해, 우리 성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1978년 9월 27일 수요 일반 알현 때, 저의 마지막 지상의 삶에서 여러분을 만나며 했던 기도 생각나나요? 저는 지금도 이 기도를 드립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가 담긴 이 기도는 제가 어렸을 적부터 가르쳐주신 제 어머니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나의 하느님,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당신은 영원한 선(善)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위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 주님, 제가 더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알비노 루치아니 요한 바오로 1세 드림”



2022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

2022년 9월 4일, 요한 바오로 1세의 시복을 앞두고 그의 고향에는 많은 순례자가 다녀가고 있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던 그의 성덕을 기억하고, 그의 기도를 하느님께 간구하는 많은 사람이 지금 위로를 받고 기적의 치유를 받고 있다. 그의 짧은 33일의 교황직의 삶은, 그 전에 그가 살았던 사제 전체의 삶의 축소판이라 생각한다. 하느님의 그 심오한 부르심을 누가 이해하겠는지! 그의 나약한 음성과 젊었을 적 심하게 앓았던 결핵으로 약해 보였던 그에게 늘 비판을 일삼던 사람들과 언론들에 “높은 구름은 비를 부르지 않습니다. 네, 망가진 슬리퍼처럼 보이는 저를 어머니(교회)께서 돌봐 주시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지 않을까요? 저에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1세는 교회 역사상 최초로 선임 교황들의 이름 둘을 선택하였고, 1978년 8월 26일 콘클라베(Conclave)에서 111명의 추기경단에서 101표로 1900년대 이후 가장 많은 표로, 가장 짧은 시간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3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탈리아인으로는 마지막 교황이었다.






레시피 / 카네데를리를 넣은 맑은 탕(Canederli in brodo)

▲준비물 : 빵 100g, 우유 100㎖, 달걀 1개, 양파 2분의 1개, 베이컨 60g, 버터 10g, 다진 프레체몰로(prezzemolo, 생 이탈리아 파슬리) 약간, 소금, 후추, 맑은 육수.

→빵은 깍두기 모양으로 잘게 썰어 볼(Bowl)에 넣고 우유를 넣어 잘 스며들도록 10분에서 20분간 둔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잘게 다진 양파를 5분간 볶고, 베이컨과 함께 볶은 다음 식힌다.

→우유가 스며들어 부드럽게 된 빵에 볶은 베이컨과 다진 프레체몰로, 소금, 후추를 넣고 손으로 치대고 난 뒤 마지막으로 풀은 달걀을 넣어 반죽한다. 만약 좀 질면 빵가루를 넣어도 된다. 탁구공만 하게 손으로 동그랗게 빚어 놓는다.

→끓는 육수에 하나씩 카네데를리(Canederli)를 넣고 10분간 끓이면 된다. 볼에 육수와 함께 카네데를리를 두어 개 담고 다진 프레체몰로를 살짝 얹어 낸다.


▲모니카의 팁 : 가난한 산골에서 많은 자식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카네데를리를 넣은 따끈한 국은, 집에서 키운 닭과 비교적 싼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이를테면 우리 만둣국과 같은 요리다. 당시 붉은 고기, 즉 쇠고기는 중세기부터 귀족과 부자들만 먹었다고 한다. 주로 추운 지방에서는 버터를 쓰는데, 양파를 볶을 때 올리브유를 대신 써도 좋다. 빵은 남은 식빵이나 바케트가 카네데를리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프레체몰로가 없으면, 작은 실파 또는 부추를 다져 넣어도 좋다. 베이컨은 도톰한 것으로 사들여 작은 사각형 조각으로 잘라 볶는다. 육수는 찬물에 다듬은 생닭(좋아하는 육수용 고기)과 당근, 양파, 샐러리를 넣고 끓여낸 육수가 담백하고 맛이 있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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