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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정해진 문제, 그리고 답(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시사진단] 정해진 문제, 그리고 답(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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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4 발행 [1677호]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사제의 눈’이란 고정 코너를 맡고 있는 정수용 신부는 11월 17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누군가의 영명축일일까. 도통 알 수 없었다. 답은 수능일이었다. 수험생 가족이 있으면 또 모르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질문은 이어졌다. 시험문제도 알고 있고,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다면 그 시험은 쉽게 통과할 수 있을까. 문제와 답을 미리 안다면 만점을 받는 건 쉬운 일이다.

정 신부는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 문제가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 있었단다. 그것도 2000년이나 되었단다.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이 바로 우리에게 문제와 답을 미리 알려준 거였다. 그렇다. 우리에겐 이미 정해진 문제와 답이 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또한 ‘가장 작은 이’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늘 이렇다. 문제와 답은 정해져 있다. 정해진 답을 찾아 답안지에 쓰면 된다. 이를 보통 실천이라고 부를 게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들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돌보면 된다. 필요한 것을 내어주고 없는 사람들을 챙겨주면 된다. 교회는 정해진 문제와 답을 부지런히 풀면서,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도 함께 노력하자고 권해야 한다. 이게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이다.

수원 세 모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 참혹한 죽음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실천을 강구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지역에 있는지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반찬이나 간식거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찾아뵙는 등 나누며 살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선교가 아니라 돌봄을 위해 나누고 살피는 거다.

교회가 복지사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대개 정부의 위탁을 받아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노고도 고맙지만, 이미 시스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챙기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대체로 좋은 일이라고 평가받을만한 사업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인지를 살피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늘진 곳을 살피는 안목은 아무래도 우리 내부를 살피는 데서 키워질 수 있을 거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살필지 고민하고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단박에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방향은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의지를 담은 실행계획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교회의 말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운영하는 각종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레오 13세 교황의 노동헌장, 1891년에 나왔다. 131년. 이 정도 세월이면 노동문제에 대한 답은 가톨릭교회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회 내부에 모범적인 사례들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아예 노동조합조차 없는 사업장이 너무 많다든지, 임금피크제 같은 반노동적이며 반교회적인 임금제도가 어느 틈엔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남들 보기에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문제와 답은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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