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시사진단] 선한 포도밭 임자처럼(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시사진단] 선한 포도밭 임자처럼(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Home > 여론사람들 > 시사진단
2022.07.24 발행 [1672호]



예수님은 기존 가치와 질서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식으로 바뀔 거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도 그런 맥락에서 전복적이다. 포도밭 임자는 일꾼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포도밭에서 일꾼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일꾼을 찾으러 장터에 나가는 일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전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까지 계속했다.

오후 다섯 시까지 일꾼을 부르러 나간 것은 일꾼이 필요했다기보다는 일감을 찾지 못해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 몇 시간을 일하던 일꾼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씩을 약속했다. 하루 치 임금이었다. 다들 하루 치 임금이 절실한 사람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이 투덜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포도밭 임자는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게 ‘불의를 저지르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세상 이치로 보면 포도밭 임자의 태도는 불공정하다. 일한 만큼 대가를 주는 게 공정하지, 겨우 한 시간 남짓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루 치 임금을 주는 건 불공정하다는 거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셈법은 달랐다. 노동 생산성이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잣대였다. 늦게 온 사람에게도 하루 치 임금을 주는 게 불의는 아니라고 거꾸로 되묻는다.

교회는 성사와 교리교육, 각종 회합 등을 진행하는 포도밭 같은 곳이다. 그런데 정작 밭 임자는 온종일 밭을 비웠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터에 나가 일꾼을 찾는 걸 일삼았다. 밭 임자에게는 장터가 현장이었다. 교회가 어떤 건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교회는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교회는 병들게 된다.

밖으로 나갈 때는 일꾼에게 품삯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때 능력은 단지 자본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가 자본을 앞세워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교회의 능력은 그가 누구든, 몇 시에 왔던 하루 치 품삯을 받아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어김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데 달려 있다. 본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굳은 다짐도 필요하다. 교회는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보여줘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포도밭 주인처럼 선함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포도밭 임자처럼 일꾼을 구하러 장터에 나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교회 내부를 먼저 살피는 거다. 교회가 선한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교회가 운영하는 본당과 기관, 여러 회사는 포도밭 임자와 같은 선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는 남달라야 한다. 순명과 희생만 강요하는 방식이어선 곤란하다. 임금은 당장의 생계만이 아니라 미래를 꿈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하고, 여성이거나 배움이 짧다는 이유로, 또는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깎이는 사람은 없는지 챙겨야 한다.

교회가 포도밭 임자와 얼마나 닮았는지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만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이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포도밭 임자 식의 선함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솔선수범, 교회는 남보다 앞장서서 행동하여 몸소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그걸 해내는 게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이다. 자랑스러운 순교의 역사가 쉽지 않은 걸 제대로 해내라고 이 땅의 교회를 격려하고 있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