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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불타는 세계, 평화는 어디에?(마상윤, 발렌티노,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시사진단] 불타는 세계, 평화는 어디에?(마상윤, 발렌티노,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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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7 발행 [1671호]



최근의 세계정세는 ‘불타는 세계’라는 수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영국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제1차 세계대전기 영국과 폴란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쟁 드라마였다. 첫 시즌이 끝나며 두 번째 시즌이 예고되었지만, 제작과 방영이 늦춰지고 있고, 그사이 드라마 제목처럼 세계는 불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섯 달이 되어가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종료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며 전쟁 지속 의지를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도 꺾이지 않고 있고, 서방도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6·25 전쟁 중 지금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공방전이 2년 동안 펼쳐졌듯 우크라이나 전쟁도 소모전의 단계로 들어간 듯하다. 누가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이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 더 많은 무기의 신속한 지원을 촉구하지만, 서방은 러시아와의 확전 우려로 제공하는 무기를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기하는 핵전쟁의 공포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서방 주요국의 여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관심이 서서히 식어간다는 점이다. 전쟁의 여파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다. 모두 자기 코가 석 자인 셈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여론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자국의 경제문제 해소가 우선 과제가 되면서 다른 나라를 돕는 일은 서서히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작년 2월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 발생 직후, 저항하는 시위대를 군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참상에 세계는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는 곧 식어갔고, 미얀마 저항세력에 대한 지원도 줄었다.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최종 철수하면서 탈레반 천하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곤경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렸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는 않았다. 6월 말 이 나라에 강력한 지진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관심 두는 이는 드물다.

돌이켜보면,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끝난 이후의 약 30년은 상대적으로 평화의 시대였다. 탈냉전의 평화는 세 개의 기둥에 의지했다. 첫째,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았던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중요했다. 둘째는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 상호의존의 진전이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도 탈냉전의 평화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세 개의 기둥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두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힘은 아직도 강하지만 2008년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이후 약화 중이다. 트럼프 지지층에서 보듯 고립주의의 토양도 강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전통적 리더십 회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그의 국내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경제적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되는 요인 보다는 점차 지정학적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각국은 이제 핵심산업 분야에서 공급망 분리에 나선다. 민주주의도 확산보다는 쇠퇴가 두드러진다.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져서 이성적 토론과 타협에 근거한 정치가 자리를 잃어간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권위주의 세력의 부상도 위협적이다.

위기의 시대에 마음은 위축된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도생에 나서는 순간 세계의 위기는 더 심화한다. 역설적으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자기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위와 이익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슈퍼히어로 역할을 어느 한 국가에 기대할 수 없다면 공동의 협력만이 답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인류의 형제적 연대성을 느끼고 회복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평화과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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