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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현장에서] 장기 환자 가족의 십자가

[사도직현장에서] 장기 환자 가족의 십자가

김문희 신부(서울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서울대학교병원 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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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발행 [1668호]
▲ 김문희 신부



저희 원목실의 수녀님께서 전해주신 이야기입니다. 한 자매님께서 원목실로 수녀님을 찾아오셨는데, 그분은 십수 년 동안 병실에서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자매님께서 호소하는 고통의 이야기는 병상에 누워있는 자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다른 자녀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하셨다고 합니다.

남편과 다른 자녀는 병실에 자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코로나19가 퍼지고 나서는 밖으로 외출하거나 다른 사람과 교대해 집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병상의 일들은 의식도 없는 자녀를 홀로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에 여러 가지 힘든 감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혼자 싸우는 것만 같았고,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다른 가족은 아픈 자녀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느껴져 분노와 미움이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족의 처지도 힘든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병원비 때문에 십 년 이상 고통스러운 노동 속에서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자녀는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자신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 모두 환자를 돌보는 어머니의 고통을 모르지 않았고 또한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삶 또한 척박하고 여유가 없습니다.

병원에는 이처럼 오랫동안 입원해있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의식이 없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몇 년 혹은 평생을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환자 본인과 가족들은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의 잘못도 없지만, 모두가 간절히 노력하고 있지만, 힘든 현실이 그들을 갈라놓으려고 칼을 휘두르는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때때로 원수처럼 느껴지고, 나 자신이 원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큰 사랑은 그만큼 무거운 무게를 견디도록 요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장기 환자들과 가족은 오늘도 원목실을 찾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고, 묵묵히 병실과 삶의 자리로 다시 돌아갑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원목실장 김문희(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병원사목위원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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