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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시사진단]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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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발행 [1667호]



한국 천주교회 네 번째 추기경이 탄생했다.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만한 경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자 교회 안팎에서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한국 교회의 유일한 추기경이던 염수정 추기경은 “세계 교회를 위해,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많은 사목적 관심을 부탁”했고,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주시길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염 추기경과 정 대주교의 메시지는 모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 연대, 실천을 주문하고 있다.

축하 인사는 일종의 덕담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새해 새 아침에 어른들에게서 듣는 덕담은 대개 건강하라거나 돈 많이 벌라는 거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는 이야기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다. 돈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천박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교회는 꾸준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추기경 탄생에 즈음한 축하 인사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여기지만, 그럴수록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고 밀려나는 사람들을 교회라도 챙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이렇게 드러나는 거다.

자칫 의례적일 수 있는 축하 인사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가톨릭교회가 고맙다. 문제는 말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일 게다. 한국 천주교회가 지금 이곳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얼 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건 사회복지, 교정 등 특수 사목 분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당장 오늘 뭘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밥은 누구와 먹었는지 등 복음 정신을 일상에서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

복음의 일상화에서 중요한 관건은 교회의 얼굴이랄 수 있는 성직자들이 모범을 보이는 거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주교와 신부들이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살펴보면 좋겠다.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근처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등의 기준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밥을 먹는 일도 자기들끼리 또는 마음을 허락하는 소수만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면 좋겠다. 매번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렵다면,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면 좋겠다.

이를테면 서울대교구만 해도 교구청과 본당, 기관 등에 꽤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다양한 고용 형태로 숱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경비, 관리, 청소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분들도 많다. 교구장이 일년에 다만 몇 번이라도 이런 분들을 주교관에 초대해서 밥을 함께 나눈다면 어떨까. 식사 자리 자체를 축복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게다가 교구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여과 없이 책임자에게 이야기할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현실적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은 요즈음, 김 추기경이 왜 지금까지도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지 생각해본다. 최초의 추기경이어서? 서울대교구의 발전을 이끌어서?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그가 끊임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 있으려 노력했기 때문일 거다.

세상 이치는 다 비슷하다. 뭐든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기, 일상을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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