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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성폭력과 생명경시 풍조(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시사진단] 성폭력과 생명경시 풍조(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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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1 발행 [1660호]



20여 년도 훨씬 넘은 어느 날, 여성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 선배에게서 충격적인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다름 아닌 아주 어린 여자아이를 친부가 성폭행하여, 아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러한 뉴스가 신문지상은 물론 방송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선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선배에게 핀잔을 주며, 아무리 사람이 그것도 가족이 그런 몹쓸 짓을 했겠느냐고 당치도 않는 말이라고 손사래를 심하게 친 적이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요 몇 년 사이에 그런 뉴스를 한 달에도 수차례씩 접하고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성폭력 사례는 감소했지만 가족(친족) 내 성폭력이 증가한 탓이라고 보기에는 꺼림칙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9.6%가 평생 한 번이라도 강간, 성추행 등 신체접촉을 동반한 성폭력 피해를 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우리가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가족(친족) 내 성폭력의 사례는, 예전과 달리 즉 가족(친족) 내부의 일이라고 쉬쉬하며 감추려던 것을 이제 지상에서 공론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인권이 신장하면서 사회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좀 더 수용적이 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법적·제도적 강화하려는 노력이 수반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성폭력의 피해사례와 법적·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연구들은 많았지만, 성폭력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가족(친족) 내 성폭력을 고정화된 성 역할의 사회적 산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문제의 원인을 규명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특히 지속해서 여성인권 강화를 추진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있기에 그 원인을 고정화된 성 역할의 사회적 산물로 획일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성폭력은 강자가 약자를 성을 통해 비인간화시키는 극악한 폭력으로서 드러난다. 이는 사회뿐 아니라 가족(친족)에서도 이러한 양상으로 자행된다. 또한, 성폭력은 여성만이 그 피해자가 아니다. 2020년 경찰의 범죄통계자료를 보면 남성 성폭력(강간, 강제추행) 피해자의 발생은 6.6%에 이른다. 여성 피해자가 남성 피해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여전히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지만, 남성 피해자들 또한 상대적 약자의 위치를 가진다는 점에서 성폭력을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의 구도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의 존엄을 업신여기는 악랄한 죽음의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을 바라보는 인식이 욕구 해소나 강자가 약자를 유린하는 도구로 여기고 있는 문화가 팽배한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병리를 해결한 방법으로 법적 처벌 강화, 제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올바른 성교육이 매우 필요하다. “참교육은 인간의 궁극 목적과 더불어 사회의 선익을 지향하는 인격 형성을 추구한다.”(「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1항) 성교육 또한 이 목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즉 성교육은 성행위, 성생활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상대방의 존재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원리가 배제된다면 성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이는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생명경시 풍조 즉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거대한 악의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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