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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

[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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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4 발행 [1659호]




여러분은 ‘교회’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십자가, 성당, 성당에 모인 사람들, 교황님, 기도…. 아마 교회라고 하니까 개신교회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크게 보면 모두가 교회라는 말로 나타나는 것들로 우리가 자주, 또 쉽게 만나는 교회의 여러 모습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 성경에서 한데 모인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을 ‘에클레시아’라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집회’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즉, 교회는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시고 이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 신자 공동체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


우리는 흔히 내가 하느님께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가 하느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통해서든 친구를 통해서든, 아주 작은 사건이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경로는 예측할 수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왜, 또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데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우리를 참여시키시고 또 친교와 사랑을 나누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당신 손수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말입니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하느님과 같아질 욕심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을 저버렸으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는 없었던 ‘죽음의 불안’과 ‘육신의 고통’이라는 죄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셨습니다. 다시 당신의 ‘영원한 생명,’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으로 이끄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도 함께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말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희생 제사로 열리게 된 구원의 길이 땅끝까지, 또 모든 민족에게까지 펼쳐지기를 바라시며 사도 베드로를 시작으로 열두 사도를 뽑아 당신의 희생 제사와 구원 사업이 계속될 제도, 바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미리 약속하셨던 보호자이자 인도자이신 성령께서 내리심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게 됐습니다. 결국,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들이시기 위해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시작하신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비체입니다.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세우시고 시작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모든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안내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말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찬미 드리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분과 하나 됩니다. 또한, 기도로 하느님과 만나며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또,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께서 머물며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

교회는 또 언제 어디서나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의 전례를 거행하기에 ‘하나’입니다. 비록 부족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룩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에 ‘거룩하고’ 모든 시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있기에 ‘보편되며’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기에 ‘사도로부터 내려온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교회의 지체이며 각자 하나의 교회이기에 하느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교회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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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마르코 (4월 25일)


복음사가, 베드로 사도의 애제자, 알렉산드리아 교회 주교, 순교자.



마르코 복음사가는 신약성경에 무려 1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마리아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 그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했던 곳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 5,13)라고 할 만큼 그는 베드로의 애제자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기적같이 풀려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관계가 깊었던 마르코에 대해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진정한 대변인이며 통역관으로 여겼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친저성(직접 서술했는지 여부)에 관해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은 프리기아 지방(현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130) 주교였습니다. 그는 마르코 복음사가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의 통역관이 된 장로 요한 마르코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거나 행하신 것 가운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라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분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훗날 베드로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해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몇 가지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면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자신이 들은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파피아스의 단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39,14-15.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번역 인용)

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가 된 마르코는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묶어 이틀 동안 거리로 끌고 다녔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했던 마르코는 그렇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하고, 이에 놀란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급급했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마르코 복음사가의 성해는 829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습니다. 베네치아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대성당을 지어 그곳에 그의 성해를 안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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