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시사진단] 인권과 나이듦, 성숙함에 대하여(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시사진단] 인권과 나이듦, 성숙함에 대하여(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Home > 여론사람들 > 시사진단
2022.04.10 발행 [1657호]



소위 ‘인권변호사’로 일하기 전 ‘인권활동가’로 지냈던 적이 있다. 어떤 계기로 평소와는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삶에 있어서 큰 결단이었기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조직이 개인의 열정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 활동 내용에 관한 이견이 생겼고 논쟁이 이어졌다. 우연히 보게 된, 나보다 나이 많은 상급자들이 작성한 그 ‘조직’의 문서에서 나는 갈아치워야 할 ‘썩은 고인 물’이 되어 있었다.

조직은 개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개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성숙한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인권이 지향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평등한 공동체와 파편화된 개인들의 형식적인 집합소의 차이를 묻는다.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인권변호사’ 활동을 잘못하면 조기에 ‘원로화’되어 마치 자신이 큰 성과라도 이룬 양 뭐라도 되는 양 착각하기 쉽겠다는 것이었다. 뭔가 중요한 일은 자신이 하면서 남들에게는 일을 시켜야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몇 년 안 된 변호사를 만나기도 했고, 어떤 조직에서 경력 아닌 신입 변호사를 상근자로 모집하며 경력 변호사는 자신이 복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활동 초기 여러 인권 관련 네트워크에서 ‘실무 없이 발언 없다’라는 말을 해대며 평등한 실무 분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점점 주위의 ‘배려’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로의 존재 혹은 존재 의의는 있는 것인지, 존경받는 원로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소위 ‘곱게 늙는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오래전에 명성을 익히 들었던 수십 년 차 활동가 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헌신적인 활동의 얘기도 들었지만, 자기 조직 중심의 활동, 사회적 약자에 대한 종교적 교화의 필요성에 대한 언급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 다른 인권활동가들 위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며 이들에게 뭔가를 베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중심적인 성향, 욕심, 보상심리가 강화되기도 하고, 주변의 부추김이 늘어나기도 한다. 종교이건 사상이건 신념체계가 배타적으로 굳어질 수도 있고, 역으로 어떤 지향이나 욕심, 실망 때문에 그 신념체계 자체가 아예 부정될 수도 있다. 멋지고 아름다운 나이듦이란 무엇일까 묻는다.

내가 아무리 여러 실무자 중의 한 명, 단순한 한 표로 남고자 해도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의 차이가 있다. 남다른 발언력이 있고 따르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자신이 모임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전제하에 어떤 논쟁에서 다른 실무자를 ‘동등하게’ 비판하는 어떤 이를 보고 매우 당황한 적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간다고는 하지만 세대 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인권 감수성이건 새로운 인권 이슈에 대한 이해건 결국 충분히 다 쫓아가지 못할 수 있다.

삶을 통해 쌓아 온 것들의 무게와 시간의 변화에 따른 부족함을 인정하고, 평등을 지향하되 완전히 평등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해 성찰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성숙함인지를 묻는다.

인권이 실천되는 공간에 대한 얘기지만 꼭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주위 모든 이와 더불어 사람과 사람의 권리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무게와 부족함을 알고 곱게 늙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과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