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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신앙,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등불’

부활 신앙,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등불’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하느님의 구원경륜⑬- 영광의 신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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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발행 [1654호]
▲ 부활 신앙은 죽음의 순간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을 발하며 어둠에 쌓은 우리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그림은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작 ‘그리스도의 부활’. 출처=가톨릭굿뉴스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독제이다. 위령 미사 때 바치는 ‘감사송’에서 부활의 희망을 통해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건너가게 되는지, 다음과 같이 함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셨으니, 죽음의 운명이 분명히 다가올 것을 슬퍼하면서도 장차 불멸의 생명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과연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이것이 교회의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은 그 독침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들어가는 문’으로 변모되었다.

또한, 부활 신앙은 죽음의 순간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을 발하여 어둠 속에 처한 우리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요컨대 우리가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암울한 현실, 슬픔과 고뇌의 상황에서도 부활 신앙은 그것에 주저앉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 준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가지는 강력한 힘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로마 8,24)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구절을 ‘회칙명’으로 삼아서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반포하셨다. 이 회칙에서 교황은 부활 신앙을 통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어둠과 절망의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게 하는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의 사례를 제시하신다.

요세피나 성녀는 1869년 무렵,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태어나 9살 때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피가 나도록 매를 맞고 수단의 노예 시장에서 다섯 차례나 팔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한 장군의 어머니와 부인의 몸종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매일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았다. 그 결과 성녀는 평생에 144개의 흉터를 지니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 수단에서 이탈리아로 팔려 와서, 당시 이탈리아 대사에게 넘겨져 베네치아에서 살게 된다. 여기서 성녀는 그때까지 자신을 소유해 왔던 무시무시한 주인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주인을 알게 되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었다. 그때까지 성녀는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하거나 기껏해야 말 잘 듣는 노예로 여기는 주인들만을 모셔왔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주인 위에 계신 최고의 주인이시며, 선(善) 자체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스스로 매를 맞고 십자가에 처형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시어 성부 오른편에서 성녀 자신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참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덜 잔인한 주인을 만나기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궁극적인 의미를 주는 ‘참 희망’이었다. 성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저는 분명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사랑이 저를 기다려 줄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삶은 행복합니다.” 이러한 성녀의 삶은 부활 신앙이 주는 ‘참 희망’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참 희망’은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 것처럼 그것을 지니는 것만으로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비적인 함을 지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요세피나 성녀가 처했던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기쁨보다는 우울함이 상존하고 있다. 매체에서 전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세상은 왜 이렇게 악으로 가득하냐?’고 한탄과 푸념 섞인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과 마주하다 보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서서히 지쳐간다. 그리고 우울하고 암울한 순간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 속에 주저앉고 만다. 또한, 우리 시대에 눈에 보이는 소박한 희망, 거짓 희망들에 젖어 참 희망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이때 묵상과 관상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어둠 속을 헤매다 등대를 만난 배처럼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 찬 위로와 기쁨을 선사 받게 될 것이다.

복음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위로하신다. 배반의 등을 돌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과 신뢰의 부족을 질책하시지 않고 “평안하냐”라는 말씀을 건네시며 그들을 위로하신다. (마태 28,9) 죄책감으로 시달리며 마음의 문을 꼭 닫고 다락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세상에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시며 당신의 평화를 주신다.(요한 20,21) 당신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불신앙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토마스 사도에게 다가가 당신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도록 허락하시며 그의 불신앙을 치유하신다.(요한 20,27) 이렇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당신의 위로와 평화를 전해주기 위해 다가오신다. 부활 신앙은 이렇게 현세의 어려움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등불이 되어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며, 그리스도의 기쁨에 참여하여 우울함과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영광의 신비’ 덕분에 우리는 존재의 유한성(죽음)과 연약함에 더 이상 짓눌리지 않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얻어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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