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군부의 총탄 속에도… 새 생명의 울음소리 들으며 진료소 지킨 수녀

군부의 총탄 속에도… 새 생명의 울음소리 들으며 진료소 지킨 수녀

인권 주일에 만난 사람 미얀마 앤 로사 누 타웅 수녀

Home > 기획특집 > 일반기사
2021.12.05 발행 [1640호]
▲ 앤 로사 누 타웅 수녀가 미치나 시내에서 무장경찰 앞에 무릎 꿇고 쿠데타 반대 시위대를 쏘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다. 【CNS】



인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인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때론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말을 해주는 법이다. 지난 2월 28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에서 그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는 사진 한 장이 찍혔다. 무장경찰 앞에 무릎 꿇고 ‘쿠데타 반대 시위대를 해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한 수도자의 모습이다.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을 맞아 전 세계를 울린 사진 속 주인공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통역은 익명을 요구한 한 미얀마계 한국인이 맡았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수녀회 소속 앤 로사 누 타웅(Ann Rosa Nu Tawng, 46) 수녀다. 미얀마 최북단 카친주의 주도 미치나시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미치나교구가 세운 ‘말리 긴다이 전문 진료소(Mali Gindai Specialist Clinic)’에서 6년째 책임자 겸 회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동시에 간호조무사이자 조산사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의사들이 파업하고, 공립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우리 진료소로 환자들이 몰렸다. 그런데 지난 9월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의사도 간호사도 직원도 없었다. 그래서 나 혼자 여기서 먹고 자며 쿠데타 반대 시위대 부상자를 치료하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봤다. (신생아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아기도 많이 받았다.



-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아기는 그동안 몇 명이나 받았나?

매달 50~60명은 받은 것 같다. 하루에 많게는 10명도 받아봤다. 한때 군부에서 시위대를 도울까 봐 의료 행위를 일체 막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한밤에 촛불을 켜놓고 아기를 받았었다. 밤낮으로 혼자 치료하랴 아기 받으랴 정말 힘들었다.


▲ 누 타웅 수녀가 신생아를 안고 있다. 누 타웅 수녀 제공



-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


(목에 건 십자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주님께서 곁에 늘 함께하시기에 버틸 수 있었다. 매일 묵주기도를 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9월부턴 의사와 간호사ㆍ직원들이 비교적 낮은 월급에도 일을 해주러 왔다. 지금은 모두 25명이 우리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 매달 이들에게 주는 월급은 한국 돈으로 500만 원에 이른다. 그동안 모은 돈과 친인척에게 빌린 돈, 해외 NGO 등에서 받은 기부금으로 병원을 유지하고 있다.





-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인건비 주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어렵다. 그래서 더 많은 환자를 끌기 위해 출산 병원비를 다른 곳 절반 값으로 받고 있다. 사실 인건비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의료 장비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적절한 조처를 하지 못해 죽는 아기도 많았다. 정말 가슴 아팠다. 우리 진료소에는 산부인과 의사가 2명 있지만, 정작 태아를 볼 수 있는 초음파 장비가 없다. 수술에 필요한 마취 기기도 없다. 그래서 몇 달 전에 2000만 원 빚을 내서 마취 기기를 하나 장만했다. 빚은 겨우 300만 원 갚았다. 내 소원은 지금 진료소보다 더 크고 번듯한 병원을 새로 하나 짓는 것이다. 필요한 장비도 다 갖추면 좋겠다. 그래서 아기와 임산부는 물론 응급환자들의 목숨도 더 많이 구하고 싶다. 당장은 꿈 같은 이야기지만, 주님께서 분명 도움을 주시리라 믿고 있다.


▲ 말리 긴다이 진료소 앞에 선 누 타웅 수녀와 직원들.



▲ 누 타웅 수녀와 진료소 직원들.



-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군경 앞을 가로막았다. 어떤 심정이었는가?

나는 2월 28일 군인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는 게 너무 슬프고 안타까워 울었다. 처음 군경을 봤을 때, 그들이 사람을 총으로 쏘고 잡아가서 무척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시위대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그냥 도망칠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구하고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에 경찰과 군인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무서워할 시간도 없었다. 무척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하느님이 나를 구해주셨고, 사람들을 구하는 데 나를 쓰셨다. 주님과 성령께서 내게 힘을 주셨다. 나는 그날 죽지 않았다.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셨다. 하느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3월 8일 내 바로 앞에서 군경들이 한 남자를 쏴 죽였다. 나는 그 충격적인 날을 잊을 수 없다.



- 요즘도 거리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는가?

지금은 진료소에 갇혀 꼼짝 못 하고 있다. 예전에는 거리로 나가 시위대를 보호하고, 환자들도 치료했다. 그러자 군부에서 보낸 사람이 우리 진료소에 서너 차례나 찾아와 “절대 시위대를 돕지 말라”고 위협했다. 군부 감시가 삼엄해 가까운 데라도 잠깐 나가려면 안전을 위해 꼭 다른 사람과 동행해야 한다.


▲ 누 타웅 수녀가 쿠데타 반대 시위대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



- 쿠데타가 일어난 지도 10개월이 됐다. 현재 미치나 상황은 어떤가?

상태는 점점 악화하고 있다. 경찰과 군대는 시민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괴롭히고 약탈하고 있다. 매일 총성에 시달리는 시민들은 당장 내일이 없을까봐 불안해한다. 우울증을 앓는 이도 많다. 유독 청년들이 힘들어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최근 시내에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군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청년들은 지방으로 도망가 카친독립군(KIA)에게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전도유망한 대학생이다. 사람을 살릴 의대생도 있다. 그런 젊은이들이 책 대신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다. 그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온다.



- 카친독립군은 누구인가?

미얀마는 버마족(인구 약 70%)을 비롯해 135개 민족이 사는 다민족 국가다. 카친족도 그중 하나다(전체인구 약 1.5%). 카친주는 카친족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지만, 카친족은 그리스도인이 다수다. 가톨릭 신자도 많다. 나 역시 카친족이다. 이번 쿠데타 한참 이전부터 카친족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은 각자 저항단체를 꾸려 미얀마 정부에 대항해왔다. 카친족은 1960년 카친독립기구(KIO), 1961년 카친독립군(KIA)을 결성했다. 카친독립군은 최근까지도 미얀마 쿠데타 군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 군부가 가톨릭교회를 탄압하지는 않는가?

진료소에 갇혀 지내는 데다 인터넷 상태가 좋지 못해 다른 지역 소식을 많이 알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가톨릭 신부가 서너 명 잡혔다가 풀려났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22일에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카야족이 주로 사는 로이코교구 교회 진료소에서 신부와 수녀, 직원 등 모두 합쳐 17명이나 체포됐다고 한다. 군부 입장에선 이들이 불복종운동을 벌이거나 시민방위군(PDF)을 도울까 봐 겁난 모양이다. 시민방위군은 반군부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창설한 군대다. PDF는 현재 KIA를 비롯한 소수민족 반군과 연대하고 있다.


▲ 누 타웅 수녀가 코로나19 방역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있다.



- 내전에 가까운 현재 상황에서 미얀마 교회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나?


미얀마 교회는 현재 국내실향민(IDP)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약 30곳이 있는데, 미치나 시내에만 6곳이 있다. 작은 곳은 500명, 큰 곳은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캠프에선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먹거리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 진료소에서도 자동차를 타고 캠프로 왕진을 가고 있다. 캠프에는 임신부도 많다. 그들을 우리 진료소로 데려와 출산을 돕고 있다. 깊은 절망에 빠진 실향민에게 가장 필요한 조치는 바로 심리치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


▲ 누 타웅 수녀가 진료소 접수대에서 서류 업무를 하고 있다.



-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 교회 언론사인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단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다. 미얀마를 위해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주는 한국 신자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은 인터뷰도 처음이다. 나는 우리 진료소 간호사들과 한국에서 의료와 심리치료 공부를 하고 싶다. 심적인 고통이 큰 우리 국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한국 신자들과 소통하며 미얀마를 도울 방법을 함께 찾고 싶다. 사태가 안정되면 한국인들도 꼭 미얀마에 놀러 오면 좋겠다. 주님 안에서 하나인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다.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