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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조선으로 가는 프랑스 함대에 통역인으로 승선

김대건, 조선으로 가는 프랑스 함대에 통역인으로 승선

[신 김대건·최양업 전] (18)프랑스 함대 에리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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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9 발행 [1627호]
▲ 에리곤호와 같은 3등급 프랑스 프리깃함.



18세기 유럽에서는 한때 중국풍이 유행했다. 프랑스어로 ‘chinoiserie’(시누아즈리)라고 부른 중국 열풍은 유럽의 문화를 바꾸었다. 가정집은 중국풍 벽지로 도배됐고, 공원의 벤치와 탑, 정원이 중국풍으로 장식됐다. 이처럼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중국을 우호적으로 대했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은 얼마 안 가 선박과 외교사절, 아편으로 중국을 야금야금 침탈했다. 또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자유 무역을 표방하며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조선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통상 교섭을 시도하자 프랑스도 뒤늦게 여기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었다.




조선인 통역사를 요구하다

1842년 2월 초순, 프랑스 해군 장교 장 바티스트 토마 메데 세실(Jean-Baptiste Thomas Medee Cecille) 함장이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를 불쑥 찾아왔다. 그는 르그레즈와 신부 후임인 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루이 필리프 1세 국왕의 명으로 아돌프 필리베르 뒤부아 장시니(Adolphe Philibert Dubois de Jancigny) 전권대사를 보필해 극동 조사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조선으로 가서 그 나라 왕에게 다른 나라들을 제외하고 프랑스하고만 교역하는 조건에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것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과 조선 사이에 있는 해로를 지배하기 위해 일본의 섬 하나를 점령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리브와 신부에게 “이 일을 위해 조선 학생 중 한 명을 자신의 통역인으로 달라”고 요청했다.

▲ 세실 함장.



세실 함장은 국왕의 전권대사를 태운 군함을 몰고 가 조선 헌종 임금과 통상 조약을 맺고, 마카오처럼 일본의 한 섬에 조계지를 조성해 극동 아시아와의 자유 무역을 프랑스가 독점할 계획이었다. 그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조선말을 하는 믿을만한 통역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리브와 신부는 “조선 학생 한 명뿐만 아니라 조선 학생의 라틴어 대답을 프랑스어로 옮길 수 있게 선교사도 한 명 주겠다”고 즉답을 했다. 리브와 신부는 1842년 2월 12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 신부들에게 쓴 편지에서 “세실씨는 대단히 만족해했고, 저는 더 만족스러웠다”고 보고했다.



극동대표부장의 결단

리브와 신부가 세실 함장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요구도 하지 않은 프랑스 신부를 동행시킨 이유는 뭘까? 극동대표부장으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리브와 신부는 조선 선교지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는 세실 함장을 만나기 며칠 전인 1월 24일 교구장 선종 후 북경교구를 관할하던 북경교구 총대리 카스트로 신부가 보낸 연락원들에게서 1839년 조선에서 박해가 일어나 서양 선교사들이 체포됐고,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을 비롯한 300여 명의 교우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모방ㆍ샤스탕 신부의 생사 확인이 시급했다. 이들이 순교했다면 조선 교회를 복원하고 극동대표부와 연락망을 재건할 선교사를 보내야만 했다. 조선 선교지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수집하고, 또 조선 교회를 돌볼 수 있는 누군가를 입국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대표부에 있는 신부 한 명을 조선으로 보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리브와 신부는 세실 함장이 돌아간 후 며칠 동안 대표부 사정을 잘 아는 몇몇 인사들과 상의한 후 메스트르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낙점했다. 극동대표부에는 메스트르 신부 외에도 게랭ㆍ브뤼니에르ㆍ블랑생 신부가 거주하고 있었다. 게랭과 브뤼니에르 신부는 너무 젊고, 블랑생 신부는 엄격하지만 신중함과 항구함이 부족해 이 일의 적임자로 메스트르 신부를 선발했다고 리브와 신부는 본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리브와 신부의 속내는 보고 내용과 조금은 달랐다. 메스트르 신부는 1840년 9월 베르뇌 신부와 함께 마카오에 도착했다. 이미 파리에서 통킹 선교사로 임명된 베르뇌 신부와 달리 그는 마카오 극동대표부에서 임지를 배당받기로 되어 있었다. 리브와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극동대표부 부대표로 메스트르 신부를 추천했으나 함께 생활하면서 직설적인 성품을 지닌 메스트르 신부와 자주 부딪쳤다. 메스트르 신부는 대표부의 부조리한 일들-일례로 신학생들에게 대표부 잡무를 시키는 일 등-을 장상들에게 보고해 리브와 신부에게 어느 정도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 또 그는 리브와 신부가 사목에 도움이 안 되는 프랑스어를 조선인 신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리브와 신부는 1842년 4월 1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 신부들에게 쓴 편지에서 자기 속내를 이렇게 드러내 보였다. “메스트르 신부와 단 두 달을 지내보니 그는 처음에 제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대표부에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를 선교지로 보내는 것이 훨씬 적절해 보입니다.”

리브와 신부는 메스트르 신부가 조선으로 가겠다고 수락하자 그와 동행할 신학생으로 김대건을 뽑았다. 그가 세실 함장의 조선어 통역사로 김대건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먼저, 김대건이 최양업보다 지리에 밝았다는 점이다. 김대건과 최양업은 똑같이 리브와 신부에게 지리학을 배우고 훗날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을 위해 활동하지만 지리 감각만큼은 김대건이 최양업보다 확연히 뛰어났다. 그래서 극동대표부장인 리브와 신부 입장에서는 김대건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리브와 신부가 사제가 될 재목으로 최양업과 비교하면 김대건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본지 1625호 8월 15일 자, 리브와 신부가 1839년 8월 11일 자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참조)

리브와 신부는 신학생 최양업에 대한 애정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메스트르 신부의 출발 이후로 제게는 드 라 브뤼니에르 신부와 게랭 신부가 저를 돕는 데 보인 열성에 기뻐할 일만 있습니다. 드 라 브뤼니에르 신부는 남은 조선 학생의 교육을 맡고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그는 이 학생에게서 많은 재능, 무엇보다도 훌륭한 판단력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브뤼니에르 신부는 그를 가르치기에 아주 좋은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리브와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 신부들에게 보낸 1842년 4월 1일 자 편지에서)




프랑스 군함에 오르다

신학생 김대건은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1842년 2월 15일 세실 함장의 프랑스 프리깃함 에리곤(Erigne)호에 올랐다. 중국 선교지로 가는 라자로회 다갱ㆍ프리바 신부도 함께 탑승했다. 1836년 9월 취역한 에리곤호는 3등급 프랑스 군함으로 길이 약 49m, 폭 12.5m 크기에 포 46개 문을 무장한 소형 구축함이다.

세실 함장의 조선어 통역사로 선발된 신학생 김대건은 에리곤호 승선 전 군의관으로부터 건강검진을 받았다. 군의관은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면서부터 김대건을 괴롭혔던 질병이 큰 감기를 소홀히 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며 약을 처방해 줬다. 에리곤호에 승선하기 전부터 이 약을 먹고 호전된 김대건은 5년여 그를 괴롭혔던 묵은 병을 떨쳐낼 수 있었다.

2월 15일 마카오에서 출항한 에리곤호는 닷새 뒤인 20일 밤 10시 마닐라에 도착했다. 항해를 위한 보급품을 싣고자 정박한 에리곤호는 뜻하지 않게 세실 함장의 눈병이 호전될 때까지 2개월간 마닐라에 묶이게 된다.


▲ 에리곤호에서 하선한 김대건 신학생이 메스트르 신부와 라자로회 선교사들과 함께 2개월간 머문 마닐라 라테라노의 성 요한 신학원.



신학생 김대건은 마닐라에서 1842년 2월 29일 자로 그의 첫 번째 편지를 썼다. 스승이며 전임 극동대표부장이었던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것이다. 김대건은 이 편지에서 스승 신부에게 “이 여행이 비록 험난할 줄을 알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사하게 지켜주시리라 희망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김대건은 메스트르 신부와 라자로회 선교사들과 함께 마닐라에 머무는 동안 라테라노의 성 요한 신학원에서 기거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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