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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미래 사제들의 형제애 증진할 것”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미래 사제들의 형제애 증진할 것”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유흥식 대주교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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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발행 [1622호]
▲ CPBC 보도주간 정수용 신부 진행으로 특별대담을 하고 있는 유흥식 대주교.



신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유흥식 대주교는 무척 편안해 보였다. 성성(聖省) 장관직 수행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은 하느님께 모두 맡기고 내려놓은 듯했다. 오는 20일 오전 11시 대전교구 솔뫼성지 기억과 희망 성당에서 한국 주교단 주관으로 봉헌될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 감사 미사를 앞두고, 6일 대전교구 신교구청사에서 CPBC TV가 유 대주교와 특별대담을 했다. CPBC 보도주간 정수용 신부의 진행으로 유 대주교의 성성 장관 임명 소회와 각오, 포부, 임명과정에서의 뒷얘기, 성직자성 소개와 바티칸에서의 삶 등을 듣는 자리였다. 특별대담은 17일 오전 11시를 시작으로 20일 오후 1시, 21일 오전 7시, 23일 오후 8시 등 네 차례 CPBC TV를 통해 방송된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먼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늦었지만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미 대전교구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 소감을 소상하고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어서 저도 놀랐지만, 많은 분이 놀랐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찾아뵈었을 때 교황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셨던 일이었기에 시간을 갖고 기도하고 숙고한 뒤에 “예”라는 답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임명 당시를 회고하시면서,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고 표현하셨는데요. 장관직을 제안하시면서 교황님의 첫 말씀은 무엇이었는지요?

한국에 계셨던 선교사 신부님 한 분이 어려우셔서 제가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 신부님이 다른 분과 좀 맞지 않아 우리나라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분은 정말로 한국을 사랑했고, 좋아했고, 한국에서의 삶을 기뻐하며 사셨지만, 종내는 그 일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로서도 그 신부님을 도와드리지 못해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혼자 떠나시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밤 10시가 넘어 인천공항 출국장까지 가서 만난 뒤 보내드린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일을 교황님께서 다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교황님께서는 “그 신부님에 대한 주교님의 사랑 고맙습니다. 주교는 그래야 합니다” 하시면서 “주교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곧 그만둬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주교님 생각이 났는데, 주교님을 베니아미노 스텔라(Beniamino Stella) 추기경님의 후임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고요. 말문이 막혀 교황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교황님,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시골 사람이고요. 그냥 아시아 변방 시골에서 교구민들과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고, 신학교에서는 신학생들한테 좋은 신부가 되려고 노력했고, 신부님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고, 주교님들 사이에서도 그런 노력을 해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하고 여쭸지요. 그랬더니, 교황님이 말씀하실 때 조금 유머러스하신데요, 교황님께서 “주교님, 제가 주교님 뒷조사를 다 했어요” 하시며, “주교님, 교황청에 아프리카 출신 장관 두 분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현재 한 분밖에 없는데 아시아의 중요성, 그리고 중국 교회를 보며 사람을 찾다가 주교님이 딱 떠올랐습니다. ‘아, 찾았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해서 주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만한 사람들한테 이렇게 저렇게 다 알아보았습니다”고 하시면서 “주교님께서는 잘하실 수 있으시니 오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보면, 전 세계에는 수많은 주교님이 계시는데 교황님께서 어떻게 유 대주교님을 알게 되셨는지요. 또 그간 교황님과 대주교님이 어떻게 소통해 오셨기에 장관직에 임명에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때 한국에 오셨을 때도, 오시기 전에도 교황청 가서 30분 이상 개인 알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오셨을 때도 이틀간 대전교구에 계셨는데, 그때도 곁에서 수행했지요. 그러면서 교황님께서 저를 좋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1년에 한두 번씩은 편지를 드렸었지요. 해마다 한 번 정도는 로마에 가면 개인 알현을 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수요 일반 알현을 가든지, 아니면 산타마르타의 집에서 봉헌되는 합동 미사에서 교황님과 미사 보고, 잠깐 인사드리는 그런 관계는 계속됐죠. 그러다가 2018년 10월에 ‘청년’을 주제로 열린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에 교황님 초청 대의원으로 함께하며 30∼40일 머물렀는데, 그때 산타마르타의 집에 제 숙소를 주셨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교황님과 식사를 같이 했어요. 물론 식탁은 따로 있지만, 채소를 가지러 갔다가 “교황님 뭐 드세요?” 하고 여쭙기도 하고 그랬지요. 정말 할아버지 같은, 정말 교황님과 가까운 그런 관계가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최양업 신부님 시복 업무차 로마에 가기 전에 교황님께 개인 알현을 여쭸는데, 곧바로 답을 주셔서 날짜랑 시간을 잡게 됐고, 교황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길에 장관직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주교님의 친화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교황님께서 유심히 보신 것 같아요.

맞습니다. 나중에 교황님 개인비서 몬시뇰이 “교황님께서 왜 이렇게 (장관직 수락) 답변이 늦느냐고 하시며 저의 답변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전하길래 교황님께로 가서 40분 동안 서재에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교황님께 “교황님,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알지만. 뭘 해야 합니까?” 하고 여쭸더니, “그동안 뭐했습니까?” 하고 물으시길래 “단순하게 교구민들, 주교님들, 신부님들과 그냥 지냈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교황님이 “그거예요, 그거. 그게 교황청에 필요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당신께서 바라는 대로, 특별히 조금 더 친교적이고 함께하는 그런 교회였으면 좋겠는데, 경직된 모습이 많습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교황님, 그거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교황님께서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이제 성직자성 장관이 되셨으니 교황청 조직에 생소한 분들을 위해 교황청 성직자성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주된 임무는 무엇인지 짧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성직자성은 가톨릭교회의 사제들과 부제들, 미래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돌보는 부서입니다. 교황님을 대신해 사제와 부제들, 신학생들이 훨씬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고요. 그러려면 현시대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한편으로는 시대와 함께 가면서 시대에 앞서 가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역할이 제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임무라면 성직자의 삶과 직무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성직자성 장관으로서 특별히 모범으로 제시하고 싶으신 인물이나 사제상이 있으신지요?

전통적으로 신학교를 방문했을 적에 가장 많이 걸려있는 성화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모습이지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사제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교황님께서 회칙 「모든 형제들」을 통해 ‘형제애’가 코로나19를 이기는 구체적인 치료약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강조한 것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을 닮은 사제의 모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언제든지 형제애를 증진시키는 사제가 돼야 하고요.





-한 부서의 장관으로서만이 아니라 교황님을 보필하는 임무도 막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교황청 9개 성성 가운데 아시아 출신 장관이 두 분이 되셨는데, 아시아 교회의 비중이랄까, 또 아시아 교회에 거는 기대는 무엇이 있을까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시아의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아가 성소 면에서, 신자 수 면에서, 다른 모든 면에서 열악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 교회는 우리 기준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을 통해 좀더 인적, 물질적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형제적 실천을 통해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할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주교님은 특별히 한반도 출신 교황청 장관이 되셨는데, 마침 교황님의 방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황님 방북이 한반도 평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주 굉장히 미묘한 주제인데요. 분명한 건 제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가면, 성직자들과 신학생을 위해 일하겠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의 모든 일에 대해서 떠날 수는 없잖아요? 6ㆍ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1주년이 됐는데, 아직도 우리는 같은 형제이면서도 갈라져 살아야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직도 남북문제만 거론되면 색깔론이 나오고, 완전히 갈라서고, 대화할 수 없는 처지까지 되잖아요.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빨리 화해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개인적으로 교황님께 편지를 썼어요. 2018년 교황님께서 기회가 된다면 평양을 방문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마침 그때 제가 세계주교시노드에 참가할 때여서 몇 차례 교황님과 대화를 했어요. 그때부터 교황님 방북을 위해 저는 하루도 기도를 빼놓은 적이 없습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신자이고, 오바마 대통령의 뜻에 따라 쿠바랑 국교를 수립하는 데 교황님께서 도움을 주셨기에, 굉장히 좋은 때가 왔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 화해에 있어서는 명확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계시고, 교황님께서 같은 형제이면서도 갈라져 살아온 한민족을 무척 마음 아파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방북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바탕을 마련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4월 교황님을 알현했을 때 “지금이 (방북에) 가장 좋을 때”라고 말씀드렸더니, 교황님께서도 “주교님, 문재인 대통령님께 빨리 준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고, 주교님께서도 잘 준비해주시면 저도 북한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교황님의 뜻입니다.

 

-오는 10월 말 G20 정상회의가 로마에서 열리고 이 자리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합니다. 두 분 모두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님 알현이 기대되고 있고, 마침 또 7월 5일에 박지원 국정원장도 교황 방북을 추진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는데, 한미 두 나라 정부가 교황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오는 10월 30∼31일 G20 정상회의가 끝나고 나서 11월 초에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님 알현이 잡힌 걸로 알고 있고요. 문 대통령께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교황님께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는 일정을 통해 교황님의 방북과 관련한 길이 열리길 기대합니다.

 


-인도적 대북지원이 한반도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백신 나눔 운동을 하고 있고, 대주교님께서도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 교황청을 통해 북한과 백신 나눔도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중요한 것은 북녘 형제들의 삶의 모습이죠. 저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일을 하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을 네 차례 방문하면서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은 명분을 굉장히 중요시하더군요. 우리도 상대방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북한의 자긍심을 살려주면서 지원해주는 것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뢰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이렇게 전 세계 교회를 위해 애쓰시는 교황님을 보필하다 보면, 정말 바쁘실 것 같습니다. 대주교님을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혹시 로마에서 한국 음식을 드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유학을 가서 8년간 이탈리아에서 살았기 때문에 로마 생활은 익숙합니다. 로마 음식도 잘 먹고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현지 음식을 잘 먹고요. 그런 면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요.

 


-로마 생활도 많이 궁금해하시는데요. 숙소나 거처는 정해지셨는지요?


교황청에서는 장관들에게 아파트를 제공합니다. 아파트를 원하느냐고 물어봐서 좋다고 답변을 했어요. 우리나라라면 아파트 제공이 며칠 만에 끝나겠지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로마에선 하루아침에 안 됩니다. 우선은 꼰솔라타선교수도회 로마 총원에서 거처하게 되는 데, 총원에서 성직자성까지 걸어서 채 10분이 안 걸려요. 제가 다른 숙소를 찾을 때까지 총원에서 저에게 손님방을 내주기로 했기에 거기서 살다가 교황청에서 아파트를 제공해 주면 그리로 들어갈 작정입니다.

 

-교우분들께서 ‘장관’이라는 단어를 들으시면, 우리나라 ‘국무회의’ 같은 기구를 연상하시는 듯합니다. 대주교님께서 로마에서 지내시게 되면, 교황님을 얼마나 자주 뵙고 또 일상은 어떻게 되는지 교우들이 궁금해하시는 데요.


다른 친구 장관한테 물어봤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교황님하고 직통 전화가 있다고 합니다. 가끔 교황님께서 전화를 주신대요. 사안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르시고, 언제든지 교황님이 직접 전화를 하신답니다. 모시는 분의 뜻에 순명하며 살겠습니다.

 

-로마생활에 잘 적응하시고 어려움 없으시길 바랍니다. 한국에는 종종 오시겠지요?


아직은 제가 대답을 명확히 못하지만 교황청에도 휴가가 있습니다. 한 달 이상으로 알고 있고요. 그럴 때는 저도 휴가를 쓸 계획입니다. 교황님을 도와 장관 직무를 하다가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일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요. 그럴 때 경우에 따라서 잠깐 우리나라에 들를 기회가 있겠지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이번에는 화제를 좀 돌려 대주교님 어렸을 적 얘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세례를 대건고 재학 중에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창시절 때 어떻게 성소를 느끼셨고, 지금까지 어떻게 성소를 지켜오셨는지요?


제가 대건중ㆍ고를 다녔는데요.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학교 옆 성당을 간 게 기억납니다. 중학교 때 조금 눈이 뜨이니까, 서양사에서 세계를 봤을 때 잘 사는 나라는 다 그리스도교인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아는 게 좋겠다 싶어서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갔지요. 그렇게 교리를 배우고 대건고 1학년 성탄 때 세례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3월인가 4월인가 됐는데, 학교에서 저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했어요. 그 장학금이 오지리(오스트리아)부인회에서 주는 장학금이었는데, 돈을 받고 나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드려야겠다 싶어 성당에 열심히 다녔어요. 레지오마리애에도 들어가고 교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어요.
 

그때 쌘뽈여중ㆍ고 수녀님들이 많이 계셔서, 교리반에서도 그렇고 수녀님들, 선생님들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제가 3학년 올라갈 때 “너 신부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저한테 계속 남았죠. “그럼 한 번 가볼까? 싶어서 고3 1년 동안 새벽밥 먹고 새벽 6시 미사에 참여하고, 학교 가서 공부한 거예요. 나중에 신학교 간다고 그러니까, 입학 조건이 세례받은 지 최소 3년이 지나야 하는데, 저는 2년밖에 안 돼서 안 된다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알았는데, 본당 신부님께서 신학교에 전화를 거셔서 “고3인데 매일 미사 보는 아이가 있다”고 문의하셔서 신학생 지원을 받아주셨다고 하더군요.

 

-하느님의 부르심이지요?


하느님의 부르심은 맞는 것 같습니다.

 


-포콜라리노 주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콜라레 영성이 사제 성소를 지키는 데 어떤 도움이 됐는지요?


신학교로 들어갔잖아요. 저는 신학교가 천국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 천국이 아니었어요. 집에 갈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하느님께 “하느님, 저 어쩌면 좋겠습니까. 일단 들어왔으니까, 1년 동안은 신학교에 남아 있겠습니다. 그 뒤에는 하느님께서 제가 어떻게 할지 알려주세요” 하고 기도했지요. 그러면서 살고 있다가, 4월에 특강이 있었어요. 저녁에 특강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이탈리아 사람 둘, 브라질 사람 한 명이 와서 포콜라레에서 복음 말씀을 어떻게 실생활에 옮기는지 체험담을 들려줬는데, 그 체험담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그 뒤로 신학교 내 포콜라레 그룹을 시작해 정기적으로 모였는데, 저도 거길 갔어요. 시간이 갈수록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신학교가 좋아졌어요. 신학교는 똑같은데 마음이 달라지니까 좋아지더군요. 좋아졌는데, 신학교를 왜 나가겠어요? 그래서 군에 다녀온 뒤 황민성(제2대 대전교구장) 주교님의 허락을 받아 로마에 가서 포콜라레운동 사제학교에서 8년간 지내며 그분들 도움으로 공부하며 말씀의 삶, 친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체험과 함께 실질적으로 배우는 계기가 됐고요.

 


-끝으로 한국 천주교회 교우 여러분께, 저희 CPBC 시청취자와 독자분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번 4월에 바티칸에 갔을 때, 교황님 말씀을 숙고하고 두 번째로 알현하면서 답변을 드렸어요. 그때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주교님,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이 됐습니다. 주교님이 성직자성 장관이 됐으니까, 한국의 많은 사제가 주교님처럼 한국을 떠나 세계 곳곳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가 복음을 들여오고, 평신도에 의해 교회가 자라난 역동적 교회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저도 그렇게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교황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봐도 6ㆍ25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제는 세계를 향해 한국 교회도 선교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베풀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은 IT 면으로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웃에게 베푸는 성장의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황청에 한국 사람이 들어가면 좋겠다, 들어가야 되겠다는 말씀을 많은 분이 하십니다. 저를 계기로 더 많은 사제, 더 많은 주교님께서 교황청에서 장관을 하고, 보편교회로 깊이 들어가 봉사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저도 그런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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