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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전쟁의 기억, 평화의 조건

[서종빈 평화칼럼] 전쟁의 기억, 평화의 조건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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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0 발행 [1618호]


오는 25일은 6·25전쟁 발발 71주년이다. 6·25전쟁은 세계 전쟁사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아픔과 비극의 기록이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억하고 증언해야 할 기록들이다.

6·25전쟁은 3년 1개월 동안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고 군인과 민간인 등 45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고아와 이산가족만도 1100만 명을 넘었다. 전쟁 당시 초등학생이 80살을 넘고 참전 학도병이 90살을 넘어서고 있다.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증언해야 할 증인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6·25전쟁은 세계 그 어떤 전쟁보다 인간애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유, 평화에 대한 값진 열망을 남겼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2일부터 성탄절 전날인 12월 24일까지 13일 동안 군인과 피란민 20만 명을 적지(敵地)에서 구출했다. 작전에 투입된 전함과 화물선·상선만 해도 무려 200척이 넘었다. 특히 ‘기적의 배’로 불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란민 1만 4000명을 구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또한, 6·25전쟁이 낳은 정전협정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이었다. 1951년 7월 시작된 정전협정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2년 만인 1953년 7월 27일 체결됐다. 협정의 서명자는 유엔군과 북한군, 중국군 대표였다. 국군은 제외됐다. 교전 중인 쌍방이 전투 중단을 합의한 정전협정. 국제법적으로 6·26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반도에는 68년째 정전 체제가 유지되고 군사정전위원회가 협정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정전협정 이후에도 북한의 국지적 도발은 수없이 계속됐다. 민간항공기 납북, 무장공비 침투, 대통령 암살기도 등이 감행됐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와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인류의 수많은 전쟁이 주는 교훈은 ‘모든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전쟁에는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다. 피아(彼我)를 막론하고 전쟁이 초래하는 후유증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욕망의 산물이다. 따라서 탐욕과 욕망이 존재하는 한 지구 상에서 포성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핵무기로 무장한 21세기에 인류의 자멸을 부르는 전쟁은 불가능하고 제한적인 분쟁만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 대전은 과연 20세기를 끝으로 잃어버린 유산으로 계속 남을 수 있을까?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의 진단처럼 “전쟁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전쟁이 모두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막지는 못한다”며 나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으로 나의 이익에 앞서 공동체가 공생 공영하는 이익이 담보돼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전쟁이 멈춘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종전 협정으로 6·25전쟁을 끝내고 남북한과 전 세계가 함께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독이 동독과 협상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북한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평화의 제안을 해야 할까?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 국제정치학자 박한식 교수의 말처럼 끊임없이 전쟁을 기억하고 남과 북이 서로의 선을 넘어 이질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평화는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오지 않을까? 평화를 위한 기도와 노력에는 그 어떤 제약이나 한계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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