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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인은 무능하고 헤펐으며, 유학 길 경비만 1200여만 원 들어

안내인은 무능하고 헤펐으며, 유학 길 경비만 1200여만 원 들어

[신 김대건·최양업 전] (9)유학 길의 안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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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3 발행 [1617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을 중국 변문에서 마카오까지 안내한 이들은 조선대목구와 서만자 라자로회 공동 파발꾼으로 고용된 마리아노와 천 요아킴이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와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의 중국인 복사였던 왕 요셉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수품 허가서와 샤스탕 신부의 동의서를 가지고 북경에서 삭발례 등 소품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 요셉과 마리아노, 천 요아킴은 서로 친분이 있었다.



왕 요셉


왕 요셉은 1832년 샤스탕 신부의 추천으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길 안내인으로 고용됐다. 신학생 출신인 그는 병 때문에 페낭신학교를 그만두었지만, 페낭에 사는 중국인 신자들의 전교회장으로 추천될 만큼 열심한 인물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와 일면식도 없고 아는 바도 없어서 페낭신학교 학장인 롤리비에 신부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롤리비에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이 청년은 절대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를 그만둔 것은 건강상의 이유였습니다. 그는 신앙심이 깊고, 신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한자를 잘 알고 있으므로 주교님께서 말을 배우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중에서)라고 추천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롤리비에 신부의 이같은 말을 듣고 왕 요셉을 면담했다. 왕 요셉은 주교에게 “주교님께서 조선으로 가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입어 저는 이와 같은 여행에 따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또 이 선교 임무 중 생기는 위험에 맞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은 것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망해야 하는 운명입니다”라고 말했다. 맘에 쏙 드는 대답이었지만 신중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여러 사람을 통해 그를 시험했고, 왕 요셉의 의지가 한결같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을 따라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브뤼기에르 주교는 왕 요셉에게 크게 실망한다. “이해하기 어려울 만치 소심하고 무능하였습니다. 그들의 보호 감독을 받는 동안 나는 줄곧 심하게 고통을 겪었습니다. 피로와 궁핍으로 중도에서 죽는 줄만 알았던 게 여러 번이었습니다.”(「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중에서)

앵베르 주교 역시 길 안내인으로서의 왕 요셉의 능력에 관해 부정적이었다. “요셉은 조선대목구의 자금 관리와 서신 왕래를 전담할 수 있는 적임자가 못됩니다.… 그가 변문까지 저를 수행하게 됐는데 이때에 저는 요셉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이 과장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앵베르 주교가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8년 12월 3일 자ㆍ1839년 3월 30일 자 편지 중에서)

왕 요셉을 앞세워 마카오에서 서만자까지 함께 여행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는 왕 요셉을 ‘바보 같은 미개인’이라고 비난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 가운데 그는 가장 소심하고 가장 겁이 많고, 가장 용기없고, 가장 비겁하며, 가장 야비하고, 가장 욕심 많은 자입니다. 그가 유식해서 돈벌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도, 저는 그 사람을 놀랄만한 멍청이로 볼 뿐입니다.…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 공작새 같은 거드름쟁이,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는 자,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역겨운 자, 신심 없는 그런 자가 사제가 될까요? 만일 제가 주교가 되어 그 사람을 사제로 서품해야 한다면, 마지못해 하는 일일 것입니다.”(페레올 주교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40년 8월 1일 자 편지에서)

마리아노

마리아노는 중국 서만자 출신의 산서대목구 심부름꾼으로 마카오에 여러 번 다녀온 경험 있는 길 안내인이었다. 서만자 라자로회 물리 신부의 지시로 조선대목구의 파발꾼이 되어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중국 변문까지 안내해 조선 입국을 도왔다. 또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학생을 변문에서 마카오까지 안내한 인물이다. 하지만 마리아노는 돈 욕심이 많고 씀씀이가 헤펐다. 때때로 회계 장부를 조작해 횡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파리외방전교회 조선 선교사들에게 깊은 신임을 받지 못했다. 또 성격이 불같아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샤스탕 신부는 마리아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마리아노는 산서대목구의 심부름꾼으로 마카오에 여러 번 다녔고 모방 신부를 입국하게 한 다음에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병에 걸린 저를 낫게 해 주었고, 저를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특별한 실수 없이 중국-조선 국경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그에게 맡기실 선교 사제에게 그가 하는 말에 너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타일러주셔야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노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에는 성을 잘 내는 성격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샤스탕 신부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6년 12월 18일 편지에서)

앵베르 주교는 마리아노를 절대 신임하지 않았다. 돈 씀씀이가 헤픈 그를 앵베르 주교는 물리 신부에게 내쫓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에게로 오는 자금의 최고 관리인으로 자임한 마리아노는 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막대한 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조선인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말입니다.… 물리 신부님이 마리아노에게 조선대목구 회계보고서를 보자고 하셨을 때에 그는 전부 타버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리아노가 그 회계보고서를 실제로 저에게 보여주었거든요. 그런데 그 회계보고서를 보니 얼마나 부실한 보고서고, 얼마나 많은 낭비가 드러나는 보고서이던지요.… 심양에서 마리아노는 샤스탕 신부가 송씨 댁에 맡겼던 두 개의 큰 은괴를 가져갔습니다. 그 두 개의 큰 은괴의 중량은 100테일(1tael=중국돈 1냥)이었는데 마리아노는 그것을 작은 조각들로 바꾸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20테일을 자기 여비로 써버렸습니다. 돈을 헤프게 쓰는 마리아노를 보고 몹시 놀란 송씨 가족은 난처해 남은 80테일을 조선 신자들 편으로 저에게 보내 주었습니다.”(앵베르 주교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8년 12월 3일 자 편지에서)



천 요아킴

천 요아킴은 중국 요동 지방 총회장이었다. 샤스탕 신부는 천 요아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천 요아킴은 새 대목구장을 조선으로 안내하고 입국시키는 직무를 맡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현재 요동 지방 총회장 직책을 맡고 해마다 40 내지 50테일을 보수로 받고 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저희는 요동 지방의 신자들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요, 그의 도움을 받으면 그 지역 신자들의 도움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좋은 사람들 좋지 않은 사람들 할 것 없이 요동 지방의 신자들 모두를 잘 아는 천 회장에게 연락소를 설치하는 데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는 임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연락소를 양우에 설치하려 합니다. 조선의 배들이 그곳으로 와서 선교 사제들과 용품들을 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샤스탕 신부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6년 12월 18일 편지에서)



세 신학생의 중국에서 마카오까지 경비

마리아노와 천 요아킴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조선 신학생을 중국 변문에서 마카오까지 데려가는 데 288테일 곧 중국 돈 288냥을 썼다. 그리고 그들이 서만자로 되돌아오는 길에 188.56테일을 지출했다. 더군다나 오는 길에 은괴를 금으로, 금을 다시 은으로 바꿔 120테일의 손실을 보았다. 세 신학생이 중국에서 마카오까지 유학을 가는 길에 조선대목구가 지출한 돈이 총 596.56테일 곧 중국 돈 600냥이 들었다.(앵베르 주교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8년 12월 3일 자 편지 참조)

당시 1테일 곧 1냥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수원교회사연구소가 엮은 「앵베르 주교 서한」 부록에 따르면 1테일 곧 1냥은 엽전 100푼으로 은 1테일은 7.5 프랑에 해당된다. 당시 1프랑 가치는 오늘날 2유로 정도 된다고 한다. 1유로 환율을 1350원을 계산하면 당시 1테일은 오늘날 한화로 평균 2만 원 정도다.

세 신학생이 중국 변문에서 마카오까지 가는 길에 마리아노가 288냥을 썼으니 지금 한화로 약 576만 원이 들었다. 또 두 중국인 안내인이 서만자까지 오면서 쓴 경비를 포함하면 모두 600냥 즉 1215만 원이 들었다. 당시 물가로서는 앵베르 주교가 기겁할 만한 엄청난 금액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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