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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복수보다 중요한 것

[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복수보다 중요한 것

백소연 레지나(가톨릭대 학부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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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6 발행 [1616호]



2010년대를 전후하여 범죄와 추리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텔레비전드라마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합리적 절차와 과학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 가는 듯하더니, 어느새 드라마들은 공권력의 합리적 운용 자체를 불신하며 사적 응징과 복수로써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 역시 이러한 드라마들 가운데 하나이다. 극중 인물인 장성철(김의성)은 과거 연쇄살인범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후 파랑새재단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한다. 동시에 그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동료들, 김도기(이제훈) 등과 함께 무지개 운수를 운영하며 은밀하게 피해자의 복수를 대행해 나간다. 모범택시는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현실 속 사건들을 소환해 오며 무너진 사법 정의에 대해 신랄하게 묻고 있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랄할수록, 그러한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경미할수록, 무지개운수가 대리하는 사적 복수의 통쾌함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발 떨어져 시원한 복수극을 만끽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가해-피해의 구도를 만들어냈던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부터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모범택시의 첫 번째 의뢰자였던 강마리아는 지적 장애인이었지만 만 18세에 이르면 보육원에서 자립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 충분한 준비 없이 퇴소해야 했다. 취업 자리를 소개받았지만 결국 그녀는 사회적 기업의 탈을 쓴 공장에 감금당한 채 끔찍한 노동착취와 폭언, 폭행에 시달렸다. 지역 경찰은 뇌물을 받은 채 공장의 상황을 방조하며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다. 보육원 퇴소생들에 대한 사후 관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기업 노동 환경에 대한 관리 감독 역시 소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줄 주변의 이웃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마땅히 약자를 보호해야 할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죽음의 위기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처절한 고통 끝에서 강마리아를 비롯한 여타의 피해자들이 내민 절박한 구조 요청에 유일하게 응답했던 것은 무지개운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피해자들의 절망이 수위 높은 복수극으로 변주될 때 우리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정의를 향한 욕망을 대리 충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핏빛 복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전, 그러한 부조리를 양산해낸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개선일 것이다.

또한 복수가 끝난 자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문이 남아있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철저한 응징만 이루어진다면, 피해자의 삶은 과연 고통에서 온전히 해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가해자를 용서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해자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심지어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단죄받지 않은 채 끝내 반성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그 삶은 영원히 분노 안에 포박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고통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피해자를 향해 섣불리 용서를 논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가해자가 처벌받았다고 해서 피해자의 상처가 단번에 아물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용서와 치유의 여정은 참으로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 무거운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해 나갈지, 통렬한 복수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한국극예술학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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