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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月落在天 水上池盡’, 출처 모호하고 전승 경위 불투명

이승훈의 ‘月落在天 水上池盡’, 출처 모호하고 전승 경위 불투명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4.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상지진(水上池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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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6 발행 [1616호]
▲ 한국천주교성지연구원에서 1988년 펴낸 오기선 신부의 「순교자들의 얼을 찾아서」 하권 307쪽에 실린 ‘한국종교인열전’의 제15화 「황사영」①의 삽화에는 이승훈의 사세시가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지지진(水止池盡)’이라 적혀 있다.



달은 져도 하늘에 있지만

이승훈의 사세시(辭世詩)는 1801년 2월 27일 서소문 형장에서 목이 잘리기 직전 자신의 심회를 토로했다는 두 구절,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상지진(水上池盡).” 여덟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도 초기 교회사에서 이승훈의 호교(護敎)의 증거로 자주 회자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전승 과정이 모호하고,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이 1960년대에 갑자기 돌출한 증언에 의한 것이어서 검토가 필요하다. 더욱이 중간 전승 과정에서 글자가 뒤바뀌기까지 했다. 이 글에서 살펴보겠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초기 교회사가인 주재용 신부는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0)의 101쪽에서 “달은 비록 지더라도 하늘에 그저 있고, 물은 비록 치솟아도(증발해서) 그 못 속에 온전하다”로 풀이했다. 또 변기영 몬시뇰은 2004년에 펴낸 「한민족 조선천주교회창립사」(2004,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연구원)의 59쪽에서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아올라도 못 속에서 다할 뿐이다”로 풀었다.

두 해석이 같지 않고, 문맥도 어색하다. 물이 어떻게 하늘로 치솟는가? 또 물이 치솟았는데 어떻게 못 속에 온전할 수가 있는가? 물이 솟아올라도 못 속에서 다한다는 말은 또 무슨 얘기인가? 설명이 모두 요령부득이어서 가리키는 의미가 선명치 않다. 달이야 진다 해도 물이 중력을 무시하고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는 수는 없다. 또 물이 솟아올라도 결국은 연못에 다시 떨어지고 만다니 연못 물이 무슨 분수라도 된단 말인가?

첫 구와 둘째 구는 대등 병렬 구문으로 보면 안 된다. 달은 비록 져도 땅이 아닌 하늘에 있다. 하지만 물이 증발하고 나면 못은 말라버리고 만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구절로 풀이해야 맥락이 생긴다. 두 구절에 대한 내 해석은 이렇다.



달은 져도 하늘에 있지만

물 오르자 못은 다 말랐네.

月落在天 水上池盡



그래도 물이 오른다는 말 때문에 의미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이 두 구절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나온 말인가? 최초의 기록자는 누구인가? 주재용 신부는 앞글에서 1965년 11월 4일 이승훈의 묘소를 참배하러 갔을 때 직접 들은 말이라며, “달이 비록 서산에 지더라도 하늘에 그저 있음 같이, 남이 비록 나를 아무리 떨어졌다(배교) 하더라도 내 신앙은 천주 안에 그저 남아 있고, 물이 비록 못 위를 치솟아도 그 못 속에 온전함 같이 내 목숨을 아무리 앗아가도(죽여도) 내 신앙은 내 속에 변함없이 온전하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변기영 몬시뇰은 1980년 9월 30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달은 떨어져도」란 글에서 “이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소문 사형장에서 순교자 이승훈 선생께서 칼 아래 목을 늘이며 읊은 명시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던 것이 「한민족 조선천주교회창립사」에서는 이 두 구절을 “이승훈 선생이 서소문 형장에서 칼을 받기 직전에 동생 이치훈이 따라가서, ‘형님, 천주학을 하지 않겠다고 한 말씀만 하시면 상감께서 살려주신답니다’ 하며 소맷자락을 잡고 애원하였으나, 이승훈 선생은 동생의 손을 뿌리치며, ‘무슨 소리냐! 월락재천 수상지진이니라’ 하시고, 칼을 받고 참수되셨다는 것이다”라는 소설적 부연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이 두 구절이 이승훈의 6세 종손 이병규 옹이 주재용 신부와 오기선 신부, 류홍렬 박사 및 자신에게 직접 전해준 이야기라고 적었다.

이어 변 몬시뇰은 “여기서 월락재천, 즉,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은 이승훈 선생께서 자신의 천주교 신앙은 칼로 목을 자른다고 해도 변함없이 항상 천주께 가 있다는 뜻이며, 또 수상지진이라는 말은, 지금 당장 칼을 휘두르는 세도가들이 득세를 하며 박해를 하지만, 마치 못 속의 물처럼, 물이 아무리 치솟아도 연못 속에 가라앉듯이, 혹은 물이 위로 증발하거나 상류로 역류하고 나면 연못은 끝나고 말 듯이, 박해자들의 세력과 칼날은 지상에서 끝난다는 뜻이다”라고 풀이를 단 뒤, 확고하고 진솔한 신앙인만 읊을 수 있는 거룩하고 용감한 순교자의 시라고 극찬했다.



물이 그치면 연못은 마른다

한편, 1988년 한국천주교성지연구원에서 펴낸 오기선 신부의 「순교자들의 얼을 찾아서」란 상하권 2책에도 이 시와 관련된 언급이 있다. 그런데 같이 이 말을 전해 들었다는 오기선 신부의 기록은 이와 조금 다르다. 하권 307쪽에 실린 ‘한국종교인열전’의 제15화 「황사영」①의 삽화에 위 구절이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지지진(水止池盡)’으로 달리 적혀 있는 것이다. 본문에도 “1801년 4월 8일 칼 아래 한 점 이슬로 사라져가면서도 이승훈 같은 이는 ‘월락재천, 수지지진’, ‘달이 지매 하늘가에 지고, 물이 떨어져도 연못가에 잦아진다’는 유명한 시 한 수를 읊고 장엄한 순교자로 승화하여 갔다”고 썼다. 그런데 ‘수상(水上)’이 아닌 ‘수지(水止)’라 했다. 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표현이 영 걸렸는데, 이렇게 고쳐 읽으니, ‘물이 그치면 연못은 다 한다’, 즉 못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연못은 말라버리고 만다는 뜻이 되어 의미가 선명하고 석연해졌다.

▲ 1968년 11월에 발표된 <사제생활 반생기>에 수록된 이승훈 묘소 사진.

또 상권 306쪽의 ‘사제생활 반생기’ 중에도 「한국의 첫 교우 이승훈씨 묘를 가다」(1968. 11)란 비교적 장문의 글이 보인다. 1967년 8월 29일 처음 이승훈의 묘를 방문한 뒤, 1968년 10월 24일 비석 제막식을 거행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이 글 속에 부천군 남동면 만수리에 살다가 그곳에서 별세한 이신구 말구(마르코)라는 노인이, 이승훈과 절친한 친구였던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이야기라면서 들려준 전언이 실려있다.

형장에서도 배교를 권하였지만 이승훈은 꿈쩍하지 않고 천주를 위해 죽겠다고 했다.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이때 이승훈이 바로 이 두 구절을 읊고 칼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승훈의 6대손인 이병규씨에게 들려준다고 했다는 전언이다. 이어, “월낙재천(月落在天)이요 수지지진(水止池盡)이라 (달이 져도 하늘가에 지고, 물이 떨어져도 연못 속에 잦아진다) 하였지. 그건 그분의 최후의 각오는 내가 죽어도 천주님께로 간다는 뜻이었지. 배교니 뭐니 치명자 아니라니 하는 건 다 모르는 소리야. 내 증조부는 그하고 친구 간이고 당신 두 눈으로 보고 그 시의 구절을 듣고 내게 수백 수천 번 들려주신 걸. 내 조부도 똑같은 말을 하신 걸”이라고 썼다.

정리하면 이렇다. 사세시의 전언은 1960년대 초, 이신구 마르코에게서 처음 나왔다. 이 말이 오기선 신부와 이승훈의 6대손 이병규 씨에게 전달되었다. 최초 전언 당시는 분명히 ‘수상(水上)’이 아닌 ‘수지(水止)’였다. 이것이 1965년 주재용 신부가 이승훈의 묘지를 방문했을 때는 이병규 옹이 ‘수상’으로 바꿔 전했고, 이후 이승훈의 묘가 1980년대 인천에서 천진암 성지로 이장할 즈음해서는 목격자 또한 전주 이씨가 아닌 이승훈의 동생 이치훈으로 한 차례 더 윤색되었다. 실제로 ‘상(上)’과 ‘지(止)’는 단지 한 획의 차이다.

‘수지’가 ‘수상’으로 바뀐 것은 이병규 옹의 기억 혼란 탓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1984년에 간행된 「평창이씨세보」에는 “해는 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말라도 땅에 있다(日落在天, 水盡在地)”로 다시 바꿔놓아, 도무지 앞뒤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변기영 몬시뇰의 글을 보고 문맥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자기들 생각으로 한번 더 고친 것이다.



사세시의 사료 가치

사세시는 정말 이승훈이 형 집행 직전에 그의 입으로 직접 읊조린 것이었을까? 처음 이 두 구절을 전한 이신구씨의 전언 외에는 신빙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이신구씨의 증조부가 당시에 직접 들었다는 얘기도 앞뒤가 없는 말이다. 이승훈의 후손 이병규씨가 이미 6대손인데, 이승훈과 절친한 벗의 후손 이신구씨가 고작 증손자일 수 있는가? 그의 증조부가 150살 이상 살았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래도 굳이 이 두 구절을 이승훈의 죽음 장면과 결부 지어 해석해야 한다면, 내 생각은 이렇다. “달은 져서 보이지 않아도 하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못에 새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연못은 얼마 못 가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이것을 다시 풀면, “지금은 달이 져서 보이지 않지만, 달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물이 끊어지면 연못은 고갈되어 마른 땅이 되고 말 것이다”가 된다. 한 번 더 풀면, “지금은 천주교 신앙이 탄압을 받아서 암흑의 세상이 된 듯하지만, 나는 천주의 임재(臨在)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내 죽음 이후 못이 다 말라버려 신앙의 못자리가 마른 땅의 폐허로 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는 있겠다.

다만 말의 출처가 대단히 모호하고, 전승의 경위가 불분명하기에 이렇듯 행간의 의미를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법이다. 월낙재천, 수상지진! 이 여덟 글자를 이승훈과 관련해 유의미한 사료로는 쓸 수가 없고, 써서도 안 되겠다는 판단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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