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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주님과 아버지(유용, 베네딕토, 서울시의원)

[신앙단상] 주님과 아버지(유용, 베네딕토, 서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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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3 발행 [1614호]



이젠 제 아들이 훌쩍 커버려서 저보다 어깨도 넓고, 키도 더 큽니다. 든든하면서도 약간은 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저는 성당 친구들도 많고 사회생활 중 만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사이엔 아들들하고 술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아들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 이것저것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들, 한잔할까?” 하면, “다음에 하시죠”라는 답이 옵니다.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서운하면서도 머쓱해진 마음으로 ‘다음에 하지, 뭐’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애주가이기는 하셨지만, 너무도 엄하게 느껴지던 분이시라, 술자리를 감히 부탁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여행 한번 가시자고 말씀드려 본 적도 없습니다. ‘한 번도 그런 말씀을 드려 본 적이 없구나….’ 저에게는 너무 엄한 분이시라, 무서워서 말씀드리질 못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 혹시 그 말을 기다리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언제든지 좋으니, 한잔하자’며 기다리셨을 것도 같습니다. 맡은 일들로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도 아들의 “아빠 한잔하실까요?” 하는 말이 듣고 싶은 아비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헤아려집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제가 “한잔하시죠”라고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으셨을까,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싶은 생각에 눈물이 핑 돕니다.

제가 성당에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펄쩍 뛰셨습니다. 집안 제례를 망친다고 하시며 장손은 아무 종교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러던 아버지께서 당뇨에 시달리시며 하루하루를 견디시다가 마지막엔 “그래도 성당은 다른 종교랑 다르지” 하시며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병환이 깊어져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게 되셨을 때도 “내 세례명은 요셉이야” 하시던 아버지가 기억납니다. 제게 “네가 일을 직접 하면 한 몫이요, 일을 잘 배분해서 시키면 열 몫도, 백 몫도 할 수 있다. 평소에 누가 그 일에 적합하고 잘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일을 맡길 수 있다”고 가르치시던 아버지께서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엄하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인데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생각이 납니다. 아들과 나누는 술 한잔이 아쉬워서 ‘이놈들이 언젠가 시간 내겠지’ 하며 기다리면서도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니, 하느님 아버지께로 생각이 미칩니다. 사랑으로 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위태위태하게 길을 가는 저를, 얼마나 걱정하시며 돌보셨을지를 말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건방진 저를 다듬으시고, 간혹 제가 방황할 때면 집 떠난 저를 기다리고 계셨을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이제야 저를 향한 하느님 마음이 조금이나마 헤아려지며, 아버지이신 그분 사랑을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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