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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미얀마 사람과 공감하기(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시사진단] 미얀마 사람과 공감하기(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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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발행 [1613호]



2005년 미얀마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사무실 차원에서 난민에 대한 법률 지원을 결정하고 유엔난민기구가 처음으로 의뢰한 사건이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 난민 불허 처분에 관한 것이었다. “소송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기는 한 겁니까?” 사무실에 들이닥친 아홉 명의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은 울분을 쏟아부었다. ‘나는 단지 도우려는 것뿐인데 내가 왜 이분들에게 혼나고 있어야 하나?’ 다소 당황스럽고 어색한 만남은 2000년에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이 5년이 지나서야 별다른 이유 제시 없는 불허 결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모두 설명되었다. 이들은 미얀마 상황에 대한 아픔과 더불어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권리, 생존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의 진정성을 모두 부정당했다.

다행히 위 사건의 1, 2심 결과는 좋았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자 위 난민 신청자들이 다시 한 번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대법원이 이렇게 결정을 안 하고 있는데 변호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무래도 변호사를 잘못 만나셔서 이런 것 같습니다.” 나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했던 어설픈 농담이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동안 소수민족 출신을 포함한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을 많이 만났다. 패소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 20명의 미얀마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 인정을 받는 데 일조했다. 난민, 미얀마, 그리고 사람의 삶에 대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몇몇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 내 대규모 가스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연루된 혹은 연루될 수 있는 인권 침해 상황을 감시하면서도 미얀마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외국 단체들과 공동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스관 건설 등으로 인해 강제 이주시킨 미얀마 난민들로부터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미얀마-인도 접경 지역을 방문했다. 난민캠프 내 탈영한 군인을 포함한 성인과 그리고 아이들을 인터뷰했다.

의료 서비스나 교육이 전혀 제공되지 못하는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고향에서는 ‘지쳐 죽을 것 같은’ 강제 노동을 강요받았던 아이들. 한 아이가 얘기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한국 학생들이 학교 다니고, 친구 만나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한국 학생들이 나의 삶을 이해하고, 내 느낌과 고통을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나누고 언젠가 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시아 지역 난민 지원 단체들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국제적인 혹은 지역적인 차원에서 활동하는 여러 미얀마 활동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로힝야 집단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국내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번 미얀마 쿠데타 사태를 겪으면서 여러평범한 보통 미얀마 사람들을 너무도 가까이에서, 바로 곁에서 봐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미얀마 내 군부의 폭력사태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얼마 전 한 변호사 모임에서 제안해 약 30명의 변호사가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국내외 미얀마 지인들로부터 힘이 된다는 댓글이 달렸다. 법률 지원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이들 중 일부는 현재 민주화 운동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 지역에서 만났던 아이 중 일부는 이제 청년이 되어 민주화 시위의 한복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이 작더라도 의미 있는 연대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미얀마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찾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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