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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간수가 빠져야 진짜 소금입니다(유용, 베네딕토, 서울시의원)

[신앙단상] 간수가 빠져야 진짜 소금입니다(유용, 베네딕토, 서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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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발행 [1613호]



학생 시절 어느 겨울날,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저에게 다가와 “차비를 좀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1000원을 주며 그 사람이 추울까 봐 제 겨울 잠바를 벗어주고 집에 왔습니다. 그것을 본 할머니께서 옷(잠바) 어쨌냐 하시길래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그러다 제가 얼어 죽을 놈이야” 하시며 회초리로 매우 때리셨습니다.

어떤 날은 밤이 늦어 집으로 가는 길인데, 지하철역 계단 아래 아들 또래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깡통을 놓고 떨고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가 있나’ 하고 지갑을 살짝 봤더니 만 원짜리 한 장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좀 아깝다 싶어서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데, ‘만 원이 그리 아까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빵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빵하고 물을 5000원어치 주세요.” 그리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가서 그 어린 친구에게 그것들을 주고, “추우니까 어서 들어가” 하며 나머지 거스름돈 5000원을 쥐여 주고 돌아서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신합니다. 가장 따뜻하게 이웃들의 옷을 얻어 입고, 가장 맛있게 이웃들의 빵을 얻어먹으며, 이웃들의 호의를 입은 것은 저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제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되새기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저는 선거에서 여러 번 좌절을 겪었는데,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주변의 이웃을 알고, 지역사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주변의 많은 사람의 사랑과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이지요. 만약 그 이웃분들의 사랑과 도움, 응원이 없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주변의 이웃들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부족한 저를 깨우치고 가르치시기 위해 주님께서 그 많은 세월, 저를 갈고 닦으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일어서게 되었는데, 그제야 저는 그동안의 과정이 주님의 크신 계획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함부로 했던 행동들, 건방진 생각들을 비롯하여 저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소금이 제대로 되려면 10년 정도는 지나서 간수가 완전히 빠져야 하고, 그제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 참조)이 되라고 하시는데, 제가 주님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얼마나 더 간수가 빠져야 할까요? 전 아직도 간수가 한참 덜 빠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고 주님께서 요긴하게 쓰실 소금이 되고 싶으니, 간수가 더 빠지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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