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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을 옮긴 믿음, 천년을 지켜내다

바위산을 옮긴 믿음, 천년을 지켜내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18)이집트 콥트 교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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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발행 [1612호]
▲ 카이로 모카탐 언덕에 자리한 성 시몬 수도원 전경.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에서 발간한 ‘세계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세계 196개국 가운데 62개국(31.6%)에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받지 못했고 26개국이 ‘박해’ 상태로 분류되었으며 이 중 95%는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은 4000명이 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와 다른 종교의 통계까지 포함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폭력을 당해 생명까지 잃고 있습니다. 오로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지요.

이집트는 성경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며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과 가까워 이미 사도 시대부터 마르코 복음사가에 의해 전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적 충돌로 로마와 결별한 뒤 동방 교회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콥트 교회입니다. 이후 7세기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이래 이집트에서 그리스도교는 철저히 박해당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회 구조에서 공공연히 차별받는 것은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목표가 되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콥트 신자들은 1300년이 넘는 모진 박해와 차별을 견디고 전통과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콥트 교회 신자들은 태어난 아이들의 손목에 십자가를 새깁니다. 이 문신은 신앙의 증거인 동시에 영원한 낙인입니다. 이들은 학교에 제대로 다닐 수도 없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서 사회에서 천대받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쓰레기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모카탐’이라는 지역은 대표적인 콥트 신자촌인데, 이곳의 주민들은 도시 전역에서 모인 쓰레기를 수거해서 분리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마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풍겨오는 악취 탓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고 거리에도 집 안에도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부모를 따라 쓰레기를 모으러 다니던 어린아이들은 낯선 순례단에게 손목 안쪽의 십자가를 자랑스레 보여주며 눈을 반짝입니다.

▲ 콥트 교회 전통에 따라 십자가를 새긴 손목.




모카탐의 쓰레기 마을을 지나 언덕 중앙에 이르면 콥트 교회 최대의 성지가 나타납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모카탐의 성 시몬 수도원(St. Simon “the tanner” Monastery in the Mokkatam)’이 바로 그곳인데, 1만 5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바위 동굴 성당입니다. 이곳은 또한 콥트 교회의 가장 큰 기적을 증거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기 979년, 당시 칼리프(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아울러 갖는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를 이르는 말)였던 ‘알 무즈’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20)라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 바위산을 기도로 옮기지 못하면 그리스도인 모두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총대주교 아브라함은 사흘의 유예를 받은 뒤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성모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발현하시어 밖으로 나가 물동이를 진 외눈박이 사람을 찾으라 이르십니다. 주교는 시몬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네 오른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마태 5,29)는 성경 말씀에 따라 음욕을 품은 것을 속죄하기 위해 직접 눈을 뽑아 외눈박이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시몬은 주교에게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세 번 외친 후 산을 향해 성호를 그으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대로 따르자, 바위산은 그 자리에서 절반이 잘려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기적을 마주한 많은 무슬림은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고 칼리프는 그들의 신앙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잘린 산은 다시 내려앉으면서 커다란 동굴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1000년이 지난 후 중동 최대의 성당이 된 성 시몬 수도원입니다.

비록 오랜 세월 박해받아왔지만, 순례단에게 시몬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당 관리인들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에서는 2000년의 전통을 지켜온 강인한 신앙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있어 손목에 새겨진 십자가는 믿음이자 저항입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제 마음속의 십자가를 더듬어 보게 되고는 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받은 저의 인호(印號)가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흐려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산에서 내려오는 길, 믿음으로 옮겨졌던 산의 그림자가 유달리 길고 짙어 보였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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