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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 수단 입고 가난한 삶 실천한 하느님의 사람

해진 수단 입고 가난한 삶 실천한 하느님의 사람

내가 본 정진석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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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발행 [1612호]
▲ 1972년 6월, 청주교구장 주교 시절에 음성본당을 사목방문한 정진석 추기경이 학생들과 함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청주교구 제공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큰 산과도 같던’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 된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은 그래서 그만큼 짐이 더 무거웠다. 그럼에도 그는 “달릴 길을 다 달려"(2티모 4,7)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이렇게 살다간 정 추기경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함께했던 사제와 평신도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봤을까? 이에 ‘내가 본 정진석 추기경’이라는 주제로 정 추기경의 인간적 면모와 삶, 신앙과 성덕에 대해 들었다.



메리놀외방선교회 함제도 신부

함제도 신부는 수동ㆍ괴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교구 총대리로 정 추기경과 20년을 함께했다.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교구청에서 정 추기경과 점심을 함께했던 함 신부는 정 추기경을 “형제와도 같은 사랑을 줬던 사제”로 기억했다. 함 신부는 또 정 추기경에게서 ‘인간답게 사는 사제’에 대해 배웠다며, 특히 사제로 사는 삶과 성덕, 한국의 역사와 풍속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월 설 직전에 주교관으로 추기경님을 찾아뵈었는데, 추기경님이 청주교구 얘기를 하시다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셔서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정말 가난했던 시절이었잖아요? 제가 운전하고 주교님이 옆에 타시고 본당을 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극한 인내로 모든 걸 참아 견디며 교구 기틀을 다졌어요.”

1998년 6월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뒤론 자주 찾지 못했지만, 정 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직했기에 함 신부는 북한을 방문하고 나면 꼭 정 추기경을 찾아가 북한 실상을 들려줬다. 정 추기경은 특히 고통받는 북녘 형제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그때마다 북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던 기억도 함 신부는 떠올렸다.



권길중(바오로) 전 한국평협 회장

권길중 회장은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할 때 교구 평협 부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정 추기경과의 인연은 그로부터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 포콜라레학교에 다녀오다가 우연히 기내에서 정 추기경을 만난 권 회장은 정 추기경의 ‘해진 수단’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주교님이 그렇게 낡은 수단을 입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정말 가난하게 사시는 것 같아 존경스럽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가난한 교구에서 주교가 돈을 쓰면 안 되잖아요’ 하시며 ‘저부터 가난을 삽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부터 특별했던 한국 평신도들과 사제들 간 협력에 대한 당부다. “정 추기경님은 평신도들을 만날 때마다 기회 되는 대로 ‘한국의 평신도들이 사제들과 협력을 통해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셨다”며 “그 당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당부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꽃동네회 설립자 오웅진 신부

오웅진 신부는 정 추기경을 “시작과 끝을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제”로 기억했다. “교도권적 측면에선 ‘하느님 사랑으로’, 대사회적 측면에선 ‘이웃 사랑으로’ 사회복지를 우리나라에서 이뤄냈다”고 했다. 아울러 “정 추기경님은 우리 사회의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전해준 목자였다”고 전하며 “정 추기경님은 복지 교회, 복지 국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오 신부는 “정 추기경님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봉헌하겠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최 신부님 시복에 깊은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셨다”며 “그래서 최 신부님의 서한도 직접 우리말로 옮기셨고, 교황청 시성성에 보낼 관련 서한도 라틴어로 번역하셨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고, 최 신부님이 복자품에 오르는 것을 자신의 마지막 사명으로 알고 헌신하셨다”고 강조했다.

오 신부는 또 “정 추기경님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어머니 이복순(루치아)씨에 대한 지극한 효도였다”고 전하고 “제가 아무리 정 추기경님을 따라 살아도 그렇게 효도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청주교구 총대리 성완해 신부

1992년에서 1993년 사이 청주교구 교육홍보국장을 지낸 성완해 신부는 정 추기경을 “아버지 같은 교구장이셨다”고 회고했다. 교구에 에어컨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는 있었는데도, 한여름 더위를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1식 3찬 이상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검소하게 살며 교구 사목과 기도,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도 했다. 그게 얼마나 고되고 긴 여정이었는지, 이제야 실감한다고도 전한 성 신부는 “어려운 교구 살림을 꾸리느라 늘 절제하고 아끼던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도 했다. 또한, “교구 사제들에게도, 평신도들에게도 잔소리하기보다 들어주셨던 모습도 잊지 못한다”며 “서울대교구장으로 옮기신 뒤에는 찾아뵐 때마다 ‘청주교구는 내 첫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성 신부는 끝으로 “추기경님의 가장 큰 덕은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큰 산 같은 어른이셨다는 것”이라며 “이제 사제생활에 유종의 미를 거두셨으니, 부디 하느님 곁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고영초(요셉) 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장(신경외과 의사)

정 추기경이 소신학교(성신중ㆍ고) 부교장으로 있던 시기에 제자였던 고영초(요셉) 박사는 정 추기경을 “천생 학자 느낌이었다”고 기억했다. “제가 소신학교에 간 게 1967년인데, 그때 부교장으로 계시던 추기경님이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학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그 뒤로 추기경님이 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쓰셔서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고 기억했다.

전진상의원과 요셉의원 봉사자인 고 박사는 “추기경님께서 6ㆍ25전쟁 시기에 필연적인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고 사제가 되신 얘기를 들으며 목자로서의 참모습을 알게 됐다”며 “개인적 만남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찾아뵐 때마다 따뜻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맞아주시던 목자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가 (중앙)중학교 교사로 갔을 때 (정진석 추기경이)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은사라고 날 부르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을 때도 왔었어요. 김수환 추기경은 대학(일본 조치대학 2년) 후배가 되지요. 그때는 조문객이 너무 많아서 나 혼자 저쪽 성당 옆에서 기도드리고 갔는데 오늘은 여기오면서 정진석 추기경님은 제자가 돼서 그런지 좀 눈물이 나네요. 정 추기경은 아주 묵묵히 공부하는 성격이었고 과학자적 기질을 갖고 계셨어요. 아마 신부님이 되지 않으셨으면 화학공학과 계통에서 일하셨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나보고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6·25 전쟁을 계기로 해서 방향을 바꿨다’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개신교 계통에서 평신도를 좀 많이 이끌지 않았어요? ‘주님의 뜻이 계셔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셨다’ 그런 생각을 하고요. 오늘 여기 와서 마지막 뵙고 나니까 ‘선생님, 제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못다 한 뜻을 좀 기억해주세요’ 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운 생각이 듭니다.



한홍순(토마스)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정 추기경님은 저한테 큰 형님 같은 분이에요. 추기경님을 처음 뵌 건 1963년이에요. 추기경님이 사제품을 받으신 지 2년 뒤죠. 제가 돈암동본당에서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일일 피정을 하는데 정진석 신부님을 지도신부로 모신 거예요. 그 후 1968년에 한국순교자 24위 시복식이 로마에서 있었어요. 저는 로마 유학 중이었는데 그때 김수환 당시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님이 순례단을 이끌고 오셨는데 정진석 당시 신부님이 오신 거예요.


정 신부님을 가까이 뵐 수 있었고 공부하시는 데 방해될까 봐 자주 뵙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자주 찾아가 뵙고 그랬었어요. 정 추기경님은 상대방 말씀을 아주 상당히 편하게 해주시는데 말씀을 계속 듣는 분이에요. 중간에 말씀을 끊질 않아요. 다 들어요. 끝까지 다. 그리고 당신 의견은 정리해서 말씀을 해주세요. ‘이건 참 어렵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다.’ 상당히 지혜로운 말씀이에요.

 

봉두완(다윗) 전 성 라자로마을돕기회장
 

제가 명동 가톨릭회관에 30년 동안 있었고요, 천주교 한민족돕기(회장)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15년 동안 했었는데 처음 시작은 김수환 추기경님이 총재로 했고요, 그다음은 정진석 추기경님이 (서울대교구) 교구장으로 오셔서 이어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2300평 땅을 사서 거기다 정진석 추기경님과 지금 교구장이신 염수정 추기경님 지시로 제가 건축위원장으로 성당(속죄와 참회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을 지은 거죠.

 

고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 기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는 각계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정 추기경을 애도하는 마음을 모았다.  

 

▲ 함제도(메리놀외방선교회) 신부가 1일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묘역에서 거행된 정진석 추기경 하관 예절에서 정 추기경의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백영민 기자

 

▲ 박병석 국회의장이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의 안내를 받아 조문하고 있다.

  

종교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평소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셨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다”며 “정 추기경님이 남기신 평화와 화해의 정신은 우리 종교지도자들이 이어나가겠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바란다”고 염원했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대표회장 명의의 애도사에서 “민주화 운동 시기를 지나 급변한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올바른 가치관이 훼손되는 시점에서도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지키려는 생명 운동으로 천주교회를 이끌어오셨으며, 장기기증으로 본이 되는 삶을 마무리하셨다”며 “정 추기경님의 삶의 궤적을 기억하고 그분이 지키려고 했던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노력이 한국 사회에서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다시 한 번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추모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성명에서 “정진석 추기경께서 몸소 보이셨던 검소하고 소탈한 삶의 자세는 종교를 떠나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어 왔다”며 “‘행복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추기경의 마지막 인사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모든 이가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앞으로도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도 추도문에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며 “추기경님께서 우리 사회와 시민들의 마음에 심어주신 감사와 사랑의 실천은 우리 모두에게 행복의 길이 됐다”고 돌아봤다. 전국 유림 대표조직인 성균관 손진우 관장은 애도 성명에서 “한국 종교계의 스승인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善終)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남겨진 이들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정관계
 

4월 28일 빈소를 찾은 홍남기(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우리 모두 사회적 약자를 아우르며 정 추기경님의 뜻과 정신대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 찬 사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며 “저희 같은 정책 당국자가 특히 더 앞장서 실천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오세훈(스테파노) 서울특별시장은 “최근에는 자주 못 뵈었는데 과거에는 자주 찾아뵙고 좋은 말씀도 듣고 뵐 기회가 자주 있었다”며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애통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헌신하신 그 삶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마지막 가신 길에도 자신의 육신, 그리고 재산을 모두 주시고 가셨다”며 “가장 크게 우리에게 주고 가신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서 세상을 비춰주신 큰 어른”이라며 “큰 어른들께서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마르티노) 원내대표는 “가톨릭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오셨다”며 “삶으로 보여주신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며 추기경님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 노웅래(라우렌시오) 의원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여야를 넘어서 한마음으로 일치와 사랑의 정신을 배우는 큰 가르침을 받았다”며 “(추기경님의 뜻을 받들어) 낙태죄 보완 입법에 앞장서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유은혜(아녜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 시대를 살아가셨던 큰 어른으로서 저희에게 주신 말씀을 잘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황희(세바스티아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추기경님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기도와 헌신으로 항상 우리 국민ㆍ국가와 같이 함께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4월 29일 빈소를 찾은 나경원(아셀라) 전 의원은 “초등학교 선배님이시기도 하고, 저희 가족과 가까우신 분이기도 했다”며 “항상 아낌없이 나누시고 많은 것을 비우신 채로 정말 진정한 나라 걱정 또 우리들에 대한 걱정을 해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정진석(도미니코 사비오)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 미사 집전하러 오신 추기경님이 ‘우리는 이름도 같고, 문중도 같다. 5대조만 올라가면 형제’라고 친근하게 대해주신 기억이 난다”며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진다. 추기경님이 오래 생각날 것 같다”고 애도했다.
 

4월 30일 빈소를 찾은 김명수 대법관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을 잃은 상황이라 애도하는 마음으로 법원 구성원 모두와 슬픔을 함께한다”며 “행사에서 뵌 일이 있어서 친근하게 느끼고 있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논평과 SNS를 통해서도 정 추기경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헌신과 희생, 사랑과 나눔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하신 분”이라며 “성직자로서의 맑은 소신, 학자로서의 밝은 지혜를 일러주시고 가신 ‘큰 별빛’이었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추기경님의 헌신과 희생, 사랑과 봉사 정신은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가르침이자 귀감이 될 것”이라며 “정진석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며, 영원하고 평안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SNS에 “추기경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국민이 슬퍼하지 않는 나라, 다음 세대가 행복한 나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고, 국민의당 안철수(하상 바오로) 대표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추기경님의 삶 앞에 깊이 부끄럽고 송구할 따름”이라며 “이제는 이웃 걱정, 서민 걱정 저희에게 물려주시고 하늘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애도했다.

 

평신도 단체 및 신자들 추모
 

이병순(미카엘) 전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회장은 “참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은 우리 추기경님께서 영면을 하셨다”며 “주님 대전에서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택ㆍ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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