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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수품 후 1년에 한 권씩 집필한 ‘주님의 작가’

사제 수품 후 1년에 한 권씩 집필한 ‘주님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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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2 발행 [1611호]

▲ 독서광이자, 매년 책을 펴냈던 정진석 추기경은 만나러 온 손님마다 자신이 사인한 책 선물을 아끼지 않았다.



▲ 2020년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아 「교회법 해설 1~6」(개정판)을 펴냈다. 2002년 15권이던 해설 전집을 재편집해 양장본으로 출간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해마다 한 권씩이라니. 정진석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받은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책을 펴냈다. 그는 ‘신앙의 교사’이자 ‘주님의 작가’였다.
 

정 추기경은 보통학교 시절, 일본 어린이들만 드나들던 ‘어린이 도서관’에 숨어 들어가 위인전에 빠진 ‘꼬마 독서광’이었다. 그의 ‘책 사랑’은 사제의 길에 접어든 뒤에도 변치 않았고, 동기였던 고(故) 박도식 신부와 부제 시절 이런 약속을 한다. “우리,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1년에 한 권씩 내자!” 훗날 스스로도 “철이 없었으니까 그런 무모한 약속을 했지” 하고 웃으며 회고했던 정 추기경의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나온 저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교구장 시절을 넘어, 지난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아 펴낸 「교회법 해설」(개정판)까지 역서를 포함해 총 65권에 달한다.
 

정 추기경의 저서와 역서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은 「교회법전」이었다. 일본어 대역판은 있고, 한국어판 「교회법전」은 없었던 1960년대, 정 추기경은 당시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을 때에도 일본어 법전으로 공부해야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번역해야지!’
 

정 추기경은 이후 청주교구장 시절이던 1983년 보편교회의 새 「교회법전」이 반포된 뒤 홀로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주교회의 교회법번역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이후 사제들과 공동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6년 만인 1989년 번역 작업을 완수한 뒤 교황청 인준을 받고,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출판했다.
 

추기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제와 신학생, 신자 모두가 교회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법 해설서 편찬 작업에 홀로 돌입했다. 정 추기경은 2002년에야 15권에 달하는 「교회법 해설서」를 완간했다. 번역부터 해설서 집필까지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자국어로 된 교회법 해설서는 라틴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5개뿐이다. 이를 토대로 교회는 교회법을 보다 쉽고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밑거름을 마련했고, 2008년 한영만(서울대교구) 신부가 정 추기경의 해설서를 요약해 「교회법전주해」를 펴냈으며, 2019년 가톨릭대 교회법대학원은 동북아시아 최초 교황청 승인을 받게 되는 등 정 추기경의 노력이 큰 바탕이 됐다.   이 같은 노력이 그를 ‘교회법 대가’로 불리게 만든 이유다.
 

정 추기경은 매년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을 앞두고 신간을 펴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오)처럼 하느님의 지혜가 담긴 ‘책 선물’을 한아름 들고 신자들과 소통해온 것이다. 서울ㆍ청주교구 교구장직을 수행하던 시절, 앞이 꽉 막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맬 때마다 한 줄기 빛이 됐던 묵상들을 모은 「나를 이끄시는 빛」,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가치를 담은 수필집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신앙인이 지녀야 할 경제관념에 관해 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정 추기경은 특유의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교회 교리와 성경 가르침, 사회 현안을 두루 넘나들었다.
 

정 추기경이 번역해 기초를 놓은 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집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와 최양업 신부 편지 모음집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는 마침 올해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각 교구가 다시금 필독서로 선정해 권장하는 도서다. 높이 쌓아올려도 어른 키는 훌쩍 넘을 만큼 수많은 책을 펴냈지만, 그가 전한 핵심 메시지는 ‘주님 사랑’과 ‘진정한 행복’이었다.
 

“사랑하면 할수록 한없이 주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재물도 주고, 관심도 주고, 정성도 주고, …간추려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원의를 이루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질그릇의 노래」 중)
 

“청명한 하늘에 햇빛이 비치는 날보다, 먹구름이 짙게 낀 하늘에 천둥 번개가 요란했던 날이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차분히 회상해보면 실상은 비 온 날보다 맑게 개인 날이 훨씬 더 많았고, 깔깔대고 웃었던 순간이 눈물을 흘렸던 순간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 생명과 행복을 넘치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온 마음으로 찬미하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 중)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보좌 김운회 주교 등 관계자들이 2006년 4월 8일 속죄와 참회의 성당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



정진석 추기경은 1998년 4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대주교로 임명받고, 그해 6월 29일 제12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로 착좌했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 착좌식에 초대 평양교구장을 지내고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북으로 압송돼 순교한 패트릭 번(한국명 방일은, 메리놀외방선교회) 주교의 목장을 들고 입장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선임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받들어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를 통해 민족화해센터 건립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교구는 2006년 4월 8일 파주 통일 동산에 마련한 부지에서 정 추기경 주례로 속죄와 참회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착공 미사를 봉헌하고 기공식을 했다. 정 추기경은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성전은 한국 전쟁 당시 형제끼리 서로 죽이고 60여 년을 증오와 갈등으로 살아온 겨레가 하느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와 용서, 회개를 통해 화해하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착공 미사 중에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공동 사목 합의서를 교환, 분단이라는 시대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민족 화해를 위한 두 교구 간의 아낌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2013년 봉헌한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는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 민족이 서로에게 안겨준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신앙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한국 교회 신자들의 의지로 일군 결실이다.
 

정 추기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민족의 권리요,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마땅히 교회에도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정 추기경은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기도와 교육, 나눔을 제안하고 실천했다. 정 추기경은 북녘 결핵 환자 돕기 운동 참여를 호소했고, 2007년 북한이 홍수 피해를 크게 입자 교구장 명의 특별 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수재의연금과 긴급구호물자를 모아 북한으로 보냈다.
 

정 추기경은 또 황인국 몬시뇰을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로, 최승룡 신부를 황해도 감목대리구 교구장 대리로 임명해 단 한 명의 사제도 없는 북녘 교회와의 교계적 끈을 유지했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 재임 시절 가톨릭평화신문과의 대담에서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구분해야 한다. 북의 국민은 참으로 우리가 보살펴 주어야 할 동포들이지만 북한 정권 지원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참 쉽지 않다”고 말해 일부 교회 인사들에게 저항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 추기경은 언제나 “북의 우리 동포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사랑의 손으로 보살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를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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