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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보화 번역하며 함께 걷는 성소의 길

교회 보화 번역하며 함께 걷는 성소의 길

성소 주일에 만난 사람 / 안소근 수녀·윤주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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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5 발행 [1610호]
▲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과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소근 수녀와 윤주현 신부.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지금까지 각각 역서와 저서 43권을 펴냈다.



#1.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먼저 하느님으로 채워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하느님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

서울대 졸업식을 앞둔 2주 전, 그는 수도회에 입회했다. 애당초 졸업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인문대 수석 졸업이라고 참석해 달라는 학교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



#2. “사춘기를 지내면서 인생의 물음들을 가졌죠.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아닌 거예요. 내 모든 것을 걸만한 진리가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어요. 사람이 사랑을 하면 모든 걸 내주잖아요. 가정과 재산이 있는 목사는 아니었어요.”

그는 개신교회를 다니다 사제가 되려고 고3 때 개종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부모 몰래 교리와 세례를 받고, 매일 새벽 미사를 다녔다. 그는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와 원수로 지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 앞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안 수녀 연구실에서 두 사람을 같이 만났다.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와 교의신학을 가르치는 윤주현(가르멜수도회) 신부다.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교집합이 넓다. 지금까지 가톨릭 역서와 저서를 포함해 각각 43권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의 날(23일)과 성소 주일(25일)을 앞두고, 인터뷰는 ‘책과 성소’라는 두 축을 오가며 진행됐다.



성경과 영성 분야 번역 선수들

이들은 수도자로서 학문적 공감대도 넓다. 비슷한 시기에 대전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신학생을 양성하는 수도자로서 번역하면서 다양한 도움을 주고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안 수녀는 주로 방대한 성경을 쉽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저서들을 펴냈다. 「시편」, 「이사야서」,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다. 무엇보다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책보다 성경 말씀 자체의 살아있는 힘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선호한다.

윤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 대학원에서 신학적 인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기도 여정」,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에서 본 여정자 인간」 등의 저서를 비롯해 영성신학 및 가르멜 영성 분야의 역서를 펴냈다.

이들의 전공 분야는 성경과 영성으로 갈리지만, 공역자로 이름을 나란히 올린 책들이 적지 않다. 한국성토마스연구소장 이재룡 신부와 2031년 완역을 목표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번역하는 대장정에 동행하고 있으며, 최근에 완역한 이탈리아 석학 바티스타 몬딘 신부의 「신학사」 전집 번역도 함께 참여했다. 역서들은 대부분 권마다 700~800쪽을 넘나드는 방대한 대작들이다.



기획과 마무리도 척하면 착, 환상의 콤비

윤 신부가 ‘총감독’이라면, 안 수녀는 ‘구원 투수’다. 윤 신부가 총서나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일을 벌이면, 안 수녀는 끌려 들어가(?) 번역을 마무리한다.

윤 신부가 2015년 「종말론」을 번역할 당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당시 마감이 다가오는데 윤 신부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려고 급하게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윤 신부는 휴가 중인 안 수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서울역에서 만나 번역이 안 된 부분의 책을 가위로 잘라 나눴다. 처음 계획과 달리 공역자 이름에 안 수녀 이름이 올라갔다.

안 수녀는 다른 이들이 벌인 기획된 일에 합류해 일을 마무리한다.

“저는 다른 사람이 일을 시작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학생 때도 논문 고치고 교정 보는 게 전문 분야였어요. 책을 쓰는 것보다 번역하는 게 쉬워요. 그렇지만 번역이라는 게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원문은 저만 보잖아요. 독자들은 번역문을 보기 때문에 그만큼 번역가에게 큰 책임이 있는 거예요. 원문을 안 보는 사람들한테 그대로 전해줘야 하는 거니까요.”(안소근 수녀)

안 수녀의 아버지는 안정효 소설가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을 시작으로 130여 권의 작품을 옮긴 번역 문학의 대가다. 안 수녀가 수도회에 입회해 수도회 초창기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교정은 네가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자들이 남긴 교회 유산을 후대에 남기고 싶은 책임감

윤 신부의 아버지는 아들이 1998년 사제품을 받을 때 마음을 풀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봉헌한 게 여전히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이왕 가는 길 큰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어요. 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덤에 묻혀서도 눈을 못 감을 거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말씀과 기도가 수도자로 살아오면서 고비를 넘기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윤 신부는 “부모님께 드려야 할 효도를 내려놓고 수도생활에 투신하는데, 나태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올 후대에 도움이 되는 하느님의 빛과 교회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을 한국 교회에 남겨두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세 초부터 학문과 영성을 담당해온 것은 수도자의 몫이었다”며 “지금도 가톨릭교회의 영성과 학문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펴낸 저서와 역서들은 가볍고 읽기 쉬운 책도 있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출간해야 하는 책들이 더 많았다. 한국 교회의 신학계에 초석을 다지는 교부와 대학자들이 남긴 영적 자산과 교회 유산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번역에 좀더 무게를 두는 이유는 역사의 뒤안길에 엄청난 신학자와 성인들이 일생을 통해 작업한 중요한 학문적 영적 보화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생을 걸쳐 그런 작품을 쓸 수 없죠. 대가들의 책을 번역해 전해주는 것이 한국 교회에 더 큰 이익이 됩니다.”(윤주현 신부)



불타는 사명감으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성소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지만 각자 지닌 성소의 빛깔은 다르다. 윤 신부에게 ‘불타는 사명감’이 있다면, 안 수녀에게는 없다. 안 수녀에게 번역은 숨 쉬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는 불타는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요. 어쩌면 이게 하느님이 주신 몫이에요. 바오로 서간에서 ‘몸 안의 서로 다른 지체들’이라고 하죠. 왜 나를 끌어들이느냐고 하지만, 이게 내가 할 몫이라고 느끼는 거죠.”(안소근 수녀)

안 수녀는 “어떤 시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면서 “논문 지도 신부님이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실 때는 개인 소유로 주신 게 아니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거의 세뇌를 시키셨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가진 시간, 능력, 모든 것을 하나도 내게 남겨놓지 않고 다 쓰이는 것이 수도 서원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수녀는 “코로나 때문에 사도직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코로나와 성소는 상관이 없다”며 “사도직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순수하게 수도생활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있는 상태가 다른 걸 다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성소의 의미를 순수하게 생각할 기회”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어떻게 우리 둘을 엮을 생각을 했느냐고도 했다.

이들이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선수’로서 하고 싶은 말은 교회 역사 안에 묻혀 있는 대가들의 세기적 작품들, 영적 보화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두 잔이 바닥을 보인 지 2시간이 넘어서 인터뷰는 끝났다. 녹음기를 끄자, 안 수녀는 이 연구실은 김진태(전 가톨릭교리신학원장) 신부가 “학자에게는 연구실이 있어야 한다”면서 마련해줬다고 했다. 두 수도자는 “신학교의 인사권은 교구에 있어 수도자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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