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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스라엘도 좋지만 한 번쯤 연변 순례를

유럽·이스라엘도 좋지만 한 번쯤 연변 순례를

[미카엘의 순례일기] (14)김대건·최양업 신부의 발자취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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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발행 [1608호]
▲ 성 김대건 신부가 조선 입국로를 찾아다니면서 머물렀던 길림교구 경신공소. 공소는 김대건 신부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성지순례라고 하면 흔히 유럽 여행을 떠올리지만, 사실 순례에는 다양한 여정과 목적지가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마태오 리치와 같은 예수회 사제들이 집필한 책이 조선으로 반입되면서 신앙의 씨앗이 되었고, 선교사들 또한 중국을 통해 조선으로 넘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선교 초창기에 조선은 비오 6세 교황에 의해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의 개인적 지도와 보호에 맡겨졌습니다. 북경교구의 수호 성인이신 ‘성 요셉’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과 함께 한국 교회의 수호 성인이 되신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와 국경을 맞댄 만주 평야의 여러 지역은 특별합니다. 한국 교회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동포들이 아직도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강을 건너 삶의 터전을 가꾸었고, 나라를 잃은 시대에는 독립의 근거지로 투쟁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지요.

먼저 만주 평야에는 작은 교우촌 ‘소팔가자(小八家子)’가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정도 날아가면 도착하는 장춘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마을 주민 거의 모두가 신자이며,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었던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이 1년여간 머무시며 부제품을 받은 장소입니다. 순례단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 늘 마을 아이들이 복사를 섭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기도는 하나인 법입니다. 또한 옥수수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버스로 달리다 보면 ‘김대건로’라고 쓰인 표지석과 10㎞ 남짓의 길이 보이는데, 서울대교구 가락동본당의 후원으로 길을 닦고 도로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송화강을 품은 길림으로 갑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길림성당은 멀리서도 단박에 눈에 띕니다. 길림에는 최양업 부제가 라틴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만주 지역 최초의 신학교(신철학원)도 있습니다. 故 김남수 주교님과의 인연으로 수원교구와 길림교구가 자매결연을 하여 신학생 몇몇이 수원에 유학을 오기도 했지요. 신학교 옆에는 원로사목자들의 숙소가 있어 숲 속에 위치한 성모당까지 유리알 묵주를 돌리며 걷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백두산과 두만강입니다. 장백폭포를 눈에 담으며 천지의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기운을 받으면 절로 기도가 나오지만, 종교 행위가 금지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 성호를 긋는 것이 전부입니다. 두만강에 배를 띄워 올라타면 믿기 힘들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북녘땅이 보입니다. 노를 저어 조금만 가면 닿을 수 있습니다. 강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겉으로는 매우 잘 조성되어 있으나 사실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해 유령의 집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백두산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은 가득히 내리시리라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답답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수호 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경신공소’는 신부님께서 입국로를 찾아다니시다 머무르신 곳입니다. 언젠가, 경신공소의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당황했던 일이 있습니다. 공소 회장님은 일터에 나가셔서 통 연락이 되지 않았지요. 결국 제가 성당 담벼락을 넘어 안쪽에서 간신히 문을 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성화 앞에서 기도하고 떠나려던 순례단은 잡초가 가득한 그곳의 마당을 보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그날의 나머지 일정이 모두 어긋나게 되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마당이 제 모습을 되찾았을 때쯤,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회장님께서는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순례단은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오히려 그분의 손을 잡았더랬지요.

순례를 마치고 연길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만주 평야를 지납니다. 선교사들이 “만주 평야를 지났다”라는 간단한 문장을 자주 읽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너무나도 고단하고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만주 평야의 크기는 한반도의 8배가 넘습니다. 곳곳에 호랑이와 늑대, 도적단이 우글거렸습니다. 따뜻한 계절을 택할 수도 없었습니다. 압록강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만, 맨발로 얼음 위를 걸어 몰래 강을 건널 수 있었으니까요.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그분들의 힘과 의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토록 숱한 고난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명예와 영광이 아니라 시퍼런 형장의 칼날이었는데 말입니다. 제 발로 죽음을 찾아가 부활을 외쳤던 그분들의 믿음과 희생을 떠올려봅니다. 유럽의 멋진 도시와 예수님의 흔적이 가득한 이스라엘도 좋지만, 한반도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번쯤은 연변으로 순례를 떠나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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