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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덕을 저축하는 우주은행(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

[신앙단상] 덕을 저축하는 우주은행(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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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발행 [1607호]



저는 10여 년간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은행을 만든 것입니다. 제가 만든 은행은 우주은행이었습니다. 우주은행 행원을 다음과 같이 모집했습니다. ‘우리은행에는 돈을 저축하여 이자를 받지만, 우주은행에는 덕을 저축해 복을 받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내가 나에게 덕을 쌓고, 다른 사람에게 덕을 쌓은 이야기를 나눌 우주은행 행원을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신청을 기다립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던 온라인대학의 사회복지학과 학생이 2000명이 넘었기 때문에 너무 많은 학생이 신청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보름이 지나도록 신청하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신청한 학생은 고작 두 명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금융회사에서 은퇴한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회사 CEO를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우주은행 모임이 있던 첫날, 연구실을 찾은 두 분은 다른 분들은 언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우리 세 사람뿐이라는 설명에 두 분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렇게 우주은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학교 근처 작은 커피숍 2층에서 우주은행이 열렸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던 우주은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열다섯 명까지 행원이 늘었습니다. 신기한 일은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발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나에게 덕을 쌓을 거리를 찾았고, 남에게 덕을 쌓을 거리를 찾았습니다. 나에게 덕을 쌓은 일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남에게 덕을 쌓은 일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이 아닌 마음을 준 일이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우주은행 행원들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덕 쌓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덕 쌓는 이야기에서 서로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덕을 쌓고 사는 것인지를 알아갔기 때문입니다.

해가 갈수록 행원들의 표정도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얼굴이 환해지고 빛이 났습니다. 우주은행 행원이었던 한 교수님은 우주은행을 몇 년간 함께 한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즐거운 부담’을 느낀 유일한 모임이었다고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무엇을 발표할까 고민하며 나와 남에게 덕을 쌓을 일을 생각하는 것이 즐거운 부담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실천으로 옮길 때 나에 대한 뿌듯한 무엇이 올라오곤 했다는 거지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우리 삶에서 실감하고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주은행을 하면서 행원들은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몸으로 실천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게 아니었을까요. 지금도 저는 우주은행을 만든 일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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