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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0) 십자고상 (상) 2~6세기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0) 십자고상 (상) 2~6세기

십자가의 예수님, 고통보다는 승리자의 당당함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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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발행 [1453호]
▲ 초기 교회 미술에서는 십자고상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십자가를 지고 있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표현했다. 사진은 이탈리아 몬테 산 올리베토 수도원 벽을 장식하고 있는 십자가 깃발을 지고 있는 어린양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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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지고 있는 어린양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 교회를 세우고 승리와 희망의 그림으로 그 내부를 장식했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표현할 때도 십자가 상의 죽음보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즐겨 그렸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십자가형을 받고 처형된 자를 신으로 섬길 수 있느냐”며 모독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매달려 수난당하시는 주님의 비참한 모습을 표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십자고상(十字苦像) 작품은 초기 교회 미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이 시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있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어린양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희생된 속죄 제물로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파스카의 어린양입니다. 이 파스카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10)라는 성경 말씀을 되새기게 합니다.

박해시대 그리스도인의 표식으로 몰래 사용되던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때는 312년 로마 테베레 강 밀비오 다리 전투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군대가 벡실리움(vexillium, 군기)과 방패에 십자가를 그리고 전장에 나가 막센티우스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이후 십자가는 로마군의 표식이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를 ‘키로’(Chirho) 십자가라고 합니다. 헬라어 ‘Χριστοs’(크리스토스)의 앞 두 글자를 붙인 형태입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는 예루살렘 골고타에서 주님의 성 십자가를 발굴한 후 주님 무덤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 십자가를 비롯한 예수님 관련 성물과 골고타 흙을 가져와 로마에 예루살렘 성 십자가성당을 봉헌하자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이 빠르게 확산하였습니다.




십자고상 성미술 작품은 아마도 로마를 중심으로 유행한 듯합니다.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오래된 성미술품들이 모두 로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십자고상 작품은 420~430년께 로마에서 상아로 만든 장식함 조각판입니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돋을새김 조각판은 두 죽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의 죽음입니다. 이 부조에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은 양손에만 못이 박혀 있습니다. 두 발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머리 위 죄명 판에는 유다인들의 왕을 뜻하는 라틴어 ‘REX IVD’가 적혀 있습니다. 부조 맨 오른편에는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고 있습니다.(요한 19,34) 4세기 작품 「빌라도 행전」(Acta Pilati, 니코데모 복음이라고도 부름)은 이 로마 병사가 복음서에서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고 고백한 백인대장(마태 27,54)으로 그의 이름은 론지누스(Longinus)라고 밝힙니다. 또 13세기 이탈리아 제노바대교구장 야고보 다 바라제 대주교는 저서 「황금전설」에서 백인대장 론지누스는 이후 세례를 받고 복음을 선포하다 58년 소아시아 카파도키아 카이사리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조각판 가운데 십자가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맨 왼편 나무에 목을 맨 이가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의 발아래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몫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수석 사제 카야파에게 받은 은돈 서른 닢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 시기 또 다른 십자고상 작품 한 점을 소개합니다. 바로 430년께 만들어진 로마 성 사비나성당(Basilica Sanctae Sabinae)의 나무문 조각입니다. 돋을새김 부조인 이 작품에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과 그 좌우로 두 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두 죄수는 모두 두 팔을 벌린 채 기도하는 ‘오란테’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 사비나 성당은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처음으로 거행한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재의 수요일이면 교황이 사비나 성당을 순례하고 이곳에서 재를 얹는 예식을 주례합니다.

앞의 장식함 부조와 성 사비나성당 부조의 예수님 모습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의 예수님 얼굴에서 고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의 모습으로 당당합니다. 5세기 초반이면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을 때인데 왜 그때까지 승리자이신 주님의 모습으로 십자고상을 표현했을까요? 아마도 이 시기 서로마 제국을 위협하던 게르만 민족을 비롯한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그리스도 승리의 십자가로 이겨내고자 하는 신앙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두 예수상은 차이점도 있습니다. 상아 장식함의 예수님 얼굴은 긴 머리에 수염이 없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반대로 성 사비나 성당의 예수님은 긴 머리에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그리스풍의 혼합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벗은 몸에 익숙했으나 시리아 사람들은 성 육신의 맨몸을 드러내는 일은 주님께 대한 모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그릴 때도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도상이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6세기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입니다.


▲ 십자고상의 예수님이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은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 중 일부, 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



박해시대 초대 교회 때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5세기 말 고대 교회 시대 때까지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은 주님의 수난보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자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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