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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신문으로 크는 신앙]산타클로스의 진짜 정체는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산타클로스의 진짜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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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발행 [1394호]
▲ 성 니콜라오 주교 이콘.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와요?”

어린 시절 누구나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이런 질문을 해봤을 거예요. ‘올해엔 산타 할아버지가 또 어떤 선물을 가져다줄까’ 하고 행복한 상상도 함께요. 풍성한 흰 수염과 인자한 인상에 모든 아이를 품어줄 듯한 넉넉한 풍채까지. 산타클로스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죠.

성탄 시기가 되면 어린아이는 물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산타클로스는 그러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상상 속 사람입니다. 실존 인물인데 상상 속 사람이라니 헷갈리죠?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산타는 원래 주교였다?

산타클로스의 원조가 되는 실존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물론 하늘을 나는 루돌프 썰매와 굴뚝을 통해 선물을 전하는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말이죠.

사실 ‘산타클로스’(Santa Claus)의 실존 인물에 해당하는 사람은 3세기 말 지금의 터키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미라의 성 니콜라오(270?~341) 주교님이셨어요. 라틴어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를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테 클라스’라 불렀는데,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죠.

니콜라오 주교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던 분이셨어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인은 부모가 남긴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썼다고 해요. 죄 없이 사형의 위기에 처할 뻔한 장군을 구출해 주기도 하고, 망망대해에서 조난된 선원들을 구하기도 하는 등 자비로운 활동을 몸소 펼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교회 안팎에서 사랑을 받았던 니콜라오 주교의 모습을 본받아 오늘날에는 어린이와 죄수, 항해사, 어부, 부두 노동자, 여행자, 누명 쓴 죄수, 시인, 구두닦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있을 정도죠.

교회는 12월 6일을 성 니콜라오 축일로 지내고 있어요.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어온 성인의 뜻을 함께 기억하고 실천하는 때이죠.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과도 딱 맞는 축일이에요.

산타는 크리스마스의 상징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아는 푸근한 모습의 산타클로스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1930년대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가 상품 광고를 위해 만든 ‘캐릭터’죠. 사실상 상품과 함께 새롭게 창조된 산타의 이미지는 상업화의 물결 속에 종소리와 캐럴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됐죠.

실제 성 니콜라오 주교의 이콘을 보면 빨간 옷의 산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넉넉한 풍채 대신 벗겨진 이마에는 주름이 있고, 비교적 마른 모습입니다. 그러나 제의를 입고 복음서를 든 채 주교의 예표인 ‘팔리움’을 걸친 모습은 영락없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가톨릭 교회의 주교 모습을 하고 있어요.

니콜라오 성인과 관련한 일화는 또 있어요. 혼기가 찼지만, 가난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세 자매가 이웃에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니콜라오 주교는 밤에 남몰래 찾아가 돈이 든 주머니 3개를 굴뚝으로 떨어뜨리고 갔다고 해요. 돈주머니는 벽난로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양말에 우연하게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이는 오늘날 산타의 선물을 받기 위해 양말을 걸어놓는 풍습의 유래가 됐습니다. 사람들에게 몰래 선행과 자비를 베푸는 마음만큼은 성인과 산타 할아버지가 꼭 닮지 않았나요?

크리스마스는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Christ)를 경배(Mass)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즘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산타클로스 출입 금지 운동’까지 전개될 만큼 상업화된 성탄 문화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해요. 대신 니콜라오 성인의 업적과 뜻을 제대로 되새기자는 움직임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라도 이처럼 성인의 정신을 제대로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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