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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 설상가상, 덕산 사건으로 천주교인 박해 가속

[역사신문] 설상가상, 덕산 사건으로 천주교인 박해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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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3 발행 [1386호]

▲ 덕산 가야산 중턱에 자리한 남연군의 묘. 원래 가야사가 있던 절터였으나 흥선대원군이 이곳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1868년 5월 10일 오후 5시 30분쯤 충청도 덕산에 있는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 1788~1836)의 묘가 서양인들에 의해 파헤쳐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선대인(先大人)이자 현 국왕인 고종의 할아버지이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범인은 유다계 독일인 상인으로 인류학자이기도 한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로 밝혀졌다. 또 중국 상해 미국 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미국인 목사 프레더릭 헨리 배리 젠킨스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조선 선교사 스타니슬라오 페롱 신부 등 백인 10명과 마닐라 출신 선원 20명, 중국인 인부 100명, 조선인 6명이 동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남연군 시신을 탈취해 조정에 통상을 위한 개항과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를 요구하기 위해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페르트 일행은 1일 독일인 묄러가 선장인 증기선 차이나 호를 타고 상해에서 출발해 6일 나가사키를 거쳐 8일 밤 10시 서해안 남양만을 통해 9일 오전 10시 행담도에 정박했다. 오페르트 일행은 10일 새벽 차이나 호의 기선인 그레타 호로 옮겨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오전 11시 구만포에 상륙해 덕산읍 가야산 중턱에 있는 남연군 묘에 도착, 오후 5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이 밝을 때까지 밤새도록 무덤을 파헤쳤다.

하지만 이들은 봉분 한쪽을 파냈으나 단단한 석회층을 뚫지 못해 남연군의 시신을 탈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오페르트 일행은 썰물 때가 되어 물이 빠지면 차이나 호로 돌아가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질 것으로 판단, 작업을 중지하고 11일 오전 6시쯤 그레타 호를 정박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 12일 행담도에서 차이나 호로 갈아타고 아산만으로 떠나 영종도 인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큰 충격에 빠진 조정

13일 남연군 무덤이 파헤쳐진 ‘덕산 사건’을 보고받은 조정은 큰 충격에 빠졌다. 고종은 “덕산의 묘지에 서양놈들이 침입해 사초를 훼손한 변고가 있다고 하니 아주 놀랍고 황송한 일”이라며 “홍주 목사 한응필을 가승지(假承旨)로 임명하니 빨리 달려가서 철저히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고종은 아울러 “바다 밖의 서양놈들이 어떻게 길을 알아서 거침없이 쳐들어왔겠는가? 필시 우리나라의 간사한 무리 가운데 그들을 부추기고 길을 인도한 자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에 간사한 무리로서 법망에서 빠져나간 자에 대해서는 안으로는 포도청에서, 밖으로는 각 진영에서 일일이 붙잡아 남김없이 처단하라”고 명했다.

조정 대신들은 이에 “서양인들이 변란을 일으킨 것은 조선 사람들이 부추기고 호응한 결과라며 천주교인들을 모두 잡아 처형할 것을 고종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통상 교섭 서한을 받은 흥선 대원군, 천주교인 잡아들이라 명령

한편, 흥선대원군은 12일 영종 첨사 신효철로부터 오페르트가 보낸 통상 교섭 서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마닐라 선원 2명이 사망하고, 유럽인 1명이 부상당했다. 서한에는 “남의 무덤을 판 것은 예의 없는 행동임을 알지만, 귀국의 안위가 오히려 귀하의 처리에 달려 있으니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좋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몇 달 지나지 않아 우환을 당할 것”이라는 협박성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됐다. 이에 흥선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추적하라”고 명하고 “덕산 사건 이면에 천주교도의 내응(內應)이 있다며 사학쟁이를 잡아들일 것”을 명했다.

이 사건에 대해 외신도 상세히 다뤘다. 5월 22일 자 상해 영자 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는 ‘도굴을 목적으로 한 어설픈 원정’이란 제목 아래 서양인들이 남연군 묘를 파헤친 내용을 소개하면서 “유다인과 미국인은 배에 남아 있었고 페롱 신부만 장터에 상륙해 작은 규모의 일행들을 이끌고 산을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그들이 찾던 무덤을 발견하고 땅을 팠으나 봉분 밑에서 지하 무덤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벽돌 구조물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으며 그것을 부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지니고 있지 않아 계획을 단념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천주교인 박해 가속화

▲ 남연군 묘를 서양인들이 파헤친 덕산 사건이 있은 후 이 지역 일대에선 천주교인들을 생매장하는 잔혹한 형벌이 자행됐다. 사진은 해미 생매장터.

오페르트 일행이 남연군 묘를 파헤친 덕산 사건으로 잠잠하던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한성 포도청과 각 도 감영에서 천주교인을 체포하기 위한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천주교인 단속으로 중국을 왕래하던 교회 밀사 최인서(요한), 장치선을 비롯해 이정식(요한), 양재현(마르티노), 이양등(베드로), 김종륜(루카), 허인백(야고보) 등 수많은 신자가 서울 포도청과 절두산, 경기도 수원, 남한산성, 죽산, 남양, 충청도 덕산, 해미, 공주, 홍주, 충주, 청주, 전라도 전주, 나주, 여산, 경상도 대구, 울산, 진주, 황해도 해주, 황주, 함경도 영흥 등지에서 순교했다.

조정은 체포된 천주교인들에게 참수형을 선고했으나 지방, 특히 남연군 묘가 있던 충청도 덕산과 해미 일대에선 생매장과 백지사형(白紙死刑)과 같은 간혹한 방법으로 천주교인들의 처형이 자행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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