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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순교 150주년-역사신문] 새해에도 천주교인 처형, ‘피바람’은 계속

[병인순교 150주년-역사신문] 새해에도 천주교인 처형, ‘피바람’은 계속

제13호 18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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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9 발행 [1384호]
제13호 1867년

▲ 통영 통제영 중영관아 옥터. 김기량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을 받고 교살돼 순교한 자리이다.

▲ 1867년 초부터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서 천주교인들에 대한 처형이 시작됐다. 경상감영에 갇혀 있던 이윤일 등이 관덕정에서 순교했다.

▲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해가 바뀌었지만 1867년 올 한 해도 천주교에 대한 조정의 박해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고종 임금은 올해 1월 1일 대왕대비의 육순을 맞아 죄인들을 사면한다는 교서를 내렸다. 고승지 심승택이 지은 고종의 교시에는 “이처럼 성대하고 큰 경사에는 다른 사람에게도 크게 은택을 베푸는 거조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는 법전을 쳐들음에 어진 마음으로 이끌어서 따르고, 경사를 만나 은혜를 베푸는 예법을 드러냄에 시기를 상고해 보니 옳은 것이다. 이달 초하룻날이 새기 이전에 범한 각종 죄 가운데 잡범(雜犯) 사죄(死罪) 이상을 제외한 도류(徒流) 이하 죄인을 모두 용서한다”고 사면을 선포했다. 하지만 천주교인들은 국사범이었기에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상도

올해 천주교인의 처형은 대구 감영에서 먼저 시작했다. 1월 21일 충청도 홍주 사람 이윤일(요한)이 문경 여우목에서 체포돼 대구 경상감영으로 끌려왔다가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같은 날 문경 한실에서 잡힌 김예기도 함께 참수됐다. 관덕정은 대구읍성 남문 밖에 있던 연병장으로 군관과 별무사를 선발하던 곳이다. 이 연병장 가장자리인 아미산 등마루에 처형장이 있었는데 주로 국사범들을 공개 처형했다.

경남 진주에서도 연초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죽어 나갔다. 진주 허유고개에 살던 정찬문(안토니오)은 45세 나이로 진주 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1월 25일 순교했다.

통영에서는 제주 함덕 출신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이 1월 통영 관아에서 교수형을 받고 처형됐다. 포졸들은 김기량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그의 시신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전라도

전라도 지역도 올 한해 내내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끊이지 않았다. 올 2월 전라도 고산 소양에 살던 양반 출신 김사집(필립보)이 모친과 함께 전주 진영 포졸들에게 체포돼 옥에 갇혔다가 5월 순교했다. 또 경상도 사람 이택경의 아들이 전라도 진산 오항동에 이사해 살다가 지난 5월 김사집과 함께 전주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소양면 유상리에 살던 이 서방은 올해(1867년) 7월 체포된 후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그리고 8월 4일에는 전라도 고산 호엄에 살던 오 아가타가 최 베드로와 함께 여산 포졸들에게 잡혀 끌려가다가 최 베드로는 도중에 도망치고, 아가타는 전주로 압송돼 순교했다. 같은 날 고산 모약골에 살던 박 베드로도 여산 포졸들에게 체포돼 전주 옥에 갇힌 다음 신앙을 증거하다 매 맞아 죽었다.

지난해 체포된 남종삼의 아들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은 만 15세가 되자 올가을 전주 싸전다리 건너편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시신은 전주천에 버려졌다.

1866년 병인년 박해 때 새남터에서 남종삼(요한)이 순교하자 가족을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남종삼의 부친 남상교(아우구스티노)는 공주 감영으로, 14살밖에 안 된 큰아들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됐다. 또 남종삼의 부인 이조이(필로메나)는 노비가 돼 종살이했다.

충남 예산 사람인 홍봉주(토마스)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홍낙민(루카)의 손자로 부친 홍재영(프로타시오) 역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홍봉주 가문은 4대가 신유ㆍ기해ㆍ병인박해를 거치며 순교했다.

이들의 처형은 8월 3일 대사헌 김병규와 대사간 김기찬, 사간 권종록, 장령 김양연ㆍ황정연, 지평 고경준ㆍ이은춘, 헌납 송규호, 정언 이연수ㆍ권인두 등이 고종에게 올린 계(啓)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들은 “남종삼ㆍ홍봉주가 몰래 나라를 팔아먹을 흉측한 생각을 품고 근거 없는 요사한 말을 내뱉어 한세상을 선동하고 뭇사람을 현혹하였습니다. 그들이 한 소행을 따져 보면 남종삼과 홍봉주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였으니, 근래 사교가 마구 퍼져 화란의 기미가 만들어진 것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라며 두 당사자만 주벌하지 말고 가족 모두에게 연좌제를 시행해 사형에 처할 것을 간했다고 밝히고 있다.



▧충청도

충청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1867년 12월 말 현재 올 한 해 동안 공주에서 56명, 홍주에서 17명, 해미에서 6명 등 총 79명이 순교했다. 이 중 13명이 타지역 사람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은 누구인가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1816~1867)는 천주교 신자들에겐 ‘제주도의 사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제주목 함덕리 출신인 그는 1857년 2월 18일 일행 넷과 함께 배를 타고 서귀진에서 모슬포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 그해 3월 30일 중국 광동성 해안에서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됐다.

영국인 선원들은 그가 조선인임을 확인하고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인계한다. 이곳에서 김기량은 조선인 신학생 이바울리노를 만났고, 그에게 가톨릭 교리를 배웠다. 그는 1857년 5월 31일 홍콩 대표부 부대표인 루세이유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조선으로 귀국했다. 귀국 직후 배티 교우촌에 있던 최양업과 페롱 신부를 만나 제주도 복음화를 위해 투신할 것을 다짐했다.

1858년 5월 제주도로 귀환한 그는 고향 제주도에서 가족과 뱃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1866년 10월 장사하러 통영으로 갔다가 게섬에서 체포돼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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