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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순교 150주년- 역사신문] 신유박해(1801년)로 쓰러진 전라도 교회에 다시 박해의 불길이

[병인순교 150주년- 역사신문] 신유박해(1801년)로 쓰러진 전라도 교회에 다시 박해의 불길이

제11호 1866년 12월… 병인박해 점검 (3) 전라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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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4 발행 [1377호]
제11호 1866년 12월… 병인박해 점검 (3) 전라도 지역

▲ 전주 진영 군사들의 훈령장인 숲정이는 중죄인의 처형지였다. 조선 천주교회는 신유, 기해,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숲정이 순교지를 기념해 성모자상과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 숲정이 터에 천주교인 순교지임을 알리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병인박해의 불길이 전라도 지방까지 휩쓸기 시작한 것은 1866년 12월부터다. 올해(1866년) 전라도 박해는 전주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으나 곧 여산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주 지역 박해 상황에 앞서 전라도 천주교회에 대해 살펴보자.



전라도 교회 현황


전라도에 천주교를 전파한 사람은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이다. 전주 초남이 출신인 그는 경기 양근 권철신(암브로시오)의 집에서 서학을 탐구하다 1784년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전라도 첫 천주교 신자인 그는 가족과 식솔들을 영세 입교시켜 고향인 전주에 신앙 공동체를 이룬다. 이후 그는 이종사촌인 윤지충(바오로, 1758~1791)과 외사촌인 권상연(야고보, 1751~1791)에게 세례를 줘 전라도 북부 지역인 진산에도 복음을 전했다. 유항검은 이어 김제, 영광 등지에도 복음을 전해 ‘호남의 사도’가 됐다.

윤지충은 1791년 5월 모친상을 당했다.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권씨는 장례 때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는 미신적 행위를 절대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에 그는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해 고인의 상례를 갖추었으나 제사와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 이들의 ‘폐제분주’ (廢祭焚主) 는 전국에 즉각 알려졌다. 유생들은 왕에게 패륜적인 역적 행위라며 이들을 참형할 것을 상소했다. 정조 임금은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역적죄가 아닌 일반 형사범으로 사건 처리를 해 처형하도록 판결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돼 조선 천주교회 첫 순교자가 됐다.

주목할 또 한 명이 있다. 윤지헌(프란치스코, 1764~1801)이다. 윤지충의 동생인 그는 형이 처형되고 가문이 폐족되자 고산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때마침 저구리로 이사 온 충청도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2~1801)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뤘다.

한편, 유항검은 1785년 8월 주문모 신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조선 교회가 박해를 벗어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서양의 큰 배를 보내 줄 것을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청하는 일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편지에서 주 신부는 △북경 주교에게 서양 큰 배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청원서를 쓸 것 △작성된 청원서에 지도층 신자들의 연대 서명을 받을 것 △북경까지 청원서를 들고 갈 인물을 추천할 것 △이 일에 필요한 경비를 담당할 것 등을 당부했다.

유항검은 동생 유관검과 조카 유중태, 윤지헌과 함께 이 일을 구체화해 밀사로 황심을 추천하고 최창현, 황사영 등이 연대 서명한 청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경비 400냥도 내놓았다. 황심은 1797년 1월 28일 북경에 도착해 구베아 주교에게 주문모 신부의 편지와 조선 신자들의 청원서를 전달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이후에도 유항검과 윤지헌은 조선 밀사를 북경 교구에 파견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이들은 전라도 교회 지도자로 일찌감치 체포된다. 심문 과정에서 유관검의 배교로 밀사를 보내 서양 배를 보내 달라고 청원한 사건이 발각돼 모반대역죄로 능지처사 형을 받고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했다.

신유박해로 전라도 교회는 거의 전멸했다. 전라도 신자 200여 명이 순교했다. 여파가 너무 컸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전라도 지역 깊은 산골짜기와 섬으로 들어갔다. 또 경북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등지로 피신했다. 19세기 중반 전라도 교회는 전주, 여산, 진산, 고산, 무장, 영광, 정읍, 곡성, 남원, 순창 등지로 확산하지만 1861년 10월 베르뇌 주교가 전국을 8개 사목구로 나눌 때도 독립 구역으로 포함되지 못했다.





1866년 병인박해 전라도 순교자와 순교지


올해(1866년) 전라도에 병인박해의 불씨가 제일 먼저 튄 곳은 전주다. 12월 5일부터 이틀간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에서 살던 손선지(베드로, 1820~1866), 한재권(요셉, 1829~1866), 정문호(바르톨로메오, 1801~1866)와 소양면 유상리 성지동의 조화서(베드로, 1814~1866), 조윤호(요셉, 1848~1866), 이명서(베드로, 1820~1866), 정원지(베드로, 1846~1866) 등이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다. 아울러 진산 가새벌에 사는 김영삼(1847~1866)이 체포돼 전주 진영으로, 고산 넓은 바위에 살던 박 도미니코가 체포돼 여산으로 끌려갔다.

▲ 1866년 12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손선지.



전주옥에 갇힌 8명의 신자 중 손선지, 한재권, 조화서, 이명서, 정문호, 정원지는 갖은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김영삼도 옥에 갇힌 지 두 달 후 20살 나이로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처형됐다. 조화서의 아들 조윤호는 부자나 형제를 한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12월 18일 전주 서천교 다리 밑 장터에서 태장 200여 대를 맞고 18살 나이로 순교했다.

전주 숲정이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순교지다. 이곳은 전주 진영 군사들이 훈련하던 장소로 중죄인의 형장으로도 사용됐다.

신유박해 때에는 전라도 사도 유항검의 처 신희와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유관검의 처 이육희와 아들 유중성(마태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또 김대건(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신태보(베드로), 정태봉(바오로) 등이 기해박해 때 숲정이에서 참수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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