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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순교 150주년-역사신문] 봄부터 시작된 박해의 칼날에 수많은 신자들 희생

[병인순교 150주년-역사신문] 봄부터 시작된 박해의 칼날에 수많은 신자들 희생

제9호 1866년 12월- 병인박해 점검(1) 서울 경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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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0 발행 [1372호]
제9호 1866년 12월- 병인박해 점검(1) 서울 경기 지역

병인년, 올 한해는 한반도가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물든 해였다.

봄에 처형된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사제들을 비롯해 병인양요 후 절두산에서 처형된 신자들까지 수많은 천주교인이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수를 추산할 순 없지만, 지난해 조선 교회 신자가 약 2만 3000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중 상당수가 순교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대적으로 박해가 이뤄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서울ㆍ경기 △충청 △경상 △전라 등 지역별 순교자와 순교지를 살펴본다. 첫 번째는 서울ㆍ경기 지역이다.

서울

서울은 조선 교회의 수장인 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담당한 지역이다. 평화신문에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베르뇌 주교는 박해 직전까지 서울을 4구역으로 나누고, 회장을 임명해 사목한 것으로 확인됐다. 베르뇌 주교는 누아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우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4명의 회장을 데리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회장을 통해 성사를 청하면 회장이 나를 데리고 성사가 필요한 신자의 집으로 간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회장직을 수행한 인물은 정의배(마르코)ㆍ최사관ㆍ최인서 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은 조선 교회의 중심지였던 만큼 주교, 사제,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국사범으로 처형된 장소다. 3월 7일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애르ㆍ볼리외ㆍ도리 신부, 3월 11일 푸르티에ㆍ프티니콜라 신부가 새남터 형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경기


경기 지역은 서울 다음으로 천주교 신자가 많은 지역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지만, 50% 이상이 수원ㆍ용인ㆍ양지 등 경기 남부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경기관찰사는 “1820년대 이후 충청 지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경기 지역으로 이주한 후 교우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교적 박해에서 자유로웠던 송도 지역 또한 이주 신자가 늘어나면서 교세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중 충청 출신 정여삼(바오로)과 이화실은 용인 삼배일로 이사해 살다 지난 11월 경기 광주 포교에 잡혀 남한산성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정은(바오로)과 그의 손자 정양묵(베드로)도 12월 8일 체포돼 남한산성에서 백지사형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서울 대표 순교지

새남터 : 한양성 밖 남쪽 한강 변 모래사장에 자리한 군사들의 연무장. 군문이 있어 반역을 일으킨 중죄인이나 국사범을 처형했다.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처형된 장소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 중에선 주교와 사제 등 지도자급 인사가 처형됐다. 중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 김대건 신부 등이 병인박해 이전에 이곳에서 순교했다.

▲ 지난 3월 새남터 처형장에서 희광이가 도리 신부의 목을 베어 보여주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서소문 밖 형장 : 태조 임금 때 ‘소덕문’(昭德門)이란 이름으로 한양 도성 서남쪽에 만든 문으로, 임진왜란 때 파괴됐다가 1744년 영조 임금 때 중건되면서 ‘소의문’(昭義門)이라 이름을 바꿨다. 근처에 시장이 있어 죄인을 처형하며 일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좋아 처형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형 후 시신을 내다 버리고 있어 많은 이들이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부른다.

양화진 : 서울에서 양천으로 이어지는 한강 연안에 자리한 나루다. 병선의 훈련장이면서 동시에 이동하거나, 배를 기다리는 사람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어서 처형장으로 활용하기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정은 지난 9월 수로 정찰을 나온 프랑스 군대가 양화진까지 침범했던 것을 계기로 병인양요 중 적발된 천주교 신자 20여 명을 이곳에서 처형했다. 양화진 일대가 순교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후문이 신자들 사이 퍼지고 있다. 대부분 극형인 참수형을 받고 순교해 양화진 잠두봉을 ‘절두산’(머리를 자르는 산)이라 부르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포도청 : 치안을 담당하는 조정 관청이다. 좌포도청(서울 동ㆍ중ㆍ남부와 경기좌도 지역 담당)과 우포도청(서울 서ㆍ북부와 경기우도 지역 담당)으로 나뉘어 죄인을 체포하고 옥에 가둬 심문했다. 서양인 선교사와 회장 등 지도자급 신자들은 지방에서 체포되더라도 서울로 압송돼 포도청에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다. 여성 지도자인 박아기(막달레나)는 11월 교수형을 받고 포도청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대표 순교지

남한산성 : 군사적 요충지인 경기 광주에 세워진 산성.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1624년 인조 임금이 후금국의 위협을 받은 이후 안쪽 둘레는 17리 반, 바깥 둘레는 20리 95보 규모로 중건했다. 현재 성 안에는 광주부 읍치가 있고, 유사시 국왕이 거처할 행궁과 사직을 옮길 우실도 갖추고 있다.

광주와 양주ㆍ용인ㆍ이천 등지에서 잡힌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군사 훈련 장소인 연무관과 포도청에서 심문과 고문을 당했다. 기해박해(1839년)부터 지금까지 순교한 신자 수만 300여 명에 가깝다.

▲ 남한산성.



수원화성 : 1796년 정조 임금 당시 완공한 성으로 다산 정약용(요한)이 설계했다. 수원 근교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고문을 받고 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형장과 동장대 등에서 순교했다. 회장으로 수원 지역 선교에 힘썼던 김사범도 체포돼 성 안 옥에 갇혔다. 그러다 심문 중 맞은 장이 화근이 돼 순교하고 말았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기록을 남기지 않고 즉시 처형한 신자들이 많아 이름 없는 신자들까지 포함하면 순교자 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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