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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150주년-역사신문] 대원군 태도 돌변에 주교와 신자들 대거 잡혀가

[병인박해 150주년-역사신문] 대원군 태도 돌변에 주교와 신자들 대거 잡혀가

(제3호) 1866년 2월- 베르뇌 주교 비롯해 선교사와 신자들 체포령 내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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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발행 [1352호]
(제3호) 1866년 2월- 베르뇌 주교 비롯해 선교사와 신자들 체포령 내려져

▲ 2월 27일 볼리외 신부가 이선이의 밀고로 체포되고 있다. 그림=탁희성



흥선대원군의 요청에 따라 회동을 기다리고 있던 베르뇌 주교가 2월 23일 전격 체포됐다. 제4대 조선교구장인 베르뇌 주교는 이날 복사 홍봉주(토마스)와 함께 한양 인근 은신처에서 체포돼 광화문 육조거리 우포도청으로 압송됐다.

포청은 베르뇌 주교 체포를 시작으로 25일 정의배(마르코) 회장을, 26일에는 브르트니에르 신부를, 27일에는 볼리외(경기도 지역 사목 담당) 신부와 도리(용인 손골 담당) 신부를 잇따라 잡아들였다. 아울러 포청은 베르뇌 주교 체포에 앞서 19일 모방 신부의 복사였던 최형(베드로, 52)과 전장운(요한, 55)을 불법인 천주교 서적 간행 혐의로 체포했다.

천주교 성직자들과 주요 평신도 인사들의 전격 체포는 대원군 이하응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따른 것으로 관측통들은 분석했다. 대원군이 천주교에 대한 입장을 급선회한 데는 △대원군이 교회와 접촉하게 된 계기였던 러시아인들의 통상 요구가 사라진 데다 △지난 1월 청나라 주재 조선 사신의 보고가 주효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사신은 조정에 “청나라 조정이 서양인들을 처형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신들은 대원군에게 천주교와 교섭한 사실을 비난하며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라고 거세게 압박했고, 위협을 느낀 대원군이 대신들 의견에 따랐다는 것이 조정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반면, 정치적 이유에서 박해가 시작됐다는 외부의 의견도 있다. 청나라 북경 프랑스 공사관 전속 의사 마르탱(C. Martin)씨는 “조선 내 선교사들이 정치에 개입됐기 때문에 갑자기 박해가 시작됐다"면서 “조선의 문호 개방을 원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의 정치적 갈등에 교회가 연루돼 탄압을 받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탱씨는 조선 선교사들과 접촉한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자제했다.

한편, 신앙의 자유를 기대했던 천주교 신자들은 갑작스러운 박해에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신자들은 마을에 머물고 있는 서양 신부 때문에 위험이 닥칠 것을 염려해 선교사에게 떠나달라고 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던 고종의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는 “서양 신부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며 “틀림없이 서양 군사들이 신부들의 원수를 갚으려 조선으로 와 내 아들을 죽일 것”이라며 비통해 했다고 임금의 유모 박 마르가리타씨가 전했다.

베르뇌 주교 체포 과정에는 밀고자의 도움이 있었던 것도 확인됐다. 밀고자는 베르뇌 주교의 심부름꾼이던 ‘이선이’로, 그는 배교 후 석방을 조건으로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서양인 선교사들의 거주지 정보를 포청에 넘겼다.

현재 승지 남종삼(요한)에 대한 지명수배와 체포 명령이 내려진 상태이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베르뇌 주교는 고문에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 2월 27일 베르뇌 주교가 관청에서 문초를 받고 있다. 그림=탁희성


23일 체포돼 우포도청에 수감 중인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가 강도 높은 신문과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베르뇌 주교 고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신자 포졸 서인겸(야고보)과 그의 친척인 포졸 서신겸은 주변인들에게 베르뇌 주교의 신문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베르뇌 주교는 “떠나라고 한다면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겠느냐”는 관장의 질문에 “강제 추방을 하면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다른 선교사들의 행방에 대해 일절 발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속되는 배교 권유에는 “영혼을 구하는 종교를 전하려고 왔는데 그 종교를 배반하라니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두어라”면서 “나는 당신 손안에 있으며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졸 서인겸은 베르뇌 주교가 26일과 27일 등 여러 날 동안 무자비한 형벌을 받았다고 상세히 증언했다. 서인겸은 “포졸들이 몽둥이로 베르뇌 주교의 다리를 매질하고 옆구리를 찔러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드러나 으스러지는 등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베르뇌 주교는 반복되는 고문으로 인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승지 남종삼은 지명수배자로 경기도 일대에서 피신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서양 주교를 이용해 러시아 남하를 막자’는 방아책을 전달했던 승지 남종삼(南鍾三, 요한, 49)이 현재 경기 지역에서 피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월 말 한양에서 8㎞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남종삼을 만난 장 필립보씨는 “베르뇌 주교와 선교사들의 체포 소식과 남종삼 또한 지명수배됐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을 느낀 남종삼은 서울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다”고 밝혔다.

남종삼과 동행했던 한 하인도 “남종삼이 2월 1일부터 3주간 아버지 남상교(아우구스티노, 84)가 있는 충청도 제천 산골 마을 묘재(충북 제천 봉양읍 학산리)에서 머물다 서울로 가던 중 장 필립보를 만났다”며 “남종삼은 그 자리에서 하인 6명을 돌려보내고 관리 표지를 뗀 채 몸을 피했다”고 증언했다.

하인들의 정보에 의하면 남종삼은 현재 장 필립보씨와 만난 곳에서 12㎞가량 더 떨어진 경기 고양 인근 마을에 몸을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

조정은 25일 사교를 믿은 혐의로 남종삼을 지명수배했으며, 관할 부서는 그의 뒤를 쫓고 있다.

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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