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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

[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

순명의 기도, 믿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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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발행 [1352호]
순명의 기도, 믿음의 삶

▲ 티치아노 작 ‘이사악의 희생’, 1542~154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출처=「명화로 만나는 성경」



아브라함은 네겝 지방에 살 때 기근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이집트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내려갔다. 이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아내 사라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자칫 아름다운 사라이를 차지하려는 이집트인들 때문에 아브라함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창세 12,10-20). 그 후 아들과 같은 롯과 분쟁도 일어났다. 돈과 재물이란 것이 이상해서 하루아침에 인간관계를 파괴해버렸다(창세 13,1-18). 또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초조한 나머지 하가르를 소실로 들이기도 했다. 결국 하가르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본인과 아내 사라이, 하가르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삶이 되고 만다(창세 16,1-16).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된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때마다 그는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 일생의 기도는 순명의 기도이다. 그는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실 때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한다. 물론 그의 삶에는 청원과 탄식의 기도도 있다(창세 18,16-33). 그의 신뢰 가득한 모든 기도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또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세 18,25) 아브라함에게 질문하고 탄식하는 기도는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 신비를 느끼는 장이 된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마치 가까운 부모나 친지에게 드리는 대화처럼 친밀하다.

그런데 말년에 아들 이사악 때문에 받게 될 시련은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어 이사악을 얻었다. 늦둥이로 얻은 이사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자식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그 어린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그는 수없이 외치며 기도했을 것이다. “하느님, 너무 잔인하십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아마도 그는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아브라함 일생의 가장 큰 시련에서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갈등과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는 한 가지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당장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기도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시련과 시험의 연속이었으며, 그가 만난 하느님은 시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을 잘 감당해 마침내 하느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다. 믿음을 전제로 자신의 삶을 하느님 말씀에 먼저 순명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이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후대 사람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르지만 그도 그저 약한 한 인간이며 신앙인이다. 신앙이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인 채 하느님께 나가는 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이다. 신앙인 아브라함의 기도는 그렇게 낮고 간절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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