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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이야기](48) 가상칠언 (하)

모든 구속 사명을 “다 완성했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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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2 발행 [1309호]
모든 구속 사명을 “다 완성했다” 고백

▲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든 행위를 성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지만 스스로 원해서 따르시는 행동하셨다. 사진은 예루살렘 예수님 무덤 성당 안에 있는 예수님의 빈 무덤. 리길재 기자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네 복음서는 모두 십자가 아래에서 비통해 하는 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 막달레나,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이었다(마르 15,40-41; 마태 27,55-56; 루카 23,49; 요한 19,25).

십자가 위에서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선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라 하시며 어머니 곁에 사랑받는 제자를 남기시고, 동시에 그를 그녀의 아들로 만드셨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인이시여”라고 부른 것은 성모님을 ‘모든 여인의 대표’로 승격시킨 호칭이라고 가르친다. 하와는 인류에게 죄를 남겨준 여인이나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여인이다.

요한 묵시록은 하늘에 나타나는 여인의 큰 표징(묵시 12,1-6)을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낳는 산고를 겪을 것이며, 이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신비가 역사 안으로 들어와 완성될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목마르다”(요한 19,28)

뙤약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께서 힘없이 토해낸 말씀이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초(醋)가 된 신포도주를 해면에 듬뿍 적셔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어주었다. 주님은 갈증을 해소하듯 이 신포도주를 지상의 마지막 음식으로 드셨다.

이 모습은 수난 시편이라 일컬어지는 시편 69장 22절의 “목말라 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라는 탄식을 떠올리게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신 포도주를 마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서 5장 ‘포도밭의 노래’를 묵상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포도밭을 위해 온갖 세심한 배려를 다 기울이셨는데 인간은 단지 자신만을 염려해 하느님께 신 포도만 바칠 뿐이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하느님께서 죽으시면서까지 인간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시는데 인간은 또다시 십자가 아래에서 초가 된 신 포도주를 바쳤다며 탄식하면서 회개와 믿음으로 더이상 이러한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성서학자들은 ‘우슬초’는 정결 예식 때 쓰이는 것으로 수난 이야기에 우슬초 가지(히솝의 채)가 나오는 것은 ‘파스카 전례’(탈출 12,22)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τετελεσται’(테텔레스타이, 우리말 - 다 이루어졌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다 이루어졌다’는 것은 ‘끝났다’가 아니라 ‘완성했다’는 뜻이 더 많이 내포된 말이다.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구속 사명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다 이루어졌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 구속 사업의 분수령이며, 구약과 신약을 완전히 구별하는 전환점이며 구원사의 기틀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십자가 수난 전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 겟세마니에서 하느님께 두 가지 청원기도를 하셨다. 하나는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요한 12,27)라는 청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요한 19,28)라는 청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다 이루신 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광’이다.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설명은 ‘τετελεσται’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설명(히브리 5,9)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대사제의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난을 겪고 순종을 배우심으로써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는 영광을 이루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이 말씀은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시편 31,6)라는 시편 노래에서 나온 말이다.

신학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은 당신 죽음이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신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한다. 당신의 모든 행위를 성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지만 스스로 원해서 따르시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예수님은 사랑 안에서 인식하는 정신, 자유로운 의지,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그 추락을 체험했다. 허무가 클수록, 허무를 극복하는 분은 더욱 위대하다”며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짊어지고 철저히 의식하고 체험하고 고난을 당함으로써 그분은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 이르도록 해방해야 했다”고 웅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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