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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대부’ 오영진 주교, 사제수품 50년 금경축 맞아

‘노동자의 대부’ 오영진 주교, 사제수품 50년 금경축 맞아

“하느님 사랑 안에 반세기, 기쁨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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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1 발행 [1280호]
“하느님 사랑 안에 반세기, 기쁨만이”

▲ 오영진 주교가 24일 서울 시흥동성당에서 금경축미사 뒤 열린 축하식에서 화환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힘 기자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50년을 사제로 지낼 수 있었기에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습니다.”

5년 전 프랑스 생드니교구장을 끝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노동자의 대부’ 오영진(Olivier de Berranger, 77) 주교는 사제로 살아온 50년 세월을 ‘감사’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오 주교는 현재 자신의 고향이자 사제품을 받았던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100세 가까운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다.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은 유학 중인 사제들을 만나러 최근 프랑스를 방문한 정신철(인천교구 보좌) 주교가 오 주교를 만나 한국에서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하자고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오 주교는 13일 그리던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24일 서울 시흥동성당에서 정 주교와 서울ㆍ인천교구 노동사목위 담당사제, 프라도회 사제들이 함께 봉헌한 오 주교의 사제수품 50주년 미사에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로 성당이 가득 찼다. 그의 금경축을 축하하러 찾아온 이들은 1970~1990년대 오 주교와 함께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청년이었던 이들은 세월이 흘러 장년이 됐지만, 그들에게 오 주교는 지금도 “우리 신부님”이었다.

오 주교는 1975년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고 김수환 추기경 요청으로 낯설고 가난했던 한국에 왔다. 프랑스의 대신학교에서 사제들을 양성하던 그를 김 추기경이 납치하다시피(?) 초청해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가톨릭노동청년회와 노동장년회를 한국에 전파했다. 오 주교는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 일대에서 18년 동안 노동자들과 지내며 이들의 애환을 보듬었다.

그는 또한 가난과 청빈을 실천하는 프라도사제회를 한국교회에 들여온 주역이자, 그 정신을 평생 실천하며 살아온 사제다. 1993년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언제나 마음은 한국에 남겨 두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어 실력이 줄지 않았다. 그는 1996년 주교로 임명됐다.

늘 청년들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는 오 주교는 “한국 청년들이 자꾸 서양 가치관을 따라가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동양의 훌륭한 전통 가치관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29일 마르세유로 돌아갔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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