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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21.끝> 신앙의 해, 하느님 사랑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21.끝> 신앙의 해, 하느님 사랑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4.끝) 무엇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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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4 발행 [1241호]
5. 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4.끝) 무엇보다 사랑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부르심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사진은 지난 7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WYD)에서 한 청년이 아이패드에 '나는 예수ㆍ마리아ㆍ요셉을 사랑합니다'하고 쓴 모습. 【CNS자료사진】

1. 도시는 문명의 총아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모든 길은 로마로 그리고 서울로 통한다. 모든 것이 제공되는 도시는 모든 자원을 누린다. 청소부, 편의점, 운전기사. 도시의 새벽을 여는 사람은 기초 자원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정치, 재벌, 언론. 사회적 권한은 자원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자리에서 나온다. 고급 휴대전화, 명품 핸드백, 외제 차. 사치품은 잉여 자원이 있다는 징표다. 남아도는 물질,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신호다. 그렇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원하는 건 차고 넘치는 소유다. 부자 되는 욕구다.

 먹어야 산다. 그것이 살아 있는 인간의 일이다. 섭생이다. 살아 있는 생명은 생명을 섭취해야 산다. 물고기, 고기, 날고기, 생고기, 다해서 살코기. 남의 살만 고기가 아니다. 풀은 식물의 몸이고, 과즙은 과일의 피다. 못 먹으면 죽는다. 다 먹고 살려 하는 일이다. 삶은 무력한 관념이 아니다. 소유와 무관한 신선 같은 인생은 없다. 무소유에 대한 의지도 생각으로 가진 소유다.

 오늘도 어김없이 TV 광고의 단골 주제는 대출과 보험이다. 대기업의 합법적 고리대금이 경기 부양 목적으로 장려되고, 다수를 기쁘게 실망하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로또가 창궐한다. 돈을 찍어내는 허상 경제를 고상하게 '양적 완화'라고 부르고, 국민 대다수가 빚더미 위에 앉아 '부채'로 생활을 꾸린다. 강이든 산이든 자연을 남김없이 짜내 자산으로 환원한다. 우리 세대도 모자라 미래 세대의 자원을 끌어다 쓴다. 축복의 꿈조차 재앙의 현실로 다가온 고령화 시대. 젊은이는 시골을 떠나고, 빈국의 노동력은 부국으로 밀려든다.

 물, 석유, 일자리, 시간, 기회. 쓸 수 있는 자원은 제한돼 있으나 쓸 사람은 늘어 간다. 개인 병원, 구멍가게는 없어지고 대형 병원, 대형 할인점이 대세다. 다양한 전통적 언어는 사라지고 힘 있는 언어로 통합된다. 획일적인 세계화의 물결이 도시의 팽창을 가속화한다. 2013년 현재, 세계 인구는 1910년에 비해 네 배가 늘었다. 도시화의 결과다.
 
 2. 도시는 세계 자원의 75%를 소비한다. 동물, 식물, 화석 원료 대부분을 도시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소비되는 자원은 오염 물질, 쓰레기와 같은 부산물을 남긴다. 인류는 오래전 '생태 부채'의 한계를 넘어섰다. 생태 부채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재생 능력의 한계를 말한다. 2033년이 되면 정화를 위해 지구 2개가 필요할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다. 사냥하지도 채집하지도 재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먹고 산다. 나는 혼자 옷을 만들지 못한다. 원료가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입고 산다. 도시인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은 물리적 생산을 통해 먹고 살지 않는다. 장사와 정보, 서비스와 금융 같은 무형의 능력으로 먹고 산다. 그래서 우리에겐 손보단 입이, 노동보단 협상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생산할 수 없으니 생산지나 식민지가 필요한 것이다.

 유럽은 바닷길을 개척해서 새로운 땅과 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세계대전의 불황을 극복했다. 냉전을 버틴 미국은 세계 자원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서구 역사의 이야기 전개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된다.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는 승자 독식의 세계다. 팔레스타인, 티베트, 신장 위구르, 쿠르드. 그들은 자신의 땅을, 정신을, 역사를, 자원을 빼앗긴 민족이다. 투명인간, 아웃사이더, 잉여인간, 소외된 자, 아나빔, 레미제라블. 그들은 거룩한 희생 제물이 된 '호모 사체르(Homo Sacer)'다. 문명의 역사란 결국 도시, 전쟁, 화폐, 그리고 희생의 역사다. 사실은 있지만 실상은 없는 사람들. 자기 인생이지만 남의 인생 같은 자기 인생. 이 세계가 상실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내겐 아프다.
 
 3. 도시인은 곡식과 가축 대신 돈을 번다. 돈은 생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도시인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곡식과 가축은 오래 두면 썩는다. 돈은 썩지 않는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고, 두고두고 남아 돈이다. 돈이 왜 물질인가. 갖고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힘 아닌가. 상상을 실현시키는 형이상학적 원리이자 성공의 표상 아닌가. 누가 돈을 보고 정교하게 인쇄된 종이 쪼가리라 생각하는가. 돈이 말하고, 돈이 명령하고, 돈이 살아 숨 쉬고. 돈은 생명과 밥줄을 지배하는 도시의 신이다.

 우리 시대는 무신론의 시대가 아니다. 다신교의 사회도 아니다. 바야흐로 돈을 숭배하는 유일신 시대다. 우리가 허약해서 믿음까지 약해진 것이 아니다. 믿음은 오직 성령께서 주신다. 우리가 갑자기 악해져서 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과 도시와 화폐의 힘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숭배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4. 교회는 세상과 유관하다. 천상적 공동체이로되, 지상 위에 존재하는 천상적 공동체다. 불멸의 영혼을 꿈꾸되, 필멸하는 몸을 감안하는 유기체다. 탈출한 이스라엘이 도달한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안전 무사한 피신처가 아니었다. 위험한 문화와 위태로운 유혹이 범람하는 이교도의 세상이었다. 폭력 중에 가장 큰 폭력은 폭력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괴물 중에 가장 큰 괴물은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피 흘려야 하는 박해가 없다. 드러내 놓고 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순교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다름만 있고 틀림도 없다. 하지만 선택은 있다. 세속의 물결이 범람해도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하는 것이다.

 구약의 역사는 선택과 투쟁의 역사였다. 유일하신 야훼 하느님이냐, 풍요를 보장하는 바알이눔. 다신교는 관념적인 종교가 아니다. 모호한 내세를 보장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오늘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사랑이다.

 추호의 추상성조차 없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장사할 때, 전쟁할 때, 여행 갈 때, 심지어 부엌에도 있으니까. 합격과 승진, 출세와 성공도 문제없다. 인간의 욕망만큼 수없이 많은 신이 존재하니까.

 5. 인간의 욕망이 자신의 운명을 만든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다르다. 우린 무엇을 원하고 사는가. 돈을 원하는 사람은 돈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영원을 열망하는 사람은 영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믿는가. 누구에게 속해있는가. 누구에게 복종하는가.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 선택은 하느님이 하셨다.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셨다.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은 철회되지 않는다. '구원'은 우리를 부른 목소리가 인도하는 마지막 종착지다. 사랑의 소명을 받은 자는 마땅히 사랑에 복종해야 한다. 빛을 운반하도록 지명된 자는 빛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6.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도시 문명이 교회가 뿌리박고 있는 현실적 토양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통 사회로의 회귀가 아니다. 이 세계에 존재해 본 적 없는 유토피아 건설이 아니다. 현재를 혐오하는 일은 자칫 미래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 제트 비행기를 탄 성직자가 문명을 저주하는 일과 같다. 인류를 지탱하는 생명의 원천은 예수의 십자가 희생이다. 타인의 몸과 피를 요구하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성된 이상적 전망이 아니다. 사랑의 응답이다.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다. 용기다.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할 수 없다.

 신앙의 해는 지속하고 있다. 세속의 물결에 대응하는 교회의 선택은 기초를 다지는 실천이다. △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로마 10,17) △기도로 자라나는 신앙(마르 9,29 ; 사도 1,14) △교회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사도 2,42 ; 콜로 2,7)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사도 2,42 ; 1코린 10,17)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사도 2,46 ; 갈라 5,6 ; 1코린 13,13)

 말씀은 구원 언어로 계시된 하느님에 관한 책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를 잇는 신앙인의 '정신줄'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지속 가능한 신앙생활의 길이다. 미사는 성사의 꽃이며 지상을 사는 영혼의 음식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실천, 그 '무엇보다 앞서는 것은 사랑'이다.

 "교리와 그 교육은 모두 끝없는 '사랑'을 향해야 한다. 믿고, 바라고, 꼭 해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늘 우리 주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그리스도인 완덕의 근원이 '사랑'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그 목적도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모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영적 소유가 가진 역설이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더 받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더 굳건해지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가진 사랑마저 허물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이석균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사목부)


 

 ※지난 1월 20일자(본지 제1200호)부터 연재한 평화신문-서울대교구 사목국 신앙의 해 공동기획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는 이번 호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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