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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7> 정산필ㆍ방프란치스코ㆍ인언민ㆍ이보현

[하느님의 종 125위 열전]-<17> 정산필ㆍ방프란치스코ㆍ인언민ㆍ이보현

정사박해로 내포교회 공동체 신자 100여 명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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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6 발행 [1180호]
정사박해로 내포교회 공동체 신자 100여 명 순교...

정산필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 받고 회장에 임명
사형선고 받자 천주와 성모께 감사   방프란치스코 
인언민     가슴뼈 부러치는 고통 속에서 신앙 증거
혹독하게 매맞는 형벌에도 웃으며 순교      이보현


  1797년 박해는 당시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한용화가 일으켰다. 임지 공주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도내 모든 수령에게 명을 내려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였다. 1799년까지 3년 가까이 충청도 남부지역을 주무대로 계속된 박해로 100여 명이 체포돼 순교했으며 내포교회 공동체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이 박해가 이른바 '정사박해'다.

 하지만 정사박해로 피를 흘린 순교자들 이름과 행적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관변기록조차 거의 없다. 지금까지 기록을 통해 이름과 순교행적이 남아 있는 순교자는 이도기(바오로, 1743~98), 박취득(라우렌시오, ?~1799) 등 8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798~99년께 순교한 내포교회 회장 정산필(베드로, ?~1799)ㆍ방 프란치스코(?~1799), 1800년 해미에서 장사형을 받고 순교한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ㆍ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있다.
▲ 백발의 내포 회장 정산필이 포졸에게 잡혀 덕산 관아로 잡혀가고 있다.

▲ 방 프란치스코가 마지막 밥상을 받고도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순교를 받아들인다.



  #내포회장 정산필과 방 비장, 순교의 피를 흘리다

   제4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 따르면, 충청도 덕산 출신 정산필은 조선교회 신앙의 못자리였던 '내포교회' 회장이었다. 주문모 신부가 내포를 방문하자 스스로 주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보필하다가 이 지역 회장에 임명된 그는 기도와 독서, 교리교육으로 한 생애를 살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육하며 신앙을 권면하고 격려하는 데 전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겸손하고 온유하며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괄괄하고 힘이 비상해 다들 두려워했다.

 그러던 그가 온유해진 것은 세례를 받은 뒤부터였다. 1794년 말 주 신부가 입국한 뒤 세례를 받은 그는 박취득, 원시보(야고보, 1730~1799), 방 프란치스코 등과 친교를 나누며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박해가 내포를 덮쳤다. 1797년 박해가 일어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체포됐다.

 정산필은 1798년(1799년이라는 주장도 있음) 자신의 고향인 덕산관아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앙을 결코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천주의 가르침을 증거했다. 감옥에서조차도 그는 갇힌 동료들을 격려했으며, 사형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도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사형 당시 그는 사형수에게 제공되는 마지막 음식을 받고나서도 꿋꿋했다. 함께 순교한 동료들에게 같이 먹자고 말하면서 남긴 유언은 지금도 교회에 전해지고 있다. "천주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한 음식이니 마지막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드십시다. 이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그는 형장으로 나아가 참수형을 받고(「사학징의」엔 매를 맞고 죽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순교의 화관을 쓴다. 그의 나이 50살 내지 60살이었다.

 같은 정사박해 순교자인 방 프란치스코(세례명만 전해짐)는 덕산에서 불과 14㎞ 남짓한 면천 출신이다. 충청감사 비장(裨將)을 지내 교우들 사이에선 '방 비장'으로 알려진 그는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는 누구보다 빨리 이를 받아들여 정산필 등과 자주 만나 교리를 연구하고 실천했다.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심을 보인 그는 교우들 가운데서 뛰어났으며, 특히 순교를 열망했다.

 그러던 중 1797년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면서 그도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체포돼 6개월간 갖은 형벌을 다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은 교우 2명은 관례에 따라 사형수들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받고는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오히려 기쁨에 빛나는 얼굴로 천주와 성모께 감사를 드리고 나서 유언을 남겼다.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것도 천주 은혜지만 관장이 이렇게 후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섭리이자 은혜인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슬퍼하고 풀이 죽어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만일 우리가 천당에 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 언제 또 이런 기회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다블뤼 주교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이에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뉘우치고 방 프란치스코와 순교의 거룩한 기쁨을 함께했다. 1799년 1월 21일 홍주읍내에서였다. 다만 이들이 참수를 당했는지 맞아 죽었는지 목이 졸려 죽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인언민은 청주관아에서 얼마나 갖은 형벌을 다 당했는지 걸을 수조차 없어 말에 실려 해미까지 이송된다.

▲ 젊은 이보현이 군중들에 둘러싸인 채 장터에서 포졸들에게 매를 맞고 있다.



   #인언민과 이보현, 죽음조차도 천주 은총으로 여기며...
 
 인언민과 이보현 순교자는 충청도 덕산 출신이었지만 성품은 아주 상반됐다.
 충청도 덕산 주래(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인언민은 온순하면서도 꿋꿋한 성품이었고, 어려서 학문에 정진해 상당한 학식도 쌓은 인물이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한 인물이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이라는 점만 봐도 그가 얼마나 학덕이 높은 유생이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반면 덕산 황모실(충남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 출신으로 부유한 평민 집안에서 태어난 이보현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고집스러운 성격에다 난폭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통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복음은 이들을 탈바꿈시켰다. 진리를 깨닫게 된 인언민은 황사영에게 교리를 배운 뒤 한양으로 올라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장남 요셉을 주 신부 곁에 남겨두고 자신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자 공주로 이주했다. 당시 친척들이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자 이주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교리를 전했다. 그렇지만 친척들은 아무도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797년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는 공주에서 체포돼 청주로 이송됐으며, 청주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뒤 감사의 명령에 따라 그의 고향 덕산을 관할하던 해미 관아로 또 다시 이송돼 갖은 문초와 형벌을 당해야 했다.

 이 감옥에서 인언민은 젊은 이보현을 만나게 된다. 20살 때 고향 인근에 살던 황심(토마스, 1757~1801)에게 교리를 배워 신앙을 받아들인 이보현은 난폭했던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고 모친의 권유에 따라 혼인을 했다. 그리고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충청도 연산(현 충남 논산군 연산면)으로 이주했으며, 1795년에는 주문모 신부를 모셔다가 성사를 받기도 했다.

 교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열심을 보이던 그는 산중에서 보속과 고행에 열중하기도 했다. 1797년 박해가 시작됐으나 피신하지 않고 가족과 동네 교우들에게 그리스도 수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앙을 권면하던 그는 곧바로 체포돼 해미 관아로 이송돼 인언민과 만나게 된다.

 해미 감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늘 서로를 권면하며 갖은 고문과 유혹 아래서도 변함없이 신앙을 고백했다. 그래서 해미 관장은 "인언민과 이보현을 같이 때려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형리들은 감옥에서 인언민을 끌어내 매질을 하다가 큰 돌을 내리쳐 그는 턱이 부서져 떨어져나가고 가슴뼈가 부러져 순교한다. 이보현은 또한 같은 날 장터로 끌려나가 혹독하게 매를 맞다가 순교했다. 이날이 1800년 1월 9일로, 인언민은 63살, 이보현은 27살이었다.

 순교 직전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하던 인언민, 갖은 형벌에도 미소를 띤 채 순교한 이보현의 삶은 죽음조차도 천주 은총으로 받아들인 신앙선조들의 삶을 그대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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