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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나의 전교일기] <5>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고 싶어

[임보나의 전교일기] <5>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고 싶어

어려웠던 만큼 간절했던 하느님 자녀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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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발행 [1179호]
어려웠던 만큼 간절했던 하느님 자녀되기

▲ 1971년 포천본당 어린이들과 함께(우측 필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병석에서 견진교리를 지도했는데, 주교님이 깜짝 놀라실 정도로 학생들이 교리공부를 열심히 했다.


  옛날에는 하느님 자녀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세례를 받으려면 12가지 기도문(12단)을 달달 외워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게다가 적게는 76조목, 많게는 320조목에 달하는 교리문제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예비신자들은 주1회 교리교육을 받고 돌아가면 일주일 내내 교리문답집을 끼고 살았다. 영세일이 가까워져 오면 매주 찰고(察考, 암기사항 면접시험)를 하고, 마지막으로 신부님 총찰고에서 '합격' 판정을 받아야 비로소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세례받는 날(대축일)이 다가오면 온종일 들일을 하고 돌아와 피곤한데도 초롱불 아래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도문과 교리를 중얼중얼 외웠다. 특히 코앞에 닥치면 부엌에서 밥을 짓건, 밭에 나가 김을 매건, 강가에서 빨래하건 시도 때도 없이 교리책을 폈다 덮었다 하면서 공부를 했다.

 #'까막눈' 노인들의 눈물겨운 교리공부
 문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인 데다 조금 전에 들은 것도 돌아서면 까먹는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도 나름 암기하는 묘책이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잔칫집에 가면 떡이나 과일 같은 음식을 싸들고 오다 길에서 초등학생을 만나면 그걸 주고 "이 책 한 줄만 읽어다오. 내가 따라 할 테니…"하면서 외우셨다. 노인네가 몇 번 듣고 그걸 외울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몇 십 번씩 똑같은 구절을 읽어주다 싫증이 나면 온갖 구실을 붙여서 내빼곤 했다.

 70대 중반 어느 할머니는 다행히 할아버지가 글을 알고 계셔서 한결 수월했다.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심통이 나면 읽어주지 않아 교리공부 기간 내내 싸울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순종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1년 후에 신부님께 총찰고를 받았는데, 신부님 앞에 가니까 떨려서 줄줄 외웠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물론 낙방이었다. "더 공부하시고 다음에 오세요"하는 말을 듣고 나온 할머니는 "세례받는 게 과거시험보다 어렵다"며 내게 하소연을 하셨다. 그래서 "맞는 말씀이에요. 과거야 벼슬 따기 위해 보는 시험이지만 찰고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보는 시험이니까요"하며 위로해 드렸다. 할머니는 3번째 찰고 끝에 드디어 합격하고 대축일에 세례를 받으셨다. 그날 할머니는 "장원급제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 할머니가 세례를 받은 지 1년 만에 할아버지가 병석에 누웠다. 할머니는 병세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대세 받기를 몇 번이나 권했지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거부하셨다. "우리가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려면 영감이 대세를 받아야 한다"고 꼬였지만(?)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건강할 때는 내가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때부터 나를 본체만체하셨다. 앙상하게 야윈 팔다리를 주물러드리며 환심을 사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어느 날은 "왜 회장님을 쓸데없이 오게 하느냐"며 할머니에게 버럭 화를 내셨다. 며칠 후 다시 가서 하느님 이야기를 했더니 아예 돌아서서 귀를 막으셨다. 그 모습이 밥을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귀여운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고, 악마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 필립보 신부님께 그 할아버지 얘기를 했더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기적패를 몸에 지니고 있게 해 보라고 하셨다. 그 완고한 할아버지 몸에 기적패를 달아드리는 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누워계신 요 밑에 기적패를 슬쩍 밀어 넣고 화살기도를 바쳤다. '성모님, 이 죄인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느 외과의사의 체험담도 들려줬다.

 "할아버지, 제가 아는 의사가 한 말인데요. 수술환자 보호자들은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일 뿐, 나머지는 하느님이 결정하신다는 걸 체험으로 깨달았데요."

 바쁜 일이 생겨서 며칠 뜸하다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그런데 표정이 180도 바뀌셨다. 메마른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왜 그동안 오지 않았느냐. 지난번에 섭섭하게 해서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성모님, 감사합니다'는 말이 나왔다"며 하느님을 알고 싶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멈 교리공부를 거드는 동안 웬만한 교리는 외웠는데 도무지 뜻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매일 30분씩 교리를 설명해 드린 후 공소회장님을 대부로 세우고 대세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으셨다. 나는 손을 풀면서 내일 또 오겠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그날 근처 다른 환자를 방문하고 할아버지 집을 지나가는데 집안에서 통곡소리가 들렸다. 급히 들어가 보니 내가 방에서 나오고 10분쯤 뒤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떠난 것에 슬퍼하면서도 영혼이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성모님 기도가 어떤 기도보다 힘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누운채로 견진교리 3개반 지도
 1975년 경기도 포천본당에서 선교사로 일할 때, 연탄불을 갈러 사제관 지하실에 내려가다가 척추를 다쳐 석 달 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견진성사 준비기간이 겹쳤다. 신부님은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으나 주교님이 1년에 한 번 오셔서 견진성사를 주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신부님께 "누워서라도 교리공부를 시킬 테니 신자들은 제 방으로 보내 주십시오"하고 말하고 3개 교리반을 짰다.

 그런데 학생반 수업 분위기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진지했다. 평소 말을 잘 안 듣는 말썽꾸러기들이었는데, 내가 누워서 끙끙거리며 교리를 가르치니까 출석률과 집중력이 완전히 딴 판이었다. 복습까지 성실하게 잘 해왔다. 학생들이 내 열의에 감동한 듯했다.

 그때 견진성사 찰고는 주교님께서 직접 하셨다. 주교님은 교리서에 있는 문항을 그대로 묻지 않으시고 교리서 수준의 전반적 지식을 서너 가지씩 물으셨는데, 학생 4명이 똑똑하게 대답을 잘했다. 주교님은 학생들 실력에 감탄하며 "누구에게 그렇게 잘 배웠느냐"고 물으셨다. 학생들이 임 회장님에게 배웠다고 하자 주교님은 "보나 회장님은 아직 일어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하며 또 한 번 놀라셨다. 학생들은 내가 누워서 교리를 가르쳐주었다고 말씀드렸다. 찰고에 합격한 학생들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방에 들러 그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날 춘천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 방에 들르신 주교님은 "학생들을 아주 잘 가르치셨습니다"하며 칭찬을 해주셨다. 주교님께 직접 칭찬을 듣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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