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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3> 무속신앙의 벽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3> 무속신앙의 벽

"너를 살리신 분은 하느님이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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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5 발행 [1177호]
"너를 살리신 분은 하느님이시란다"

▲ 1960년대 강원도 산골 공소 선교사 생활은 지금의 사람들에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리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서석공소 선교사 시절 찍은 사진(뒷줄 오른쪽이 필자)


   자정이 다 된 밤에 강원도 산길에서 마주친 나병환자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는 나병환자에 대한 해괴한 소문이 파다했던 터라 그들이 나타나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던 시절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회장님 아임겨? 이 밤중에 우델 갔다 오능교?"
 화톳불가에 둘러앉아 있던 그들 중 한 명이 일어서더니 아는 체했다. 그 소리가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빛줄기를 찾은 것마냥 반가웠다. 키가 크고 좀 늙어 보이는 게 낯이 익다 싶었다.

 #한밤중 산길에서 마주친 나병환자들

 생각해 보니 우리집에 와서 구걸을 한 나병환자였다. 어느 날인가, 그는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미역국도 못 끓여줬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돈을 조금 줬더니 옷도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도 옷이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한 벌 꺼내 줬다. 그랬더니 고무신도 달라고 했다. 신발이라고 해봐야 달랑 고무신 두 켤레였지만 군말 않고 한 켤레를 싸서 줬다. 사실 내가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빨리 돌려보내고 싶어 달라는 대로 다 줬다.

 그는 옆에 있는 나병환자들에게 "회장님은 고마운 분이니까 인사 올리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휴~ 이제 살았구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화살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를 데리러 온 황 사무엘도 그날 얼마나 놀랐는지 앞으로 잘 경호하겠다면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아들바위 근처에서 귀신(?)을 본 적도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밤늦게 집회소 교리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앞에 흰옷을 입은 여자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사무엘에게 "빨리 걷자. 저 여자랑 같이 걸으면 좋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우리가 빨리 걷는데도 그 여자와의 거리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20m 간격쯤 될까. 그래서 같이 가는 걸 포기하고 속도를 늦췄는데, 그녀도 그랬는지 간격은 똑 같았다.

 집이 대여섯 채 있는 마을을 지나자 그녀는 길도 없는 강가 쪽으로 들어섰다. 내가 "이상하네. 저긴 길도 없고 인가도 없는데"하고 말하자 사무엘은 "걱정하지 말고 우리 길이나 가자"며 손을 잡아끌었다.

 다음날 사무엘이 공소 사택에 찾아와 "이젠 무서워서 경호원 노릇을 못 하겠다"고 했다.

 "회장님이 놀라실까봐 어제 말씀을 안 드렸는데, 어젯밤에 본 게 귀신이에요. 귀신. 불편하시더라도 다음부터는 집회소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오세요."
 "귀신? 하느님 믿는 사람이 무슨 귀신타령이야."
 "물귀신이 틀림없어요. 그 귀신이 우리를 홀리러 왔다가 회장님이 믿음이 강한데다 손에 묵주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만둔 거예요. 그 여자가 앞서서 마을을 지날 때는 개가 짖지 않다가 우리가 지날 때는 막 짖었잖아요. 거기에 큰 소(沼)가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사람이 빠져 죽는다니까요."

 그 바람에 나는 교리공부가 끝나면 창고나 다름없는 집회소 골방에서 자고 집에 돌아왔다(주민들이 그 귀신 이야기에 조금씩 살을 붙이더니 여자가 산발을 했느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느니 하는 '전설의 고향' 드라마를 만들어 놨다).

 #손녀를 살리려면 굿을 해야

 1965년 어느 날이었다. 풍암2리에 사는 변 마리안나 자매의 시어머니가 3살 먹은 손녀를 업고 들이닥치더니 "내 손녀 살려내라"며 애를 내던지듯이 내게 안겼다. 영문을 모르는 터라 시어머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얘기를 들어봤다. 사연인즉 이렇다.

 내게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 신자가 된 변 마리안나 자매가 애를 낳았는데, 홍역도 잘 치른 애가 무슨 변고인지 열병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답답해서 단골무당집에 찾아갔는데, 그 무당이 "아들의 전처 귀신이 붙어서 그런 거니 큰굿을 해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며느리 마리안나가 "천주교 신자는 굿을 하지 않는다"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아이는 계속 열이 펄펄 끓고, 무당은 "빨리 굿을 하지 않으면 애가 죽는다"고 겁을 줬다.

 하는 수 없어 시어머니는 "천주교고 뭐고 애는 살려야 한다. 정 그러면 쌀 한 가마니만 다오. 내가 나가서 굿을 하고 올테니…"하며 며느리에게 사정을 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자식을 죽이면 죽였지 굿은 못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화가 잔뜩 난 채로 내게 와서 당신이 며느리를 천주교 신자로 만들었으니 애를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애는 홍역 끝에 폐렴이 온 것 같았다. 어깨로 숨을 쉬고 코밑은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상태가 위독해 보였다. 나는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아이를 업고 보건소로 뛰어갔다. 보건소 공의(公醫)는 진찰을 하더니 급성 폐렴이라면서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이 날 뻔 했다고 했다. 의사는 주사를 놓고 약을 3일치 지어주면서 내일 한 번 더 와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애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음날 보건소에 들렀다. 아이가 간밤에 차도가 있었는지, 또 주사를 맞고 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간밤에 애가 잘못된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보건소에서 풍암2리를 가려면 자작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묵주를 쥐고 성모송을 바치면서 고개를 넘었다. 마리안나 집 앞에 도착했지만 인기척을 내기가 망설여졌다. 발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십자성호를 긋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더니 마리안나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줬다.

 "회장님, 애가 어제 주사를 맞고 오더니 할머니 등에서 쌔근쌔근 잘 자고 있어요. 열도 다 내린 것 같아 보건소에 가지 않았어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주님, 감사합니다"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구약성경의 신명기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신명 32,39).

 겁을 준 그 무당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10여년 뒤 서석을 떠나 다른 성당에서 선교사로 일하던 어느 날, 손글씨로 예쁘게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임 회장님이 살려주셨다지요. 어머니께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임 회장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성함만 기억할 뿐이에요. 뵙고 싶어요."

 그때 폐렴으로 사경을 헤맸던 마리안나 둘째딸이 보낸 것이었다. 답장을 써서 보냈다.

 "내가 너를 살린 게 아니란다. 너를 살리신 분은 하느님이시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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