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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2> 서석공소 터를 닦으며

[연재] 산골 선교사 임보나의 전교일지<2> 서석공소 터를 닦으며

모세에게 주신 용기, 지혜 약속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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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 발행 [1176호]
모세에게 주신 용기, 지혜 약속하신 주님

22살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두메산골 서석(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들어가 선교사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서울에 가서 새 출발을 할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내게 공소 선교사 자리를 제의하고 며칠 생각할 말미를 준 조선희 필립보 신부님과 마주 앉았다.

 신부님은 "서석이 돌아오지 못할 지옥은 아닙니다. 힘들거나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나오면 됩니다"하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정하고 신부님을 뵌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부족한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신부님은 월급 1만 5000환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한 달 치를 미리 주셨다. 신부님은 서석 일대를 답사하신 후 성당부지로 사용할 야산을 매입해 두신 상태였다. 그리고 야산 앞에 있는 초가 6칸을 사놓으시고 나를 선교사로 파견하시는 것이었다.

▲ 홍천본당 서석공소 선교사 시절 눈 쌓인 공소 앞에서(가운데가 임 보나 선교사). 하느님은 내게 착하고 부지런한 예비신자와 협조자를 많이 보내주셨다.


 #면(面)에 천주교 신자 단 한 명

 1956년 10월 10일, 얼마 안 되는 부엌 살림살이와 이불을 챙겨 신부님 차를 타고 서석에 들어갔다. 홍천에서 서석까지 3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신부님은 뭐가 그리 바쁘셨는지 우리 모자(母子)만 초가에 덩그러니 남겨놓으시고는 바로 홍천으로 돌아가셨다.

 큰 집에서 대가족과 함께 살았던 터라 낯선 초가에 촛불만 켜들고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7살배기 어린 아들은 집에 가자며 칭얼거렸다. 아이는 울면서 방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신부님이 서석에 공소를 세우기로 한 이유는 연규필(안드레아) 형제 때문이다. 연 안드레아 형제는 6ㆍ25 전쟁 중에 하반신을 조국에 바친 1급 상이용사였다. 육군병원에서 세례를 받고 귀향한 그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홍천본당 조 신부님께 공소를 세워달라고 청한 터였다.

 그날 저녁 연 안드레아 형제가 식사하자며 허름한 마을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때 난생처음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는 경험을 했다. 더구나 처음 만난 상이군인(안드레아 형제)은 왜 그리 무서웠던지…. 1950, 60년대는 나라가 가난해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된 그들에게 호구지책을 세워주지 못했다. 악에 받친 그들은 가는 곳마다 울분을 토하며 행패를 부렸다. 그러면 주민들은 물론 경찰도 무서워서 슬금슬금 피했다.

 서석면을 통틀어 천주교 신자는 안드레아 형제 한 명뿐이었다. 그의 부인도 신자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천주교라는 걸 처음 들어본다"며 무슨 신흥종교 대하듯 했다. 주민들은 불교와 유교를 믿었다. 터줏대감, 산신령, 서낭당, 손각시(처녀귀신), 아들바위(소원을 들어준다는 암석) 등 잡다한 무속에 빠진 주민도 많았다. 그리고 마을마다 자리 잡고 있는 단골무당들은 "예수 믿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경험도 없는 내가 이토록 터가 센 마을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모든 게 피난살이할 때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신부님이 공소에 오셨기에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부족한 게 많아서 여기서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신부님은 한참 생각하신 후에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참아보세요. 보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잘 될 겁니다"하며 다독여 주셨다. 그날 저녁기도를 마치고 성경을 펼쳤다. 탈출기 3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에게 입을 주었느냐? 누가 사람을 말 못하게 하고 귀먹게 하며, 보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느냐? 나 주님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 가거라.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탈출 3,10-4,11).

 #한밤중 외딴 길에서 맞닥뜨린 나병환자들
 복음을 묵상하면서 크게 깨달았다. 콕 집어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 순간 용기가 솟았다. 다음날부터 서석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하는 생곡리 생비라는 마을까지 오르내리면서 천주교를 알렸다. 하반신을 나라에 바친 25살 연 안드레아 형제는 나머지 상반신을 하느님 사업에 바치겠다는 각오로 선교활동을 도와줬다. 하느님은 착하고 부지런한 예비신자와 협조자를 많이 보내주셨다.

 서석면 생곡1리 교우집에 집회소를 정하고 주1회씩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할 때다. 낮에는 농사일이 바빠 밤에 모여 교리공부를 하다보면 밤 11시에 끝이 났다. 아무리 선교사라고 해도 젊은 여자 몸으로 밤길 6㎞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 고맙게도 황 사무엘(19살)과 심 사베리오(18살)가 보디가드처럼 밤늦게 데리러 왔다.

 어느 추운 날 밤, 황 사무엘이 혼자서 나를 데리러 왔다. 얼굴이 새파랗게 얼었다. 우리는 밝은 달빛을 손전등 삼아 매서운 바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검산리 아들바위를 돌아서니까 도로 한가운데서 몇 사람이 화톳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시신을 지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는 객사(客死)하면 시신을 집에 들여놓지 않았던 터라 길에서 그런 광경을 더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깜짝 놀랐다. 장날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나병환자들이었다. 나병환자들이 몹쓸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절이다. 장날에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광경도 실제 보았다. 발길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남장을 할 겨를도 없었다. 사무엘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일 났어요. 이쪽에 여자가 있는 걸 본 것 같아요."

 도로 오른쪽은 가파른 산이고, 왼쪽은 낭떠러지였다. 그야말로 피할 곳 없는 외나무다리였다.

 "회장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빨리 뛰면 돼요."

 나는 마음을 다잡고 독백처럼 말했다. "아냐, 늦었어. 그냥 땅만 보고 지나가."

 그 순간 무리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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