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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교회 선교 현장을 찾아서(하)

사막과 고산지대에 피어오른 선교의 불씨 번져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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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0 발행 [1087호]
사막과 고산지대에 피어오른 선교의 불씨 번져나가길



이번 호에는 페루 북부 트루히요와 남동부 쿠스코에서 사목하고 있는 최종환, 황주원(의정부교구) 신부의 선교 현장 탐방기를 싣는다.


양 해 룡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 최종환 신부가 주일미사 후 성당 문 앞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광대한 사막에 꽃을 피우는 최종환 신부

  커다란 2층 버스를 타고 동창 신부가 있는 트루히요(Trujillo)에 도착했다. 친구인 최종환 신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작년 이맘때 선교를 떠난다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최 신부 모습이 선했다. 신자들과 소통은 잘 하는지, 문화에 적응은 잘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다.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잘 산다는 것을 직감했다.

 최 신부와 함께 1시간 반 가량 페루의 유일한 편도 1차선 고속도로, 판 아메리카를 달렸다. 주변은 온통 갈색 사막이었다.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 첫 마을인 빠이항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공소도 제법 많다. 이 마을을 지나 물을 대어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밭 언저리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가 바로 최 신부가 사목하는 쁘에르토 말라브리고(Puerto malabrigo)이다.

 최 신부는 저녁미사 때 멀리서 온 나를 소개했다. 그날은 마을 수호자인 카르멘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Virgen del Carmen) 축제 9일 중 하루였다. 성모님을 성당 왼쪽에 따로 모시고 화려하게 꾸민 게 인상적이었다. 신자들은 아주 큰 스카풀라를 매고 발현하신 성모님께 자신의 소원을 전구했다. 페루인들의 신앙은 성모 신심으로 나타난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보다는 자신과 더 가까운 성인에게 신심을 드러내는 것을 신앙으로 여긴다.

 신자 중에는 조당에 걸린 이들이 많아 영성체하는 신자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최 신부는 안수를 해준다. 안수를 받을 때 신자들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다.

 토요일 저녁, 공소 미사에 참례했다. 지붕 없는 폐교를 공소로 개조했다. 모 본당에서 온 성가대 봉사자들과 많은 학생들이 참례했다. 자리를 가득 메운 신자들이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에서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을 느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는 최 신부가 페루인 사제로 느껴졌다. 격의 없이 안고 악수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맡았다. 주변 어둠을 비추는 공소 미사는 힘찬 마침성가로 끝났다.

 공소를 많이 지어 더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활기차게 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공소를 늘려 여호와의 증인의 발호를 차단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계획일 뿐, 공소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페루교회는 본당 재정 자립도가 낮다. 열악한 상황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애덕주일로 정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신자들이 모은 작은 정성을 나눠준다.

 페루에는 사제가 매우 부족하다. 사제 한 명이 사목하는 지리적 공간이 워낙
넓어 신자들을 일일이 돌볼 여력이 없다. 그래서 최 신부의 선교사목은 한국교회와 페루교회 교환 사목의 디딤돌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페루에 온 지 1년 남짓 된 최 신부는 푸른 뽄시아노(페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꽃처럼 언제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희망의 전도사다. 최 신부는 한국교회가 초창기에 받은 보편교회의 선물을 지금 페루에 나눠주고 있다.



▨ 안데스에 천국을 건설하는 황주원 신부


▲ 황주원 신부가 주님 수난 성지주일 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재현하는 모습.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탁 트인 공간과 파란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빛은 지금까지 봤던 여느 페루 모습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잉카인들은 금을 '태양의 눈물'로 표현했다. 그 금을 빼앗으려고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은 잉카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잉카문명 자리에 수도회들이 뿌리를 내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황 신부가 사목하는 곳은 쿠스코에서 2시간 떨어져 있다. 쿠스코 공항에서 만난 황 신부는 이미 그곳 사람인 듯 했다.

 잉카와 스페인 문명이 혼합된 메스티조(Mestizo) 문화를 관광하는데, 숨이 막혀왔다. 머리와 눈도 아파왔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고산지대 적응을 위한 약을 복용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선교사 황 신부가 위대해 보였다.

 다음날 그 유명한 마추픽추(Machu Picchu)로 가는 기차 안에서 황 신부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삶을 풀어놨다. 한국에서의 삶은 편하고 사제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사제의 정체성을 찾으려 페루에 발을 디뎠다. 그가 처음 사목한 곳은 리마의 변두리 산동네였다. 허름한 공소 4곳을 사목했는데, 처음 1~2년은 강론 준비에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어가 익숙해지면서 구체적 사목을 펼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소 중 성전이 없는 곳에 지인의 도움으로 성전을 지은 것이었다.

 이렇게 페루 리마에서 4년을 지낸 후 쿠스코에 오기로 마음먹었다. 첫 1년 6개월은 본당 주임신부로 원주민을 대상으로 사목했다. 그때는 토착어인 게추아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은 스페인어로 했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 당시 그는 많은 학생들이 먼 거리에서 통학하는 것을 보고, 학교 근처에 기숙사를 지을 생각을 했다. 독일교회의 '아드베니앗(Adveniat)'이라는 단체에 협조를 구해 그들 도움으로 기숙사를 설립했다.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일을 해낸 그를 보면서 고산에도 적응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현재 그는 은퇴를 앞둔 할아버지 신부와 함께 지낸다. 공소는 약 60곳이며 가까운 곳은 일주일에 한 번씩, 먼 곳은 일 년에 한두 번씩 가서 미사를 주례한다. 할아버지 신부와 함께 교리교사를 양성해, 그들을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을 사목하고 있다.

 드디어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조그한 평지에 잉카문명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잉카인들은 지진이 많은 페루 안데스 산악지대에 내진에 강한 공법으로 건물을 건축했다. 단단한 돌을 짜 맞춘 건축기법과 단단한 마름모골 창이 마추픽추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황 신부 역시 페루교회의 든든한 희망의 돌이다. 안데스 3900m 고지에서 사목할 페루 신부를 찾기란 힘들다. 척박한 사목의 사각지대에서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고 원주민들과 함께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황 신부를 보며 내 삶을 되돌아봤다.

 황 신부가 사목하는 곳에 도착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작은 산티아고성당에서 황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에 참례했다. 자연스럽고 막힘없는 강론으로 자신감 있게 신자들을 복음의 진리로 인도하는 모습은 잉카인들 삶에 뿌리를 내린 사목자의 긍지를 느끼게 했다.

 7년 남짓 살아온 페루에서 다시 그들을 위한 미래의 삶을 계획하는 황 신부를 뒤로 한 채, 한국의 좀 더 많은 사제들이 선교사를 지원해 해외에서 사목 열정을 불태우기를 기대하면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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