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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교회 선교 현장을 찾아서(상)

페루 수도 리마 외곽 빈민촌에서 사목하는 이대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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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3 발행 [1086호]
페루 수도 리마 외곽 빈민촌에서 사목하는 이대영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ㆍ전례사목부 담당 양해룡 신부가 최근 한국교회 사제들이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남미 페루 선교 현장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한국교회가 파견한 해외 선교사들의 삶을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전하고 해외선교 활성화 방안을 찾고 싶어서다.
 양 신부는 페루의 수도 리마와 페루 북부에 있는 트루히요를 거쳐, 남동부 쿠스코 등 세 지역에서 이대영(서울대교구) 신부와 최종환ㆍ황주원(의정부교구) 신부를 차례로 만나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양 신부의 선교 현장 탐방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척박한 신앙의 땅, 복음의 새 길 개척하다

남미 페루는 먼 나라다. 25시간이 걸려 도착한 공항에선 정신이 나간 듯 멍했다. 깡마른 체구에 선교사로 입지가 굳어진 듯한 이대영 신부가 반갑게 맞아줬다.

 이 신부는 2009년 3월 리마 외곽 도시 빈민들이 사는 곳에서 사목을 시작했다. 그가 사목하고 있는 로스 올리바스(Los olivas) 주변은 비포장도로 지역으로 희뿌연 먼지가 시야를 방해했고, 움푹 패인 곳이 많아 자동차가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사목했다고 한다. 그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호주 신부와 함께 15개 공소를 중심으로 사목한다. 보통 주일에 공소 4곳을 찾아 미사를 봉헌한다. 15개 공소마다 사목위원들이 구성돼 있고, 사제들은 사목회의에 참석해 사목방향을 결정한다.

대나무로 짜 만든 공소

 다음날 그와 함께 첫 공소를 방문했다. 공소 중에도 가장 중심인 거룩한 대천사(Los Santos Arcangeles) 공소에서는 혼인미사가 거행됐다. 하객이 많지 않은 소박한 미사였다. 신랑과 신부는 기쁨이 가득했지만, 하객 중 영성체를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페루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잘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체를 영하기 어려운, 혼인과 연관된 대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배가 끝나고 두 번째 공소로 이동했다. 많은 신자들이 성가를 부르며 주례 사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유아세례식이 있었다. 사제가 부족해 미사와 함께 세례예식을 거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얀 옷을 차려 입은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었다. 어두운 조명에 천사 같은 아이는 빛났다.

 다음날인 주일 아침, 먼지가 자욱한 길을 달려 도착한 공소는 대나무로 짜 만든 공소였다. 미사시간이 됐는데도 공소는 다 차지 않았다.

 "꽝"

 멀리서 자동차 경적 소리 같은 이상한 굉음이 들렸다. 물차 소리였다. 아침 일찍 물을 팔기 위해 내는 소리다. 자세히 살펴보니 집 앞에는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있었다. 물을 사서 그곳에 보관해 두고 음료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나무로 만든 공소들에는 상ㆍ하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도 있었다. 선교사는 열심히 준비한 강론으로 신자들에게 복음을 해설하고 있었다. 대나무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그들은 어두워 보였다.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이들과 어울려 사는 이 신부가 이곳 선교사를 지망한 데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선교 열정으로 가득

 쉰 살이 넘은 신부가 선교사를 지망했을 때 그의 나이가 문제가 됐다. 사제들의 해외선교를 지원하는 골롬반 선교센터는 이 신부는 나이가 많아 문화 적응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새로운 사제상을 찾으려는 그의 도전과 노력은 받아들여졌다. 그는 성령께 모든 것을 의탁했고, 선교지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 다짐했다. 늦게 시작한 탓도 있지만 이 신부의 노력은 대단하다. 그는 여전히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다.

가톨릭 국가지만 신심 약해

 페루는 전통적 가톨릭 국가다. 하지만 어설픈 서구 문화가 거룩한 신심을 갉아먹었다. 이들은 15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성(性)에 눈을 뜬다. 그 이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교구와 본당은 사제생활을 뒷받침해줄 재정적 능력이 없다. 교회는 스페인이 세웠고, 그들에 의해 운영됐다. 페루인들은 헌금에 대한 인식이 없고, 무엇보다도 가난하다. 사제들도 생존 문제에 부닥치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들은 종교교사의 길을 택한다. 이 현상은 사목의 손길이 점점 신자들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예로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 사제는 언제나 바쁘고, 신자들은 사제가 그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자는 감소하고 있으며, 아울러 성소자도 감소하고 있다. 개신교에서 건너온 신흥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교는 밀가루와 설탕을 나눠주면서 그 틈새로 침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날 마지막 공소를 방문했다. 작은 공소였지만 활기가 넘쳤다. 남미 특유의 성가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이 성가대였다. 북과 탬버린으로 미사곡을 부르며 주님을 찬미하는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전례에 참여했다. 공소 예절이 끝나고 첫영성체 교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교리 공부에 열심이었다.

 공소 예절을 마친 후, 그들은 비포장도로 가운데에 아스팔트를 깔았다며 그 아스팔트 길을 축복해달라고 이 신부에게 청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성수를 뿌리고 축복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도로를 포장하고 울타리 친 곳을 축복하면서 그들과 하나돼 가는 이 신부가 행복해 보였다.

페루교회에 활력 불어넣어

 한국인 선교사는 이렇게 페루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페루의 그늘진 곳에서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을 위해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인내심, 성실함으로 사목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신부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차츰 페루인들을 이해하고 그들 아픔에 동참하면서 그들을 진정한 복음화로 이끌고 있었다.

 얼마 전 그에게서 안부를 묻는 전자우편 한 통이 왔는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무한하신 하느님, 한국에서는 사고로만 이해한 주님이 선교지에서는 몸으로 체득돼 집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리마의 외진 곳에서 페루인들과 어울리며 '주님이 왜 죽으셨고 부활하셨는지'를 뼛속 깊이 체험하면서 복음 전파에 매진하는 행복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 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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