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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8 - 글도 레지오도 주님 영광 드러내려

[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8 - 글도 레지오도 주님 영광 드러내려

소설로써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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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발행 [1000호]
소설로써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리라


 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 아버지가 운영한 냉동회사는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많은 빚을 떠안은 아버지는 서울에서 친지들 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자식으로서 가슴 아팠다. 밥을 먹든 죽을 먹든 아버지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뜻에 아내가 동의했다. 그래서 방 하나를 치워 아버지에게 드리고 우리 내외는 자식들과 함께 지냈다. 비록 잘 모시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
 이런 우리 내외가 주위 사람들 눈에 신기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장애인 아들이 아버지를 봉양한다면서, 1986년 어버이날에 국무총리상을 주었다. 당연한 일을 한 나로선 매우 쑥스러운 상이었다.
 그런데 절박한 것은 생계였다. 오로지 한 우물을 파겠다는 생각으로 승부를 걸었던 S출판사였으나 아이들이 커가고 어른을 모신 터여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나는 퇴직금은커녕 밀린 봉급을 모두 포기한 채 사직했다. 출판사의 궁핍을 아는 만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교회 평신도가 운영하는 요셉출판사 편집장이 됐다. 이때부터 제때에 봉급을 받게 됐고, 생계의 어려움이 덜어졌다. 그러면서 1988년 한 해 동안 자전소설 「사랑의 끝」과 실재인물을 모델로 한 「애리」를 출간했다.
 이 두 작품은 내 소설에 하나의 획을 그었다. 일찍부터 시에서는 신앙이 배어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소설을 통해 가톨리시즘을 구현해야겠다는 의지가 정립됐다. 소설이 하느님 영광을 드러낼 때 작품으로서의 참가치가 있다는 확신이었다.
 신명나는 레지오 단원들
 한편, 레지오 활동은 상경한 지 3년여 만에 신정동본당에서 다시 시작했다. 한동안의 공백은 서울 생활에 자리 잡지 못한 데서 빚어졌다. 새 인생을 열어준 레지오 마리애는 금방 나를 지탱해 주는 지렛대가 됐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음은 바로 레지오 단원이라는 의식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쁘레시디움 단장에 이어 꾸리아 단장으로 활동했다. 내가 단장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잊지 않은 것은 사명감이다. 성모님께서 한 쁘레시디움 한 꾸리아의 직책을 맡긴 만큼 단장은 단원들을 이끌고 선봉장이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신정동본당에서 힘껏 레지오 사업을 펼쳤다. 대상자를 지속적으로 가정방문하도록 했고, 단장이 그 모범을 보이려고 했다. 행동이 문란한 동네 아가씨들을 선도하는 활동도 했다. 또한 이동문고활동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양면진열대 수레를 제작했다.
 내가 속한 '하늘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주일마다 신자들에게 교회서적을 판매하고 난 다음 번화가로 끌고 나가 외교인들에게 천주교를 알렸다. 나는 이 활동으로써 교우들이 교회서적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읽지 못한다는 것과 외교인이나 타종교인들도 천주교서적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설한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 단장 때에는 용산에 있는 윤락여성 선도에 나섰다. 형제단원들은 주일마다 윤락가 입구에 「천주교 도서를 빌려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교회서적을 무료로 빌려주었다. 나이 든 자매단원들은 윤락녀들을 만났다.
 이 밖에도 꾸리아 차원에서 매월 한 차례씩 전 단원이 동네청소를 했으며 공원에 나무도 심었다. 이처럼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목적의식과 사명감에 투철한 신명나는 레지오 단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광호 (모세,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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